오늘 저녁은 정말 놀라운 시간이 될 겁니다. 시간을 최대한 잘 활용해 보겠습니다. 성경 요한계시록을 펴 주십시오. 오늘 저녁에는 경이로운 요한계시록을 전체적으로 한 번 쭉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절을 찾으시는 동안에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요한계시록만큼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장엄하게 드러내는 책은 없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요한계시록만큼 오해받고 잘못 해석되고 또 무시당하는 책도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0절입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알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인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축복으로 시작됩니다. 1장 3절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리고 축복으로 끝납니다. 22장 7절입니다. “…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성경 전체에서 오직 요한계시록만이 시작될 때도 끝날 때도 읽는 자에게 복을 약속합니다. 또 이 책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때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22장 10절에서 말하는 것은 곧 이 책에 기록된 내용이 하나님의 메시아적 시간표상 다음에 일어날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이 책의 핵심은 1장 1절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요한계시록은 바로 예수님의 계시입니다. 아포칼뤼프시스(apokalupsis), 드러냄, 벗겨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아니면 결코 알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러니까 미래, 가까운 미래의 단면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광 가운데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장차 이루어질 현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요한에게 전하셨습니다. 2절에서 요한은 받은 말씀을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그러니까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길 원하셨고, 2절을 보면 요한이 그 계시를 기록하는 책임을 감당했습니다. 3절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여기서 “읽는 자”, “듣는 자”, “지키는 자”라는 단어에 밑줄을 그어두십시오. 중요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때가 가까움이라.” 시간과 관련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메시아적 사건의 순서와 관련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구속사적 일정에서 다음으로 일어날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충만한 영광 가운데 나타나실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 변화산에서 미리 보여주신 그 영광입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재림의 영광을 잠시 엿보게 하셨습니다.
4절로 들어가면 좀 더 공식적인 서론이 시작됩니다. 요한은 특히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기 위해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지금의 튀르키예 지역에 있던 교회들입니다. 2장과 3장에 그 일곱 교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존재했던 교회들입니다. 이 교회들이 첫번째 수신자이고, 그 이후로 다른 교회에게로, 결국에는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이 교회들은 주로 바울의 에베소 지역에서의 사역을 통해 세워졌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퍼져나가 아시아 지역에 여러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런 인사가 이어집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하나님, 곧 영원하신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하나님입니다. 또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라고 합니다. 여기서 “일곱 영”이란, 여러분 혼동하지 마십시오, 성령님의 일곱 가지 사역을 가리킵니다. 이사야 11장 2절을 보면 성령님의 일곱 가지 특별한 사역이 언급되어 있는데 바로 그 일곱 가지 사역을 여기서는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이라고 한 겁니다. 성령님의 충만한 사역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님의 인사가 나온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사가 이어집니다. 5절입니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렇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보내신 편지입니다. 아주 놀랍고 독특한 특징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모두 함께 보내신 편지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하였기에, 예수님에 대한 묘사로 이어집니다. 먼저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최초로 살아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미 많은 사람을 살리지 않으셨습니까? 이 말씀의 뜻은,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난 모든 이들, 성도들까지 포함한 그 모든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이 최고이시고, 가장 뛰어나시고, 모든 부활한 자들 가운데 으뜸이시라는 뜻입니다. 덧붙여서 말씀드리자면, 모든 인류가 다 부활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생명의 부활로, 어떤 이는 심판의 부활로 살아날 것입니다. 이 모든 부활 중에서 예수님이 가장 으뜸이십니다. 또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집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요한계시록을 예수님께 헌정한다는 말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요한에게 알리셨고, 요한은 이를 기록함으로써 교회에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 헌정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시고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이라고 고백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영원하신 영광의 그리스도께 헌정된 책입니다.
그리고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미래 시제입니다,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여러분, 아멘이 무슨 뜻입니까? ‘그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삼위일체 하나님께로부터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 드려진 것으로써 예수님의 재림을 모든 사람이 볼 것이니, 그 일이 정말로 그대로 성취될 것을 증거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요한계시록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미리 보여 알려주는 책입니다.
8절입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본질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삼위일체 안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임을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4절부터 8절까지는 서론에 해당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일곱 교회에 보내신 것으로써 요한이 기록하여 우리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헌정된 책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실 이이시며,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시며,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주님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해 다시 오시는 이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책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전후로 일어날 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1장 1절부터 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주제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어서 9절로 들어가면 요한이 본 첫번째 환상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일련의 환상들을 보여주셨습니다. “나 요한은…” 이 표현을 여러 번 사용합니다. 마치 충격에 사로잡힌 듯한 그런 어조입니다. “내가 보았다. 나 요한이 보았다” 이런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런 특권을 허락하셨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놀라면서 믿기 어려워하는 느낌을 표현한 것입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가 밧모섬에 유배되었습니다. 더 이상 복음을 선포하지 못하도록 세상과 격리시킨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어…” 성령님의 통제 아래 있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주의 날에”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주일, 지금의 일요일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쪽에 더 마음이 기웁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언적인 의미에서 성령 안에서 주의 날, 곧 종말의 날을 바라본 것이다”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저는 요한이 주일, 그러니까 일요일에 예배하던 중에 성령님께 감동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읽습니다. “…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요한이 받은 명령입니다.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실제 도시들입니다. 실제로 존재했던 도시였고, 이곳에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몸을 돌이킬 때에 첫번째 환상인 예수 그리스도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세부적으로 모두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모습을 봅니다. 일곱 교회, 일곱 촛대입니다. 이 각각의 촛대는 한 교회를 상징합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일곱 교회는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들 가운데서 거니시면서 교회를 돌보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6절입니다.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런데 20절을 보면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를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다니시며 돌보시는 장면입니다. 등불을 다듬고, 정결하게 하시고, 지혜를 적용하시고, 심판하시고, 교회를 다스리시는 장면입니다. 요한은 영광 가운데 교회를 섬기시는 바로 그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말씀은 사실상 요한계시록 전체의 개요를 보여줍니다. 19절입니다. “네가 본 것과…” 요한이 무엇을 보았습니까? 바로 첫번째 환상입니다. “…지금 있는 일과…” 요한이 살던 당시 시대에 일어난 일을 가리킵니다. 2장과 3장입니다. “…장차 될 일들을 기록하라.” 4장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구조를 알 수 있습니다. 1장은 요한이 본 것, 2장과 3장은 지금 있는 일, 그리고 4장부터 22장은 장차 될 일입니다. 즉, 우리는 환상으로 본 과거 사건, 현재의 문제들, 미래의 사건들을 다룰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교회 시대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교회들 가운데서 일하시며 교회를 돌보고 계십니다. 그 돌보시는 사역 가운데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2장부터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나옵니다. 이제부터 잘 들으셔야 합니다. 이 일곱 교회는 실제로 존재했던 교회들입니다. 실제 도시이고 실제로 존재했던 교회들입니다. 이 편지들을 자세히 연구해보면, 당시 존재했던 도시의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 상황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존재했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교회들은 모든 교회를 대표하기도 합니다. 각각의 교회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교회들은 모든 시대의 교회를 대표합니다. 교회 역사의 어느 시기에나 늘 이런 모습이 존재해 왔습니다. 그리고 일곱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각각 특별한 메시지를 받습니다. 교회 시대를 향한 예수님의 사역입니다.
