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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영적 성장 시리즈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이번 시리즈 제목은 ‘영적 성장의 열쇠’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성숙하기 위한 길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화를 여는 데 필요한 몇 가지 분명한 열쇠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시리즈를 시작할 때 저는 모든 자물쇠를 여는 만능 열쇠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영적 성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아주 실제적인 방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구체적인 열쇠들이 있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살펴보았죠.

결론적으로 영적 성장이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헌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때 성령님이 영적 성숙의 과정을 능력으로 이끄심으로써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영적 아이의 상태에서 성숙한 상태로 성장합니다. 은혜 안에서 자랍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적 성장은 과정입니다. 순간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에 걸쳐 계속되는 과정입니다. 자라나고 발전하고 완성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마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라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결단해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것, 성령 안에서 행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는 것,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변화되는 것, 우리의 몸을 의의 도구로 드리는 것과 이 모두가 같은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결국 같은 내용을 말하는 다른 표현입니다.

저는 성경을 공부해 오면서 성경 속에서 단순한 영적 원리들이 여러 방식과 다양한 형태로 반복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좋은 성경 교사는 가르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두 가지를 배웁니다. 첫째는 ‘망각’입니다. 사람들은 들은 것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계속 반복해야 합니다. 반대로 둘째는 ‘익숙함’입니다.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하면 사람들은 이미 안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같은 내용을 계속 반복을 하되, 항상 새로운 방식과 신선한 표현으로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리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기쁨과 기대가 생깁니다.

성경이 바로 그렇게 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라가야 한다는 몇 가지 기본적인 영적 원리를 제시하고, 그 동일한 개념을 여러 각도에서 반복해서 다룹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관점은 고린도후서 3장 18절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점점 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면서 한 영광의 단계에서 또 다른 영광의 단계로, 그리고 또 다른 영광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열 가지 방법을 말씀드렸습니다. 아주 간단히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주로 시인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빌립보서 2장 11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태어나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족 안으로 들어와야 하고,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로 들어와야 영적 성숙의 과정이 시작됩니다.

둘째, 우리의 삶의 목표를 하나님의 영광에 둠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목표로 삼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바로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셋째, 죄를 자백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여호수아 7장 19절입니다. “내 아들아, 너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우리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며, 죄에서 돌이켜 회개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렇게 성숙의 길 위에 계속 서 있게 합니다. 죄를 자백한 후에 죄를 삶에서 제거하지 않는다면 결코 성숙할 수 없습니다.

넷째,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로마서 4장 20절은 아브라함이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확신에 찬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갈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왜냐하면 따르는 것이 곧 “하나님, 하나님은 신뢰받으실 분이십니다”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뢰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다섯째, 요한복음 15장 8절에서 우리는 열매를 맺음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삶에 열매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일이 사람들의 눈에 보일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선한 행실이 나타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영화롭게 할 때입니다. 우리는 열매 맺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8절입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여섯째로, 우리는 찬양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하나님의 성품과 그 놀라운 일들을 고백하고, 우리의 삶에 역사하고 있음을 인정하며 감사드릴 때, 또한 우리를 성장의 길 위에 머물게 합니다.

일곱번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순종함으로써 성장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일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우리가 보았듯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의 삶이 끝내 죽음으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네가 지금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으니, 정말로 나를 사랑한다면 죽음까지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죽음까지도 감수할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따르겠다고 결단하는, 그 삶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입니다.

우리는 또 기도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기도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예수님께서 행하실 것이고,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기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에, 기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매우 중요한 방법입니다.

아홉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겁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절입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그리고 지난 시간에 마지막으로 살펴본 점은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5절입니다.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누군가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가능성이 두 배가 됩니다.

