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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 새 날을 주셔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삶의 열매로 주님께 찬양 돌리기를 바랍니다. 이 아침에 기독교의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하고 진리를 더 알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들에게 기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곳에서 받은 복과 기쁨으로 세상에서 열매 맺게 하옵소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불러 모아 주셔서 서로를 섬기며, 주님을 섬기고, 우리의 삶을 온전히 변화시킨 복음을 세상에 전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 아침 복음을 전하는 일을 더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자,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서의 역할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이 세번째 시간입니다. 유인물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함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고린도전서 12장 13절입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여러분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바로 그 순간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가 됩니다. 성령 세례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세례를 받으면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마치 세례를 줄 때 누군가를 물 속에 담그거나 넣는 것과 비슷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교회라는 개념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지체가 된 것입니다. 아직 교회에 등록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공식적인 교인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구원받은 그 순간 여러분은 이미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표현은 교회를 나타내는 여러 표현 중 하나입니다.

성경은 교회를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우리는 양떼로 그리스도는 목자로, 우리는 가지로 그리스도는 포도나무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그리스도는 왕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은 아버지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교회를 표현합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특별한 것이 바로 몸이라는 개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는 개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 몸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4절입니다.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이처럼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입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을 때 이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첫째로 여러분의 구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에베소서 2장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2장 11절입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이 말씀은 특별히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을 향한 것입니다. 12절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바로 불신자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도 없고,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고, 약속도 없는, 완전히 공허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13절입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여러분은 한때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고, 하나님도, 그리스도도, 소망도, 약속도 없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여러분과 하나님은 원수지간이었는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여러분의 손을 잡아서 하나로 모아주신 것입니다. 실제로 두 사람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이런 일을 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부 사이가 소원해질 때가 있는데, 부부 모두가 사랑하는 자녀가 부부를 다시 하나되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하곤 하죠.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입니다. 프랑스군과 독일군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독일군이 점령한 농가를 프랑스군이 탈환하려고 했습니다. 들판을 사이에 두고 서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군인이 "사격 중지!" 이렇게 외쳤습니다. 한 아기가 들판을 기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죠. 어찌된 일인지 그 아기가 농가 밖으로 나와 있었던 것입니다. 독일군들도 그 아이를 보고는 사격을 중지했습니다. 이 사건의 놀라운 점은 총성이 양쪽 모두에서 멈췄다는 것입니다. 후에 기자가 이 사건을 기사로 쓰면서 '한 아기가 평화를 가져왔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런 일을 하셨습니다. 서로 적대 관계에 있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평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된 이유는 하나님은 거룩하신데 반해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벽을 허물어 주셨다고 말합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관계도 해당됩니다.

16절입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그러니까 유대인과 이방인이 화목하게 된 후에, 교회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됩니다. 십자가가 이 일을 이루어냅니다. 십자가는 죄를 없애는 사건이었습니다. 죄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벽이었습니다. 장벽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 장벽이 제거됩니다.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두 하나입니다. 침례교이든, 장로교이든, 성공회이든, 교파에 상관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거듭났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7절은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 합니다. 즉 그리스도와 합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다 하나입니다.

에베소서 4장 17절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이방인들은 어떻게 행합니까?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합니까?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한마디로 감각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양심의 통제를 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양심이 무뎌졌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불순종함으로써 양심이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이방인처럼 허망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합니다. 진리를 알지 못할 만큼 이해력이 낮아져 있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단절되어 영적으로 죽어 있습니다. 마음의 눈이 가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 어떤 감정도 없이, 악한 일과 방탕한 삶, 부정함과 탐욕에 자신을 내맡깁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완전히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전의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처럼 엄청난 변화가 일어납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구절, 2장 1절을 보겠습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우리는 죽어 있었습니다. 육체적으로가 아닌 영적으로 죽어 있었습니다. 영적 죽음이란 하나님께 반응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제가 지금도 기억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하루는 사무실에 앉아 있었는데, 한 어린 소년이 급하게 뛰어들어왔습니다. "제발 저희 집에 와주세요. 엄마에게 도움이 필요해요. 여동생이 방금 죽었어요." 로스코 대로에서 여섯 집 정도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서둘러 그 집으로 가보니, 4개월쯤 되어 보이는 예쁜 아기가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온몸이 파랗고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아이 엄마는 계속해서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아기가 왜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 엄마는 아기에게 입을 맞추고 안아주었지만, 도무지 아기를 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기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육체적 죽음이란 반응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제게 아주 좋은 예시가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아마도 가장 큰 사랑은 자녀에 대한 엄마의 사랑일 겁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강한 유대감입니다. 엄마가 자신의 뱃속에서 나온 생명과 맺은 유대감입니다. 하지만 엄마가 가진 모든 사랑과 그 작은 아이에게 쏟은 모든 정성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죽음은 반응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극을 주어도 반응할 수 없습니다.