첫번째 교회는 에베소 교회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교리적으로는 바른 정통적인 교회입니다. 하지만 사랑을 잃어버린 차가운 교회, 냉랭한 교회입니다. 처음 사랑을 버린 교회입니다. 4절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절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에베소 교회는 교리적으로는 바른 정통적인 교회였습니다. 2절을 보면 악한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았고, 거짓 사도들과 거짓 교사들을 분별해냈고, 바른 교리를 지키기 위해서 인내하며 충성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차갑고 형식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런 교회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습니다. 지금도 존재합니다. 전하는 메시지만 옳을 뿐 차갑고 무관심한 교회입니다.
두번째 교회는 서머나 교회입니다. 8절부터 11절까지입니다. 이 교회는 박해를 받는 교회입니다. 10절입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여기서 십 일이란 짧은 기간을 상징합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이 교회에는 책망이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박해받는 교회는 언제나 순결하기 때문입니다. 박해 속에서 정화되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따라오던 사람들은 박해가 시작되면 떠나버립니다. 죽을 각오가 없는 사람은 살해의 위협 속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서머나 교회는 순교적 신앙을 가진 교회, 박해받는 교회였습니다. 교회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이런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습니다. 오늘 저녁 예배 후에 우리가 소련, 지금은 러시아가 되었는데, 소련이었을 때의 교회에 대한 게오르기 빈스(Georgi Vins) 목사님의 간증을 들을 텐데요, 바로 그런 박해받는 교회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겁니다.
세번째 편지는 버가모 교회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2장 12절부터 17절입니다. 버가모 교회는 세상과 결혼한 교회, 즉 세속적인 교회였습니다. 주님은 15절까지 세속성을 설명하시고, 이어서 16절에서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주님께서 직접 싸우시는 교회입니다. 세상과 타협한 교회입니다. 교회의 역사 속에는 항상 이런 교회가 있었습니다. 세상과 구별되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 영합하고, 세상을 본받고 세상 풍조를 따르는 교회 말입니다.
네번째 편지는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말씀입니다. 2장 18절부터 29절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죄를 용납하는 교회였습니다. 특별히 이 교회 안에는 이세벨과 같은 여인이 있었는데, 종들을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를 그대로 방치했습니다. 그래서 경고를 받습니다. 죄를 용납하는 교회, 죄를 징계하지 않는 교회,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지 않는 교회였습니다. 이런 교회 역시 항상 존재합니다.
3장으로 넘어가면 다섯번째 교회인 사데 교회가 등장합니다. 이 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1절입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바로 죽은 교회입니다. 2절을 보면 아주 조금은 살아 있는 것이 있었지만, 그것조차도 곧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죽은 교회였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교회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어쩌면 여러분이 거기에서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생명도 없고, 성장도 없고, 열매도 없고, 기쁨도 없는 교회 말입니다.
여섯번째 교회는 3장 7절부터 13절에 나오는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충성된 교회입니다. 8절 하반절입니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열린 문을 능히 닫을 사람이 없는 교회입니다. 선교적인 교회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충성된 교회라 불립니다. 역사 속에는 항상 이런 교회들이 존재해 왔습니다.
마지막 일곱번째 교회는 3장 14절부터 22절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배교한 교회, 구원받지 못한 교회입니다. 오늘날의 자유주의 교회를 대표합니다. 이 교회의 특징이 15절에 나옵니다.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말하자면 이런 말입니다. “차라리 네가 내게 대적하든지 온전히 내 편에 서든지 둘 중에 하나만 하거라.”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거짓된 교회를 거절하십니다.
이제 요약하겠습니다. 냉랭한 정통 교회가 있고, 핍박받는 교회가 있고, 세상과 결혼한 교회가 있고, 죄를 용납하는 교회가 있고, 죽은 교회가 있고, 충성된 교회가 있고, 마지막으로 배교한 교회가 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이 모두가 실제로 존재했던 교회이면서 동시에 모든 시대 속의 교회를 대표합니다. 따라서 이 일곱 교회에 주신 메시지는 곧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모든 교회, 예수님이 그 사이를 다니시며 돌보시는 모든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이 일곱 편지가 오늘날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믿습니다. 어떤 교회이든 그 교회에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렇게 묻는 분도 계실 겁니다.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교회는 결국 이 일곱 교회 중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그 교회의 지배적인 영향력이 특정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교회가 전반적으로 차갑지만 교리에 있어서는 바르다면, 그 교회는 냉랭한 정통 교회의 모습을 보입니다. 비록 몇몇 성도들은 뜨거울 수 있어도 말이죠. 만약 교회가 하나님께 완전히 무관심하고 열매도 없고 생명도 없다면, 그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비록 소수의 아직 죽지 않은 성도가 남아있을 수 있어도 말입니다. 그러나 만약 지배적인 다수의 성도들이 믿음으로 열려 있는 문을 통과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충실한 교회라면, 그 교회는 충성된 빌라델비아 유형의 교회입니다.