이번 시리즈의 마지막 시간인 오늘은 이 영적 성장이라는 주제의 의미를 정리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열한번째입니다.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는 정결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도덕적인 정결입니다.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진리입니다. 부정한 삶을 살면서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을 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잠시 깊이 살펴볼 것이니까 꼭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요점은 이것입니다.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영으로만이 아니라 몸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특별히 염두에 둔 것은 개인적인 도덕성의 영역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2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반드시 차분히 살펴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이것만큼 중요한 주제도 드물기 때문이죠. 우리는 지금 도덕 기준이 사라진 사회, 그러니까 비도덕 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도, 과거 교회 역사에서는 용납되지 않았던 죄, 특히 성적인 죄에 대해서 관대해졌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쉽게 죄를 허용합니다.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중요한 말씀을 전합니다.

6장 12절을 보겠습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이제 바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겠죠. ‘음행’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포르네이아(porneia)’인데요, 여기서 ‘포르노그래피’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성적인 죄’를 의미합니다. 모든 종류의 성적인 죄를 포괄하는 아주 큰 개념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성적인 죄에 연루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본문에서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제시합니다.

첫째,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람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왜곡시키기 때문입니다. 먼저 12절을 보겠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의 말은 이런 겁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해를 끼치는 일도 있다.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

‘유익하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심페로(symphero)’입니다. 문자적으로는 ‘함께 가져오다’ 이런 뜻인데, 여기서 ‘이익이 되다’라는 의미가 생겨났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단어를 선원들의 급여나 군인들이 얻는 전리품과 관련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얻게 되는 이익을 말하는 것이고, 결국 ‘유익을 얻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유익하다’라는 단어에 해당되는 영어 단어 “익스피디언트(expedient)”는 아주 흥미로운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가운데 부분의 P-E-D는 발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페드(peds)”라고 말할 때 발을 가리키는 것과 같습니다. 영어에서 이 단어에 ex를 붙여서 조합했을 때 아주 흥미로운 의미가 생깁니다. “exped”는 “발이 자유롭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발이 어떤 것에도 묶여있지 않고 풀려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저에게는 그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그렇게 하면 발이 묶여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행하면 저를 해롭게 하는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허용될 수 있지만, 모든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를 얽어매고 방해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저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구원은 영원합니다. 저는 이제 제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신 사랑으로 저를 끝까지 구속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비록 자유롭다 하더라도 발목을 얽어매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저를 속박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저를 해롭게 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음행입니다. 음행은 결코 유익하지 않습니다. 해를 끼칠 뿐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8절을 보십시오. “음행을 피하라.” 왜입니까? 하반절에서 말하듯이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음행은 여러분을 해칩니다. 그러니 피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난 이제 마음대로 살아도 돼. 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은혜 아래 있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용서해 주셨어. 자유롭게 되었어. 그리스도께서 내가 받을 형벌을 담당하셨기 때문에 율법의 권세에서 자유로워. 예수님이 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죄의 권세에서 자유로워. 예수님이 대신 하나님의 심판을 담당하셨기 때문에 영원한 심판에서 자유로워. 나는 자유해.”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맞는 말이다. 그러나 너희에게 해가 될 일을 할 자유는 없다.”

잠언에는 음행이 얼마나 해로운지에 대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잠언 5장, 6장, 7장, 9장은 음행이 얼마나 해로운지를 아주 실제적으로 보여줍니다. 고린도전서 10장 8절입니다.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고린도전서 12장에도 같은 주제가 나오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살펴보지 않겠습니다. 사실 기억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냥 추측입니다. 어쨌든 고린도전서에 바울이 음행이 얼마나 해로운지에 관해 말하는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죄 중에서도 특히 음행이라는 죄가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을 생각하다 보면 시편 51편이 떠오릅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음행을 범했던 사건입니다. 끔찍하고 아주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가 죽임을 당했고, 다윗은 엄청난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시편 51편을 보면 다윗은 병이 들었습니다. 약해졌고, 외로웠고, 슬펐고, 죄책감에 짓눌렸습니다. 다윗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우리에게 해가 되는 일들을 피해야 합니다.