영적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반응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과 하나님의 역사에 완전히 무관심하고 반응하지 못합니다. 영적 죽음입니다. 하나님께 반응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바로 이것이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어 있었습니다. 3절에서 말하듯이 우리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면서 지내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흐름을 따라 행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대로 행했습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인 사탄을 따랐고, 하나님께 완전히 무감각했습니다. 마치 육체적으로 죽어서 물리적 자극을 느낄 수 없는 것처럼, 영적으로 죽어서 영적인 현실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4절입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물론 모든 변화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었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죽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바로 이 생명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생명이란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해서 영적 감각이 깨어나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느낄 수 있게 된 겁니다. 이제는 하나님과 함께 살아갑니다. 성경 말씀이 마음에 와닿기 시작하고, 기도가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삶이 열리는데, 영적으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이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영역으로 깨어나는 것입니다. 구원받았을 때 우리는 살아났습니다. 이 새로운 삶의 한 부분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순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겁니다. 전에는 세상에 속해 있었고 하나님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구원으로 인한 변화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느끼고, 경험하고, 알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 안에서 살아갑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시간의 길이가 아닙니다. 삶의 방식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되는 새로운 생명입니다. 이제 구원이 무엇이고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이해가 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두번째로 여러분의 위치, 여러분의 지위가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잘 들어보십시오. 가장 실제적인 의미에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첫번째 지위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아주 실제적인 의미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실 때 그리스도와 하나로 보신다는 뜻입니다. 마치 태아가 자궁 속에 있는 것처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보시기에 의롭다 하실 수 있고, 죄를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라고 말하는 것도, 그리스도가 받으시는 모든 것을 우리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 안에서 특별한 정체성을 갖게 된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개념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9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하나님은 세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때도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보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6절입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5절이네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킹 제임스 버전에는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가 “받으실 만한 자로 만드셨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받으실 만한 자로 만드셨을까요?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 안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우리는 말 그대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의 인격이 우리를 감싸주시기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보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7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이 사실을 알게 되기를 바라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되기를 기도한다." 이는 "영광의 풍성함"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뜻입니다. 19절이 말하듯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강력한 능력"의 모든 것을 상속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모든 소유와 능력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정말 놀라운 개념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구원을 잃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리스도가 구원을 잃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안전한 겁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서에는 흥미로운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생각해 볼 만한 구절이 있는데 전도서 3장 14절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완전한지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정말 좋은 원칙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 영원합니다.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은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완전하고 온전합니다. 절반만 구원받거나 4분의 3만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또 어느 정도까지만 구원받아서 나중에 조금씩 더 보태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받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믿는 그 순간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올챙이처럼 태어나는 게 아닙니다. 생후 3개월쯤 되었을 때 갑자기 짠하고 오른팔이 생겨나고, 6개월이 되면 다리가 갑자기 돋아나고, 그러다가 얼마 안 지나서 작은 개구리가 되듯이 그렇게 작은 아기가 되는 게 아닙니다. 그렇지 않죠. 아기들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갖추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존재일 때부터 모든 신체 부위를 가지고 있고, 그저 그 부분들이 점점 자라날 뿐이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꼬리만 달랑 달린 그런 영적 올챙이가 되어서 성숙해질수록 새로운 부분들이 하나씩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미 온전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다만 성장하는 과정이 있을 뿐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자라나는 과정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전하기 때문이죠. 골로새서 2장 10절입니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베드로후서 1장 3절입니다.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여러분에게는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빠진 요소도 없고, 모자란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고 완전한 모습을 갖춘 아기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최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성장해야 하고 성숙해져야 하지만, 빠진 부분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완전한 존재입니다. 정말 중요한 개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요구사항이 충족된 존재로 우리를 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든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도 모든 율법을 다 이룬 존재로 보십니다.

자, 이 사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나눠드린 유인물을 보겠습니다. "나의 영적 위치 점검하기"입니다. 정말 중요한 내용입니다. 여러분이 가져가서 자세히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교회,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책에도 동일한 내용이 있으니까 책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책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왼쪽편을 보시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은 복이 쭉 정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살아있고, 죄에 대해서는 죽었습니다. 완전한 용서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용서받았을까요? 네, 모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우리는 의롭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고,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받았고, 하늘 나라의 시민이 되었고,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새 생명을 받았고, 율법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는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었습니다. 사탄에게 승리를 거뒀습니다. 깨끗하게 되었고, 흠 없이 거룩하게 되었고, 자유를 얻었고,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하며, 평화를 누리고, 하나가 되었고, 은혜 안에 있으며, 교제하게 되었고, 기쁨이 있으며,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인도하십니다.