이렇게 요한계시록 3장이 끝나면서 교회에 주시는 메시지도 끝이 납니다. 1장에서 예수님이 교회들 사이를 거니시는 모습으로 시작되어서, 2장과 3장에서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이어지다가, 3장이 끝나면 더 이상 요한계시록에서 “교회”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22장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내가 교회들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라”라는 언급이 있을 뿐입니다. 교회라는 이름은 22장 끝에 가서야 다시 등장합니다. 4장 이후부터는 교회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천년왕국에 들어가서 교회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바로 “신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3장이 끝날 때부터 더 이상 중심 주제가 아닙니다. 3장 마지막 절에 교회가 나오고, 교회를 향한 모든 편지에서 끝나는 말이 같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무슨 뜻입니까? 교회에게 주신 메시지가 단지 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귀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시대를 위한 말씀입니다.
이제 4장으로 들어갑니다. 교회 시대를 지나서 더 나아가는 순간입니다. 사람들이 늘 묻습니다. “그렇다면 휴거는 어디에 나옵니까?” 바로 이 3장과 4장 사이, 그 여백에 있습니다. 2장과 3장에서 교회가 땅 위에 등장하다가, 갑자기 하늘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하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늘의 주제는 예배입니다. 우리는 땅에서 하늘로 옮겨갑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이제 우리는 세번째 단계로 들어갑니다. “네가 본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 있는 일”, 곧 2장과 3장의 교회도 보았습니다. 이제 “장차 될 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흐름과 연대와 구조가 매우 치밀하게 짜여 있습니다.
요한은 다시 성령에 감동되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 환상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환상 가운데 보니 하늘에 보좌가 세워져 있습니다. 여기서 “세워졌다”는 말은 영속성을 의미합니다. 일시적인 보좌가 아니라 영원한 보좌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하면 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 곧 다이아몬드 같고 홍보석, 그러니까 루비 같았기 때문입니다. 또 그 보좌 주위에는 녹보석, 에메랄드 같은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그 에메랄드 빛깔의 무지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반영합니다. 이제 이렇게 하늘에 하나님의 보좌가 나타납니다. 요한이 하늘로 올라가서 이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봅니다. 이제 우리는 하늘에 있습니다. 하늘이 땅 위에서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우선 거기에 누가 있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자, 누구일까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저는 교회를 가리킨다고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상징한다고 믿습니다. 왜 그렇게 믿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장면은 상급을 받은 모습입니다. 면류관을 쓰고 있습니다. 금관, 그러니까 금 면류관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휴거된 교회, 완성된 교회가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서 영광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며 상을 받은 모습으로 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데리러 오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저는 우리가 휴거될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일이 상을 받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면류관을 받습니다. 보좌에 앉아서, 흰 옷을 입고, 면류관을 쓰고 있습니다. 세 가지 모두가 교회에 약속된 것들입니다.
저는 이들이 이스라엘일 수 없다고 믿습니다. 그 근거가 요한계시록 5장 9절에 있습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이 노래는 구속받은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들이 구속받은 사람들, 그러니까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구속받은 성도들을 가리킨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천사일 수도 없고, 이스라엘의 성도들도 아닙니다. 확실하게 교회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가장 안전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좌로부터,” 5절입니다, “번개와 음성과 우레 소리가 나고…” 이어서 하나님의 환상이 펼쳐지고, 다시 일곱 영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6절입니다.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습니다. 에스겔 1장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네 생물이 나오는데, 저는 천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생물의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9절, 10절, 11절을 보면 모두가 예배합니다. 하늘 전체가 예배로 가득합니다. 천사들이 예배하고, 성도들이 예배하고, 교회가 예배하면서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제가 이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하늘의 주제는 바로 예배입니다. 하늘에서는 모두가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래서 요한이 하늘을 보았을 때 하나님을 예배하는 무리들을 보게 된 겁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5장에서 흥미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예배가 잠시 멈춥니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무엇입니까? 땅의 소유권 증서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두루마리가 일곱 인으로 봉해졌기 때문입니다. 로마 법에 따르면 유언장은 일곱 번 봉해야 했습니다. 함부로 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쪽 끝에서 조금씩 말아서 봉하기 시작해서, 다시 조금 더 말아서 옆에 또 봉하고, 또다시 봉하고,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말다가 마지막에는 가장 안쪽을 봉해서 일곱 번째 인을 찍습니다. 일곱 인을 모두 뜯지 않고서는 절대로 열 수 없도록 한 겁니다. 그래서 유언장은 반드시 일곱 인으로 봉했습니다. 저는 이 두루마리가 하나님의 유언장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유언은 땅을 예수 그리스도께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시편 2편에서 약속하신 것 아닙니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리고 여기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는 땅의 소유권 증서가 바로 그 약속의 실현입니다.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즉, 누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 있겠는가, 누가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겠느냐는 질문입니다.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요한은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아서 울었습니다. 하나님의 뜻, 즉 일곱 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를 펼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장로 중의 한 사람, 그러니까 24장로들 말고 구속의 의미를 더 잘 알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구속받은 자를 대표하는 장로가 예수 그리스도만이 두루마리를 펼 수 있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어서 6절에 예수님이 등장합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천사들이죠, “장로들 사이에,” 교회를 대표합니다,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일곱 뿔을 가진 모습은 완전한 권능을, 일곱 눈은 완전한 지혜를 의미합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의 충만한 사역을 반영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의 지혜로 충만하고 능력으로 충만하신 분입니다.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7절입니다. 드디어 중요한 순간이 다가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이 구절에 밑줄을 그어 두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일어날 모든 사건이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두루마리를 받으시면서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내가 이 땅을 되찾겠다. 잃어버린 낙원을 회복하겠다.”