둘째로, 성적인 죄는 해롭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지배합니다. 12절 하반절에서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음행은 다른 모든 죄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노예로 만듭니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매주 주일 설교를 들으러 오지만, 예배가 끝나고 난 오후에는 음란 영화를 보러 간다고 했습니다. 그 끔찍한 욕망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바로 음행의 결과입니다. 음행을 하면 할수록 더 얽매이게 됩니다. 여기서 “얽매이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권세나 지배 아래 들어가다”라는 의미로, “노예가 되다” 이런 뜻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나를 노예로 만드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 성적인 죄악은 이와 같이 사람을 노예로 만듭니다. 끔찍하고 무서운 속박입니다.

성적인 죄는 시작부터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를 해치고 우리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점이 있습니다. 우리를 왜곡시킨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음행은 우리를 왜곡시킵니다. 하나님께서 몸을 설계하신 세 가지 분명한 목적과 기능이 있는데, 성적인 죄가 이 하나님의 목적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몸은 주님을 위한 것입니다. 13절과 14절입니다.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이제 바울이 요점을 말합니다. “몸은…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 몸을 다시 살리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몸이 주님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우리의 몸도 다시 살리셔서 영광 가운데 거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계획에 속한 이유입니다.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바울이 당대의 격언을 비꼬듯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13절 앞부분에 나오는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다”라는 말입니다. 헬라어 원문에는 동사가 없이 단순히 “음식, 배, 배, 음식”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구요? 이런 뜻입니다. “음식은 배를 위해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해 있어. 자연스러운 거지.” 그리고 성관계를 가리킬 때 이 관용구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실제 의미는 “성관계는 그냥 먹는 것과 같아. 배를 위해 음식이 있고, 음식을 위해 배가 있지. 몸은 성관계를 위해 있고, 성관계는 몸을 위해 있는 거야.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야. 몸의 다른 기능이나 다를 게 없어”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똑같은 말을 합니다. “성관계 가지고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우리는 다 성적인 존재잖아. 별거 아니야. 그냥 나가서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우리는 먹고, 마시고, 자고, 걷고, 뛰잖아. 그거랑 뭐가 달라? 성관계도 그냥 생물학적 활동이야.” 휴 헤프너가 이렇게 말한 것처럼 말이죠. “성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같은 생물학적 활동이다. 그걸 가지고 도덕적으로 까다롭게 굴 이유가 없다. 자기와 생각이 맞는 여자를 찾아서 마음껏 즐기면 된다.” 참고로 저는 이 내용을 <이터니티(Eternity)>라는 기독교 잡지에서 읽었습니다. 혹시나 오해하실까 싶어서 말씀드립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사용하는 그 격언, ‘음식은 몸을 위해, 몸은 음식을 위해’라는 말은 단지 생물학적인 차원의 해석에 불과해. 핵심을 놓치고 있구나. 하나님께서는 음식과 몸을 멸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과 몸을 멸하실 것이다. 몸은 하나님을 위해 있다. 음식은 잠시뿐이고, 성도 잠시뿐이다. 하나님이 너희를 구속하신 이유가 아니다. 하나님이 너희 몸을 위해 세우신 계획이 아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이 너희 몸을 위해 세우신 계획은 성이 아니라 부활이고 영화이다. 그러니 그렇게 놀랍고 특별한 목적을 가진 몸을 어떻게 음란으로 더럽힐 수가 있겠느냐?” 이것이 본질적으로 바울이 전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몸은 첫째로, 주를 위해 있습니다.

둘째로, 여러분은 지금 이 순간도 그리스도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지금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헬라어로 가장 강한 부정 표현인 ‘메 게노이토(me genoito)’입니다. “결코 그럴 수 없다.”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입니다. 그런데 음행하는 자와 연합한다면, 그리스도를 그 음행하는 자와 하나로 만드는 겁니다. 바울이 바로 그 말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는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음행하는 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관계를 가지는 모든 사람입니다. 약혼한 상태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에 주신 목적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음행의 뜻이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어떤 더러운 관계 속으로 끌고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을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18절에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다른 모든 죄는 몸 밖에서 짓는 죄이지만 음행은 몸 안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내면의 부패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강하게 경고하는 겁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이기 때문에 이 죄를 지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 몸에 다른 목적을 두셨기 때문에 이 죄를 지을 수 없다.’