또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섬길 능력을 받았고 사랑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우리의 지위입니다. 그리고 오른쪽 칸을 보시면 이 지위에 맞게 살아가는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의 실천 과제입니다. 하나님께 영적으로 살아있다면 그렇게 살아야 하고, 죄에 대해 죽었다면 죄에게 자리를 내주지 말아야 합니다. 아시겠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가진 위치, 즉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관점과 우리의 실제 행동은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동네 친구 하나가 저에게 나쁜 영향을 줬습니다. 그 친구는 담배를 피우는 게 굉장히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담배를 피웠는데, '와, 이런 게 진짜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았죠. 그러더니 그 친구가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는 방법을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정말 착한 아이였습니다. 단지 나쁜 친구를 만났을 뿐이죠. 그렇죠? 하지만 결국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마트를 빠져 나가다가 보안 요원에게 걸렸습니다.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습니다. 경찰은 집사님들과 골프를 치고 계시던 저희 아버지께 연락을 했습니다. 불쌍한 저희 아버지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르고 계시다가 경찰서로 오셔야만 했습니다. 실수라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집사님들과 함께 오셔서는 "내 아들일 리가 없어"라고 하셨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유치장에 앉아있는 저를 보셨습니다. 보석금을 내고 저를 꺼내 주셨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제가 교회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아버지가 목사님이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저를 알았죠. 제가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는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당연히 저희 가족의 평판에 좋지 않은 일이었죠. 사람들은 제게 계속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아버지가 목사님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어머니는 저에게 "네가 우리 가족의 명예를 얼마나 실추시켰는지 알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목사님 아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핵심은 제가 제 지위에 걸맞게 살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저의 지위가 저에게 특정한 수준을 요구하는데,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겁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인물 왼쪽편을 보시면 여러분의 지위가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에 걸맞게 살고 계신가요?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행해야 할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보여줍니다. 우리의 지위에 대한 말씀도 있고, 우리가 그 지위를 어떻게 경험하는지, 또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절도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둘 다 필요합니다.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제 친구 중에 미식축구 선수가 있는데, 워싱턴 레드스킨스(Washington Redskins)로 이적을 했습니다. 그 전에는 마이애미 돌핀스(Miami Dolphins)에서 활약했습니다. 마빈 플레밍(Marvin Fleming)이라는 친구인데요, LA 센테니얼(Centennial) 고등학교 출신입니다. 마빈은 그린베이 패커스(Green Bay Packers)에서도 선수생활을 했습니다. 빈스 롬바르디(Vince Lombardi) 감독 밑에서 5-6년 정도 뛰었는데, 그 시절이 참 특별했다고 합니다. 우승컵을 수도 없이 많이 차지했는데, 선수들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플레이를 보여줬다고 합니다.

패커스 팀의 유니폼을 입기만 해도 자신도 몰랐던 뭔가가 솟아올랐답니다. 그린베이 패커스 소속 선수가 된다는 것은 그에 걸맞는 자세를 요구하는 일이어서, 그 이름과 명성에 걸맞게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뉴욕 양키스의 전성기 시절에도 비슷했다고 하죠. 양키스 유니폼을 입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생각해보면 바로 이런 것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그 지위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우리의 행실이 우리의 지위가 요구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겁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행동하니? 네가 누구인지 모르니? 네 아버지가 누구신지 모르니?" 그러니까 우리의 행실이 우리의 지위와 일치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지위는 이미 완벽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 지위는 영원히 우리를 지켜줍니다. 저는 최근에 <영적 성장의 열쇠(The Keys to Spiritual Growth)>라는 책을 썼습니다. 1부에서 영적 성장이 우리의 지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우리의 지위는 이미 완벽하니까요. 그 완벽한 지위에 걸맞게 살아가는 과정에서 영적 성장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점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여러분은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서 화면을 잠시 보겠습니다. 교회의 중심에는 당연히 그리스도, 즉 그리스도의 영이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전도자와 목회자를 통해 교회를 이끌어 가십니다.

유인물에 있는 원형 그림이 교회의 구조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자 중심이신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고, 복음 전도자들, 목회자들, 장로들을 통해 성도들이 준비됩니다. 준비된 성도들이 사역을 시작하면 교회가 세워지고, 교회가 세워질 때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이 더해지고 구원받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기본 구조입니다.