그렇다면 이것이 하늘에서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까? 더 큰 예배입니다. 8절부터 14절까지 하늘 가득 예배가 울려 퍼집니다. 천사들이, 성도들이, 교회가, 모두가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왜 하늘이 이렇게 기뻐하는 것일까요? 이유는 분명합니다. 드디어 땅의 반역이 끝날 날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두루마리를 취하시고 봉인을 열어서 땅을 되찾으실 것을 볼 때, 하늘은 흥분과 찬양과 영광으로 가득 찹니다. 그 절정이 바로 12절의 위대한 선언입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마치 헨델의 메시아가 들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는 새로운 국면이 하늘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셔서 땅의 소유권 증서를 들고 계십니다. 온 하늘은 예배하고 있습니다. 질문을 던집니다. “누가 이 땅을 하나님께 되돌려 드리고, 다시 낙원으로 회복할 자격이 있는가?” 그런데 합당한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요한은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데 어린 양이 나타납니다. 어린 양이 땅의 소유권 증서를 받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 두루마리를 펼치겠다. 내가 이 땅을 되찾겠다.” 그리고 그 사실이 7절에서 확증되는 순간, 온 하늘은 다시금 할렐루야로 가득 찹니다.
그렇게 6장은 어린 양이 인을 떼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일곱 인이 있는데, 그 인을 하나씩 떼실 때마다 땅에서 일어날 사건이 드러납니다. 첫번째 인은 평화입니다.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화살은 없고 활만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흰 말을 타고 있는 자, 정복자입니다. 활은 있는데 화살이 없다는 것은 전쟁이 필요없다는 뜻입니다. 활을 들고 있었지만 사용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평화적인 정복입니다. 또 면류관을 받았습니다. 이기고 또 이기려고 나아갑니다. 따라서 지상에서의 환난은 적그리스도가 가져오는 거짓 평화로 시작됩니다. 혹시 비교하고 싶으시다면 다니엘 9장 2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도 이 사건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한 왕이 하나님의 백성과 언약을 맺고 거짓된 평화를 세웁니다. 이 왕은 거짓 그리스도입니다. 평화를 가져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래가지 않습니다.
이 일들은 아주 짧게 짧게 이어집니다. 둘째 인을 떼실 때에, 4절을 보면 또 다른 말이 나옵니다. 이번에는 흰 말이 아니라 붉은 말입니다. 흔히 말하는 요한계시록의 네 말입니다.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둘째 인은 전쟁입니다.
셋째 인을 떼실 때에 이번에는 검은 말이 나옵니다. 5절입니다. “...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곡식을 달아 나누는 모습입니다. 6절입니다. “...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입니다. 그 대가로 밀은 겨우 한 되, 보리는 조금 더 살 수 있지만 결국 하루 종일 일해도 한 사람이 먹고도 부족하거나 간신히 먹을 만큼밖에 살 수 없다는 뜻입니다. 기근입니다. 이어서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라고 합니다. 부자들이 먹는 음식, 사치품이니 손대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평화 뒤에 전쟁, 전쟁 뒤에 기근이 옵니다. 전쟁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면 기근도 전 세계적으로 닥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넷째 인이 열립니다. 죽음입니다. 전쟁과 기근 뒤에는 반드시 죽음이 따라옵니다. 8절입니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망은 사람들을 죽이고, 음부는 그 죽은 자들을 삼키는 것입니다.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제단 아래에 있는 영혼들이 보입니다. 그 기간 동안에 순교를 당하고 구속받은 사람들이 틀림없습니다. 이제 그들은 하늘에 있고, 하나님의 제단, 곧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10절입니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왜냐하면 이 전쟁과 살육, 기근과 혼란 가운데서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영혼이 하늘에 이르러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주님, 성도들을 죽이는 자들에게 언제까지 심판을 행하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언제까지 원수를 갚아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매우 중요한 장면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이후 논의들이 이 장면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주목하셔야 합니다.
11절입니다.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라. 잠시 동안 쉬어라. 너희와 같은 순교자들이 더해져야 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흰 두루마기를 주십니다. 하늘의 옷입니다. 입고 누리며 인내하라고 하십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땅으로 돌아와서,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요엘도 그렇게 말했고 오순절 날 베드로도 언급했던 내용입니다.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무화과나무를 흔들면 설익은 열매가 다 떨어지는 것처럼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합니다.
“하늘은 두루마리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창문 블라인드 줄을 잡아당겼다가 놓으면 둘둘둘 말려 올라가듯이, 하늘 전체가 그렇게 사라진답니다.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상상할 수 있습니까? 무서운 날입니다.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합니다. 15절부터 17절에 나오죠.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이 정도만 봐도 감당하기가 힘든데, 계속 보다 보면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 버릴 겁니다. 요한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런 모든 환상을 계속 보고 있는 요한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 주기적으로 휴식을 주십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7장입니다. 7장을 보면 이 모든 심판 가운데서도 보호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을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판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제단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믿는 자들은 심판이 아니라 보호를 받습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각 지파에서 나온 14만 4천 명의 유대인들입니다. 단 지파는 심각한 우상숭배 때문에 제외됩니다. 신명기 29장에 나오죠. 그러나 단 지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에스겔 48장을 보면 하나님 나라의 지파 배치에 다시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회복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이 특별한 사역에는 참여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 장면은 무슨 뜻입니까? 환난기의 중간, 대환난이 시작될 때에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로 믿고 구원받은 유대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시기를 통과하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해를 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침을 받아 보호받기 때문입니다. 2절과 3절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것도 이들을 해칠 수 없습니다.
환난의 후반기에는 14만 4천 명의 유대인들이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매우 효과적으로 사역할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입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모여든 사람들입니다.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흰 옷을 입고 서 있고, 손에는 종려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큰 소리로 외칩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서 왔습니까? 바로 14만 4천 명 유대인들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에 대한 놀라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14만 4천 명의 유대인을 택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만 2천 명씩을 택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지파를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주후 70년에 유대인의 모든 족보 기록이 사라졌습니다만, 하나님은 모두 아십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각 지파에서 만 2천 명씩을 택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환난 후반기에는 14만 4천 명의 유대인들이 구속받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사역을 통해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능히 셀 수 없는 무리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7장의 나머지 부분에는 온통 예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장면입니다.
이제 8장에 나오는 일곱째 인으로 넘어갑니다. 일곱째 인은 앞선 여섯 인에 대한 응답이고, 일곱째 나팔은 앞선 여섯 나팔에 대한 응답입니다. 일곱째 대접도 앞선 여섯 대접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1절을 가지고 하늘에는 여자가 없을 거라고 농담을 하기도 하는데,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라”라는 말 때문입니다. 농담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심한 말입니다.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 무슨 뜻입니까? 무엇이 멈췄다는 뜻입니까? 하늘에서 무슨 일이 계속되고 있었죠? 예배입니다. 바로 앞 7장에서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 예배였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반 시간 동안 멈춥니다. 왜 멈췄습니까? 두려움 때문입니다. 아니면 경외심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가 쏟아지는 광경 앞에서 모두가 경외심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일곱 나팔 심판이 이어집니다. 또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됩니다. 주님께서 두루마리의 인을 모두 떼셨고, 그 끝에 나팔이 울려 퍼지면서 심판을 알립니다. 6절입니다.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붑니다. 그러자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졌습니다. 그 결과 수목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각종 푸른 풀이 불타 없어졌습니다. 식물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식물에 대한 심판만이 아닙니다. 사람은 식물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심판이기도 합니다. 동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식물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심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지구의 산소 공급 체계에 대한 심판일 수도 있습니다. 식물은 산소를 공급하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나서 피조물의 3분의 1에 대한 장면이 나옵니다. 8절에 둘째 나팔, 곧 둘째 재앙이 나옵니다. “...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모든 초목의 삼분의 일이 사라지고,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생물 삼분의 일이 죽습니다. 그 결과 전 세계 바다의 삼분의 일에 썩고 부패한 시체들이 둥둥 떠다니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를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푸른 풀과 식물과 나무,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피조물로 인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10절에 셋째 나팔이 나옵니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물샘, 그러니까 민물을 심판하셨습니다. 모든 민물의 삼분의 일이 쓴 물이 됩니다. 다른 피조 세계와 마찬가지로 3분의 1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12절에 넷째 나팔이 나옵니다.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일정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십니까? 우리의 시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상상이 되십니까? 하루하루의 삶에 어떤 혼란을 줄지 아시겠습니까? 해의 삼분의 일을 잃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이 되십니까? 달의 삼분의 일이 사라지고 별들의 삼분의 일이 사라져서 어둠이 덮입니다.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끔찍한 일입니다. 시간 체계가 무너지고 완전히 혼란에 빠집니다. 도처에서 비정상적인 천체의 변동이 일어날 겁니다.
13절입니다.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저는 ‘화’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이런 뜻입니다. “이 일들이 심하다고 생각하는가? 이제 다가올 세 나팔 소리를 들어보라. 지금까지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숨이 막힐 만한 경고입니다.
그리고 9장에서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붑니다.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습니다. 누군가 하면 사탄입니다. 곧 루시퍼입니다. 무저갱의 열쇠를 받습니다. 무저갱에는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묶어 두신 귀신들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결박되어 갇혀 있는 귀신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귀신들은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환난 때에 루시퍼의 손에 열쇠가 주어지고, 다섯째 나팔이 울릴 때 무저갱을 열게 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수 세기, 수천 년 동안 결박되어 있던 귀신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2절입니다.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며.” 3절은 귀신들이 황충과 같다고 합니다. 온 세상을 휩쓰는 재앙과 같은 존재입니다. 환난이 끔찍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미 세상에 퍼져 있는 귀신들에 더해, 지옥 깊은 곳에 묶여 있던 귀신들까지 풀려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4절입니다,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그 귀신들은 피조세계를 해치지 못합니다. 오직 사람만을 공격합니다. 5절을 보면 죽일 권한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죽이지는 못하고, 단지 전갈에 쏘인 듯한 고통을 주어서 괴롭힙니다. 그래서 6절에 기록된 대로,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죽기를 구해도 죽을 수 없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7절부터 10절에는 이 귀신들의 모양이 상징적인 언어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11절을 보면 그들에게 왕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어로는 그 이름이 아바돈이요 헬라어로는 그 이름이 아볼루온이더라.” 이 이름의 뜻은 ‘파괴자’입니다. 여러분, 여기까지만 봐도 무섭지 않습니까?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아직도 나팔 두 개가 더 남아 있습니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유브라데 강이 열립니다. 15절입니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이더라.” 그 결과로 전 세계 인구의 삼분의 일을 죽이는 군대가 풀려납니다. “마병대의 수는 이만 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이만 만은 2억 명입니다. 동방에서 유브라데 강을 건너옵니다. 18절입니다. “이 세 재앙 곧 자기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말미암아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고대의 언어로 묘사된 어떤 무기의 일종 같습니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여기서 복술이란 마약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저주합니다.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나팔 아닙니까? 여섯째 천사까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 모든 기간 동안 교회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10장은 다시 잠시 숨을 고르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너무도 무서운 심판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요한에게 또 다른 환상을 보여주시는데, 이번에는 좋은 환상입니다. “내가 또 보니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 그런데 4절을 보면 요한에게 기록하지 말라고 합니다.