이제 새신자로서 여러분은 교회에 꼭 맞는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성도입니다.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분의 책임은 준비되는 것, 즉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공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역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하는데, 여러분이 사역할 때 교회가 세워지고 다른 사람들이 구원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교회 조직에 대한 간단한 설명입니다. 우리의 역할은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또 다른 그림으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각자의 자리가 있고, 이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여러 부분들, 즉 각각의 개인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연합, 하나됨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그 몸 안에서 여러분이 주목해 주셨으면 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나눠드린 유인물에도 있습니다. 바로 은사의 개념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이지만 몸 안에는 다양한 은사가 있습니다. 도표를 보시면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채워야 할 특별한 자리가 있다는 것, 사역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뒤로 움직이는 작은 화살표들을 보십시오. 우리는 모두 우리가 가진 여러 영적 은사들을 서로에게 나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지 않고 교회 안의 다른 성도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인식하지 않을 때 우리는 사역을 멈추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가 사역을 멈추면 그리스도의 몸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합니다. 또한 세상이 참된 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 방해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몸 안에는 먼저 연합이 있고, 다양한 은사들이 있기 때문에 다양성도 있습니다. 셋째로 그 여러 은사들을 서로 나누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이와 같이 기능합니다.

교회에서 그저 앉아서 받기만 하면 안 됩니다. 모두 성숙해져서 사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도표 기억하시죠? 우리는 서로를 위해 사역해야 합니다. "사역"이라는 말은 섬긴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로 서로를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목록을 보시면 다양한 은사들이 있습니다.

예언, 가르침, 믿음, 지혜, 지식, 영 분별, 긍휼, 위로, 구제, 다스림, 섬김, 능력 행함, 병 고침, 방언, 통역의 은사가 있는데, 마지막 네 가지는 일시적인 표적으로서의 은사입니다. 이 은사들은 초대교회에 주어진 은사였습니다. 앞쪽에 있는 은사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은사들은 성도들이 서로를 섬기는 데 사용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섬김의 직분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모든 신자가 각자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여기서 바울이 첫번째로 말하려는 것은 은사가 서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저에게 가르치는 은사, 설교하는 은사가 있다면, 여러분에게는 구제하는 은사나 믿음의 은사, 긍휼을 베푸는 은사, 돕는 은사가 있을 것입니다. 가르치는 은사가 있을 수도 있죠. 이처럼 우리에게는 다양한 은사가 있을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은사란, 잘 들으십시오, 성령님께서 사역하시는 하나님의 통로입니다. 사람의 능력이 아닙니다. "제 은사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거예요"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피아노 연주는 영적 은사가 아니라 재능입니다. "제 은사는 글쓰기예요. 저는 글을 잘 써요"라고 해도 안 됩니다. 여러분의 은사가 아니라 단지 여러분이 가진 능력이나 재능일 뿐입니다. 성령님께서 사역하시는 영적 통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물론 여러분의 은사를 표현하는 데 글쓰기를 활용할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긍휼을 베푸는 은사가 있다면 어려운 시기를 겪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따뜻한 편지를 쓸 수 있겠죠. 위로의 은사가 있다면 위로하는 편지를, 가르치는 은사가 있다면 가르침을 담은 책을 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체적 능력이나 정신적 능력을 은사와 혼동하면 안 됩니다. 엄연히 다른 겁니다. 이해가 되셨나요? 이해가 안 되시는 부분이 있다면 잠시 후에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영적인 은사가 있습니다. 11절에서 말하듯이, 이 다양한 은사들을 성령님이 모든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누가 어떤 은사를 받을지는 성령님께서 정하십니다. 우리가 원한다고, 노력한다고, 바란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면 하나님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은사들을 조합하십니다. 하지만 단순히 은사만 다양한 것이 아닙니다. 5절에서 말하듯이 직분도 다양합니다. 같은 은사라도 그것이 사용되는 방식이 여러 가지라는 겁니다.