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즉, 이건 너무나 믿기지 않는 일이다, 죄인들에게 임할 심판은 너무나 크고, 너무나 끔찍하고, 너무나 무섭다, 말하지 말라. 비밀이다. 7절입니다. “...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이 부분은 드러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요한은 그 환상 속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보았습니다. 땅을 되찾을 것을 상징합니다. 그 두루마리를 갖다 먹으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실제로 먹었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무슨 뜻입니까?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시는 것을 보는 것은 달콤하다. 그리스도는 통치자가 되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영광 가운데 다스리셔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쓰기도 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영광 중에 오셔서 다스리신다는 것은 세상의 파멸과 영원한 심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지만 쓰다는 것이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기 전에, 11장에서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의 장면이 나옵니다. 정말 강력한 말씀입니다. 잘 보십시오. 제가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물론 우리 주님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찾고 계시다면 제가 자원하겠습니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세상은 이들을 증오할 겁니다. 뉴에이지 사회도 증오할 겁니다. 휴거를 “인간의 의식이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던 사람들을 다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사람들도 이 두 증인을 증오할 겁니다.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때마다 세상은 이들을 증오할 겁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5절입니다,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이런 능력, 여러분도 갖고 싶지 않으십니까? 박해를 받고, 공격을 받고, 사람들이 복음을 믿지 않고, 생명을 위협할 때마다 불을 내뿜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두 증인은 하늘을 닫을 권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고 가는 곳마다, 전하는 동안에는 비가 내리지 않도록 가뭄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날씨를 다스릴 수 있는 겁니다.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그렇다면 매일 저녁에 어떤 뉴스가 나오겠습니까? “다음은 두 증인에 대한 소식입니다. 이번 주에는 신시내티에 있었는데,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강물이 모두 피로 변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재앙이 임했습니다. 이 두 사람을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시도할 때마다 헛수고가 되어 버립니다” 이런 뉴스가 나올 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짐승이 무저갱에서 올라옵니다. 짐승이 올라와서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들의 시체가…” 그들이 죽을 때 어디에 있습니까? 예루살렘입니다. 맞습니다.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그러니까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살해당합니다.
그러면 뉴스에서 뭐라고 보도할지 상상이 되십니까? “마침내 두 증인이 죽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시체가 길거리에 버려져 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는 길거리에 시체를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그런데 길에 시체를 내버려 두었다고 합니다. “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그렇다면 온 세상이 어떻게 예루살렘에 있는 시체들을 볼 수 있겠습니까?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텔레비전입니다. 백 년 전에는 불가능했습니다. 전 세계가 동시에 본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가능합니다. 사람들은 시체가 장사되는 것도 막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무 기쁘기 때문입니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마치 ‘죽은 증인 기념일’을 축하하는 것처럼 선물을 주고받는답니다.
세상은 이 두 사람이 죽은 것을 그렇게 기뻐합니다. 기자가 현장에서 이렇게 중계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두 증인이 죽은 지 이제 사흘 반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이 지상에서 사라진 것에 매우 안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1절을 보십시오.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저는 이 장면을 느린 화면으로 다시 보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분명히 두려워할 겁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겁니다.
이어서 제가 참 좋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남은 자들은 두려움에 떱니다.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증인을 잃지 않으십니다. 결코 잃지 않으십니다.
이 짧은 막간이 끝나면 다시 일곱째 나팔로 돌아옵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붑니다. 바로 결말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정말 좋습니다. 15절입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바로 그 순간, 일곱째 나팔이 울려 퍼지면 세상의 모든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됩니다. 놀랍고도 놀라운 순간입니다.
12장은 마지막 일곱 대접 심판으로 들어가기 전에 세부사항을 보여줍니다. 여기에는 사탄이 끊임없이 이스라엘과 메시아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해온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들과 싸웠습니다. 이 장에 나오는 여자는 이스라엘입니다. 그 여인에게서 난 아이는 그리스도입니다. 용은 사탄입니다. 그 용은 언제나 여인에게서 태어난 아이를 노렸습니다. 과거부터 계속 싸웠고, 앞으로도 싸울 겁니다. 7절을 보면 사탄의 무리와 미가엘과 천사들이 하늘에서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누가 이기겠습니까? 능력 있는 천사장 미가엘과 천사들이 이깁니다. 9절 하반절입니다.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잘 들으십시오. 무저갱에서 나온 귀신들이 황충, 메뚜기처럼 온 땅에 퍼지고, 공중 권세를 잡고 떠다니던 귀신들도 더 이상 하늘에 있지 못하고 땅으로 던져집니다. 욥기에서 사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것과 같은 일이 더 이상 허락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전부 땅에 내려와 귀신으로 가득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 공격의 초점은 이스라엘을 향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십니다. 실제로 12장 16절에서는 땅이 갈라져 이스라엘을 뒤쫓던 군대를 삼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땅이 갈라져서 군대를 삼켜버리는 놀라운 보호의 사건입니다.
13장으로 넘어가면 또 다른 중요한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적그리스도, 곧 세상의 통치자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모든 공격을 이끌어 가는 자로 나타납니다. 4절입니다.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짐승은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습니다. 다시 말해서 환난의 후반부 3년 반 동안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의 이름과 장막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모독하며, 성도들과 싸워서 이기도록 허락을 받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습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엄청난 권세와 영향력을 행사하며 세상의 통치자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에게도 동료가 있습니다. 13장 11절부터 끝까지는 거짓 선지자를 소개합니다. 짐승은 적그리스도이고, 거짓 선지자는 그의 동료입니다. 마치 바로에게 얀네와 얌브레가 있었던 것처럼, 발락에게 발람이 있었던 것처럼, 압살롬에게 아히도벨이 있었던 것처럼, 적그리스도에게도 동료가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모든 사람에게 적그리스도를 좇으라고, 적그리스도를 경배하라고 말할 겁니다. 그리고 거짓된 기사와 거짓된 표적을 행하고, 짐승의 큰 형상을 세워서 그것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데, 아마도 어떤 전자 인형극 같은 것으로, 혹은 15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 우상 자체 안에 귀신을 집어넣어서 귀신 들린 우상이 되게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세상은 너무나도 철저히 귀신의 영향을 받아서, 온 세상 사람들이 성경에 나오는 귀신 들린 아이, 그러니까 불 속에 뛰어들고 물에 빠지고 입에 거품을 물고 땅을 구르던 아이처럼, 혹은 무덤 속에 살면서 온몸을 돌로 상하게 했던 거라사의 귀신 들린 사람처럼 미쳐서 날뛸 수 있습니다. 온 세상이 말 그대로 귀신으로 기어 다니는 곳이 됩니다. 귀신들이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심지어 우상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하고, 온 세상을 적그리스도를 경배하도록 이끕니다. 거짓 선지자가 하는 짓입니다.