우리 교회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이 강단에 서서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같은 은사라도 펼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죠. 브래드(Brad)의 경우를 보면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브래드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우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소모임에서 그 은사를 사용하죠. 저 역시 가르치는 은사가 있지만, 성령님께서는 제가 많은 회중을 대상으로 이 은사를 사용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같은 은사라도 사용되는 방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은사를 가졌다고 해서 그 사람처럼 똑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은사만큼이나 많은,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다양한 직분이 있습니다. 또한 사역 방식도 다양합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은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성경을 연구하면서 깨달은 바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들은 대부분 하나 이상의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을 교리로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단 하나의 은사만 가진 분도 계실 수 있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한 가지보다는 여러 가지 은사를 받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 가장 두드러지게 사용되는 은사는 그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영적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에 역사하시는 능력입니다. 제 은사는 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저의 가르침의 은사는 저에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여러분에게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의 은사는 저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서로 주고받는 것이죠.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이제 영적 은사를 알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여러분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자신의 은사를 알고 사용해야 합니다. 교제의 영역도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교제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교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모든 사람이 같은 것을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단지 서로를 위해 영적 은사로 섬기고 그 은사를 나누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상호 관심과 돌봄을 주고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신약성경은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라고 말합니다. 신약성경을 쭉 살펴보면 "서로"라는 단어를 정말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서로 훈계하라. 죄 지은 자를 서로 책망하라. 서로 권면하라. 서로 격려하라. 서로 사랑하라.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서로를 세워 주라. 이 모든 "서로"는 그리스도인이 형제자매인 또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가지는 책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단지 우리의 은사로 섬기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 간에 교제해야 합니다.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지위는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모든 것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지위에 있어서는 완벽합니다. 여러분의 실제 행동이 그 지위와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몸의 지체로서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서로 협력하지 않는 몸은 마치 경련을 일으키는 것과 같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합니다.

협력하는 몸은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는 운동선수를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감탄합니다. 그렇게 몸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모습에 우리는 감동을 받습니다. 영적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보여주는 증거는 그리스도의 몸을 어떻게 나타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손과 발이 각각 자기 역할을 하면서 "내가 왜 코가 아닐까?" 하고 투덜거리지 않는, 이렇게 조화롭게 작동하는 몸이 바로 고린도전서 12장의 주제입니다. 그러니까 먼저 협력이 있어야 세상에 증거할 수 있고 성공적인 사역을 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몸 안에서 서로의 은사를 사용하는 것 외에도, 서로가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살고 있는지 살펴볼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세우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에게 조언하고, 필요하다면 서로를 책망하고, 서로에게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는 등의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서의 책임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유인물에도 나와 있죠. 그리스도의 몸 안에 사랑이 있을 때 이 모든 사역이 제대로 작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오직 겸손이 있는 곳에서만 존재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랑은 진정한 겸손이 있는 곳에서만 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이 겸손은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움을 볼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겸손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겸손해질 때 비로소 다른 이들을 진정으로 섬길 수 있게 됩니다.

지금까지 교회의 지체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광범위한 주제를 다뤘습니다만, 완벽하게 설명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여러분께 도움이 되었기를 소망합니다. 조금 더 이어가보겠습니다. 교회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각자의 은사를 사용하고 교제하면서 사역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역은 때로는 교회 조직 안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고, 때로는 밖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 중에는 개인적으로 가정에서 저녁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하시는 분이 계실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우리 교회에서 성경공부반을 맡아서 가르치실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것이 여러분의 은사라면 그 사역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의 공식 사역으로 요양원을 방문해 봉사하실 수도 있고, 또는 아는 성도들을 비공식적으로 돕는 사역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의 사역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교회 안에서든 밖에서든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교회에도 필요한 부분들이 있고, 성령님께서 교회를 인도하셔서 특정한 사역들과 사역의 방향을 발전시켜 나가신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어린이 사역자 훈련이나, 청소년 사역자 훈련, 또는 긍휼과 봉사의 은사가 있는 분들을 위한 요양 사역 훈련 과정이 있는 겁니다. 또는 행정적인 은사가 있는 분들이 행정을 돕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과 같은 기회도 있습니다.

이러한 기회들이 때때로 있을 터인데, 만일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감동을 주신다면 한번 도전해 보시면 참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기회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든 밖에서든 모두 가능합니다. 제 생각에는 여러분이 출석하는 교회에 가서 "제가 이러한 은사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성령님께서 이 교회의 어떤 사역에서 저를 사용하실 수 있다면, 저를 활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이렇게 하고 계십니다. 가끔 다른 교회의 성도님들이 찾아와서 이렇게 물으십니다. "제게 이런 은사와 재능이 있는데, 저를 써주실 수 있을까요? 기회가 된다면 기쁘게 섬기겠습니다."

우리 그레이스 교회 사역의 대부분은 평신도들이 감당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거의 모든 사역이 평신도의 손으로 이루어지고 있죠. 얼마 전에 저희가 심방 사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심방만을 위해서 수많은 교역자를 고용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25명의 전임 교역자가 오직 심방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야고보의 말처럼 심방이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받아들이고, 각자가 사랑으로 돌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함께한다면, 심방을 위한 교역자가 그렇게 많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전문 심방 교역자를 고용하기보다는 평신도들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사역들을 감당하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해 나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각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아시겠나요?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서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교회 지도자들을 위해 꼭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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