그리고 나서 요한은 16절에서 18절까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표가 없이는 아무것도 살 수도 팔 수도 없다, 그러니까 사회 활동을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 표는 짐승의 이름의 수인 666입니다. 여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단지 인간을 나타낼 뿐입니다. 인간은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습니다. 7은 하나님의 완전수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아무리 애써도 언제나 666입니다. 완전함에 미치지 못합니다. 인간의 체계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항상 저에게 흥미로운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택시 번호판이 666으로 시작하고 그 뒤에 하이픈, 그 다음에 숫자가 붙는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단지 흥미로울 뿐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점은 이마나 손에 그 번호가 있지 않으면 사회에서 제대로 활동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비슷한 상황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신용카드와 번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은행 카드를 가지고 있으면, 은행 기계에 그걸 꽂고, 번호를 눌러서 거래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미 우리는 어떤 숫자를 가지고 있는 겁니다. 은행 카드를 기계에 넣고 번호를 입력해서 연결이 되면 우리가 누구인지 정확히 압니다. 우리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거래할 수 없게 하려면 그냥 그 번호를 삭제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만일 현금 없는 사회가 된다면, 신용카드의 문제점이 하나 있는데 분실의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마나 손에 번호를 새기는 방법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대기후에서도 신체 중에 그 두 부분이 제일 쉽게 드러나고 인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다스릴 것이고, 이런 모든 방식을 이용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권세를 통해 모든 것을 통제할 것입니다.
이전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벌써 사람들의 몸 속에 직접 삽입할 수 있는 컴퓨터 칩이 개발되고 있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뇌, 칩, 그리고 컴퓨터 시스템이 서로 소통되도록 해서,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그 사람이 즉시 도서관의 모든 자료에 접근할 수 있고, 그 정보가 컴퓨터에서 칩으로, 그리고 뇌로 바로 들어오게 되는 겁니다. 만약 이런 시스템이 적그리스도 같은 자에게 적용된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을 겁니다.
14장 1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14만 4천명이 하늘에 있습니다. 찬양하며 기뻐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인해 찬양합니다. 물론, 대규모의 재앙은 아마겟돈 전쟁에서 정점에 이릅니다. 14장 14절을 보시면, 이제 남은 부분을 더 빨리 진행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계획대로 잘 되고 있습니다. 14장에서 우리는 아마겟돈의 단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15절에서 낫을 휘두르는 것, 낫을 휘둘러 거두는 것, 곡식이 다 익어서 추수하는 것은 모두 다 심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주님이 무서운 심판과 함께 오십니다.
20절은 이렇게 요약합니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높이로는 약 1.2미터에서 1.5미터, 길이로는 320킬로미터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길이와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길이와 같고 1.5미터 깊이의 피의 강으로 심판의 피비린내 나는 광경을 상징합니다. 포도알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밟으심 앞에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듯이,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무력하게 짓밟히는 것입니다.
세상은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사실 14장 9절에서 1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성도들아, 참고 견디라. 하나님께서 곧 심판하실 것이다.” 그리고 만약 순교하게 되더라도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진노를 풀어내시고, 친히 심판을 이루시고 계신다고 합니다.
이제, 15장에 왔는데, 마지막 일곱 심판입니다. 이 심판은 기관총과 같습니다. 탕, 탕, 탕, 탕. 최후의 일곱 재앙이 일어납니다. 1절은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15장에서 하늘에서 펼쳐지는 장엄한 장면을 봅니다. 최후의 심판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8절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하나님이 친히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진노의 심판의 연기를 발하시며, 그 심판을 16장에서 쏟아 부으십니다.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 독한 종기는 헬라어로 ‘헬코스(helkos)’인데요, 거지 나사로에게 있던 ‘헌데’와 같은 말입니다. 암처럼 퍼지는 종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계속 읽습니다.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생물들이 코를 찌르는 냄새와 함께 죽은 채로 둥둥 떠 있습니다.
“셋째 천사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이제는 4분의 1도 아니고, 3분의 1도 아니고, 이제는 전부입니다. 파괴적인 심판입니다. 민물이 오염됩니다.
8절부터 9절입니다.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그리고 다섯째 대접은 믿기 어려운 심판입니다. 타는 듯한 태양이 쏟아진 뒤에는 완전한 흑암이 임합니다. 사람들이 고통 때문에 혀를 깨물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무것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빛이 전혀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고, 온갖 위험에 노출되어서 상처를 입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도무지 피할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11절을 보십시오.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모든 재앙이 누적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처음부터 쌓이고 쌓여 결국 이렇게 된 것입니다. 누적된 겁니다.
“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앞에서 우리가 봤던 그 군대입니다. 그리고 아마겟돈 전쟁이 벌어집니다. 마지막 전쟁이 아마겟돈 평원에서 일어납니다. 저는 그곳에 직접 가봤습니다. 그 평원에 서봤습니다. 나폴레옹은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전투 장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나오는데, 특별한 귀신들입니다. 지옥의 진창에서 기어 나와서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옵니다. 부정한 삼위일체입니다. 이적을 행하는 귀신들의 영입니다. 아마겟돈에서의 전쟁을 위해 온 세상을 불러 모으지만, 그날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날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온 세상이 아마겟돈으로 몰려와서 싸웁니다. 다니엘 11장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북방의 왕들이 내려와 남방을 휩쓸고, 동방의 왕이 올라오며, 서방도 개입합니다. 동방의 왕들이 옵니다. 모두가 싸우고 있습니다. 학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모든 전쟁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십니다.
일곱째 대접은 16장 끝에서 쏟아집니다.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모든 섬이 사라지고, 산들도 사라지고, 하늘에서 큰 우박이 쏟아집니다. 믿어지십니까? 그 무게가 각각 약 45킬로그램이나 됩니다. 45킬로그램짜리 얼음 덩어리입니다.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17장과 18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환난 후반부를 다시 되짚어 줍니다. 그 두 장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이 생길 겁니다. “환난 시대에도 종교가 있을까요? 종교가 존재할까요?” 17장이 설명합니다. 종교가 있을 겁니다. 거짓 교회가 있을 겁니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아십니까? 참된 교회가 신부라면, 거짓 교회는 무엇일까요? 음녀입니다. 음녀입니다. 17장은 많은 물 위에 앉아 있는 음녀,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는 음녀, 짐승을 타고 있는 음녀를 언급합니다. 그 음녀는 적그리스도를 타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인 정치 지도자와 음녀인 거짓 종교가 함께 존재합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힘에 취해 결국에는 음녀를 삼켜버립니다. 음녀를 집어 삼키고는 “이제 온 세상이 나만을 경배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때 거짓 선지자가 우상을 세운다고 생각합니다. 온 세상에게 우상을 경배하라고 명할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어떤 종교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짐승이 16절에서 음녀를 삼켜버렸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18장은 그 시기로 다시 돌아가 또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그렇다면 그때 세상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경제는 어떤가?” 이 부분은 같은 시기의 경제적 관점을 보여줍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2절에서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여기서 “바벨론”은 세상의 마지막 경제 체계를 가리킵니다.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귀신들이 세상을 장악한 상태입니다. 나라들이 애통해합니다.
18장 5절입니다.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이제 사람들은 온 체계가 붕괴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모든 경제가 무너지고, 모든 돈이 무너지고, 은행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10절입니다.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이제 그런 것들에는 아무도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런 때에 물건을 사러 다니겠습니까? 누가 그 상황에서 상점에 가겠습니까?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이요 값진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누가 이런 것에 관심을 갖겠습니까?
그리고 선상 무역이 사라질 것입니다. 17절입니다. 모든 운송 체제가 무너집니다. 19절에 나오는 사람들은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며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라고 합니다.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동안, 20절은 이르기를,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모든 음악이 끝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음악이 없습니다. 22절입니다.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아무 음악도 없습니다.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보이지 아니하고.” 장인도 없고, 예술도 없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의 끝입니다.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이 땅에서의 잔치는 다 끝났습니다.
19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하늘에서 잔치가 시작됩니다. 1절에서 갑자기 “할렐루야”가 나옵니다. 3절에서도 “할렐루야”, 4절에서도 “할렐루야”, 6절에서도 “할렐루야”가 나옵니다. 무엇에 대해 그렇게 기뻐하고 있습니까? 6절 끝부분입니다.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마침내 통치하십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리고 이제 구속받은 자들이 주님과 하나 되어 함께 합니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커다란 영광입니다.
저는 지금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 여러분 의복을 입으세요, 우리는 하나님 나라로 갈 겁니다. 하나님 나라로 갈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나라로 가는 걸까요? 이제 나옵니다. 그 방법이 여기 있습니다. 11절부터 이렇게 말합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계속해서 묘사가 이어집니다.
14절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게 우리들입니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우리입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이 자신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다시 오시는 순간입니다. 즉, 예수님이 이 땅에 천년왕국을 세우기 위해 찬란한 영광 중에 아마겟돈에 오실 때의 모습입니다. 흰 말을 타고 오실 것이고, 우리도 흰 말을 타고 흰 옷을 입고 함께 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하기 위해 올라갔고, 예수님과 함께 영광 중에 옵니다.
저는 16절 하반절이 참 좋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아마겟돈에서 심판이 있고, 그 결과는 17절 이후에 나옵니다. 살육과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새들을 불러 사람의 살을 먹게 하십니다.
20절에서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유황불 붙는 못에 산 채로 던져집니다. 그 군대 가운데 남은 사람들은 칼로 살해당합니다. 아시겠습니까? 20장으로 넘어가면 주님이 왕국을 세우십니다. 4절을 보십시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4절 끝을 보십시오.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살아서 왕 노릇하기 위함입니다. 천 년이 끝나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7절을 보십시오. 사탄이 잠시 풀려납니다. 그동안 묶여 있었습니다. 잠시 풀려납니다. 세상으로 나갑니다. 아셔야 할 것은, 천년왕국 동안 사람들은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낳습니다. 세상을 다시 채웁니다. 온 땅에 사람들이 퍼집니다.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겁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서 천 년 동안 다스리시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다는 겁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사실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알면서도 예수님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사탄이 최후의 반란을 일으킵니다. 9절을 보면 마지막에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 모든 반역자들을 태워 버립니다. 11절에서는 역사 속에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크고 흰 심판의 보좌 앞에 모입니다. 15절에 의하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면 지옥에 던져집니다. 이것이 천년 왕국의 끝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이렇게 물으실 수 있습니다. 21장 1절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2절입니다.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니”라고 말합니다. “그게 뭡니까?”라고 물으실 텐데, 3절입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바로 영원입니다. 그렇죠? 이게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21장 나머지 부분과 22장에 걸쳐 그 모습이 계속 묘사됩니다.
자, 마지막 메시지가 22장 끝에 나옵니다. 17절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뭐라고 하십니까?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여러분, 이것이 마지막 초청입니다. 오라. 그리스도께 오십시오. 와서 마시십시오. 와서 예수님의 구원에 참여하십시오. 왜냐하면 이 심판이 일어나면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1절을 보면 심판이 임할 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다시 말해서, 그때의 상태가 영원히 그대로일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요한과 함께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저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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