세번째로, 우리 몸은 성령의 전이기 때문에 음행을 해서는 안 됩니다. 19절은 “너희의 몸은 성령의 전이기 때문에 그래서는 안 된다”라고 말합니다. 19절을 읽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몸을 영화롭게 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로 이런 죄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그런즉” 20절에서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안으로나 밖으로나 음행은 하지도 말고 하고 싶은 마음조차 가지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가끔 도덕적으로 부정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주님이 우리를 만나게 하셨다”라고 뻔뻔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때로는 혼전 성관계를 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이 그 관계를 축복하신다고 생각하는 젊은 커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결혼 생활 중에 배우자가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신자와 성관계를 가지면서 하나님이 그 관계 안에 계신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누구든지 음행하고 있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성장할 방법도 없습니다. 성장은 부정이 아니라 거룩함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열한번째는 무엇입니까? 거룩한 삶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방법입니다.

이제 열두번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시간관계상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다루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됨으로, 연합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영적 성장의 열쇠는 바로 이겁니다. 잘 들으십시오. 혼자가 아닌 함께 성장할 때, 곧 히브리서가 말하는 것처럼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할 때 우리는 훨씬 더 빨리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서로를 섬기고 성장하도록 돕는 영적 은사가 있습니다. 로마서 15장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연합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로마서 15장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다시 말해서 “너희가 서로 잘 지내고, 서로에 대해 같은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같은 생각을 가지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아름다운 연합입니다. 6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하나님은 교회의 연합, 믿는 자들의 연합으로써 영광을 받으십니다.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연합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 성숙의 길을 혼자 힘겹게 걸어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함께 동행하며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영광을 돌리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아무도 배제하지 말고, 어떤 파벌도 만들지 말고, 누구도 멀리하지 말고 서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를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보다 더 나은 사람입니까? 그리스도보다 더 높은 기준을 가질 수 있습니까?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도 진공 상태에서 성장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연합을 통해 성장합니다. 왜일까요?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제 삶을 돌아보면,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더 가까이 지낼수록 의롭게 살아가는 것이 훨씬 쉬웠습니다. 왜냐하면 저를 책임 아래 두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랑하고 가까이 지내는 경건한 친구들이 저의 삶을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으면 지적해 주기 때문에 제가 바른 길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정을 주신 것을 정말 감사드립니다. 높은 영적 기대를 가진 자녀들, 그리고 아내를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이 가족이 저를 의로운 길로 걷게 합니다. 제가 그 길에서 벗어나면, 다섯 명 중 한 명이든, 둘이든, 때로는 모두가 나서서 제가 길을 벗어났다고 알려 줍니다. 정말 큰 도움입니다. 만약 그런 관계가 없다면 저는 그냥 표류하고 말 겁니다. “나는 그냥 내 나름대로 영적인 삶을 잘 살아갈 거야. 교회에 얽매이지 않을 거고, 친구도 만들지 않을 거야. 말도 많이 하지 않을 거야. 난 원래 조용한 사람이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분명히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겁니다. 왜냐하면 책임이 없는 곳에는 바르게 살게 하는 압박도 없기 때문이죠.

우리가 영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히브리서 10장 24절부터 25절의 권면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서로 사랑 안에서 연합할 때, 서로 팔짱을 끼고 사랑하고, 섬기고, 붙잡아 줄 때, 한 마음이 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장에서 지적한 고린도 교회의 문제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형제들아,” 1장 10절입니다,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다툼, 파당, 파벌, 그 모든 분열을 없애고 하나가 되라고 권면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삶을 헌신할 때 더 빨리 자라고, 더 강해지고, 더 성숙해집니다.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성장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힘이자 추진력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내용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연결됩니다. 12번째 항목일 수도 있고,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13번째 항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잠시만 베드로전서 4장 마지막 부분을 함께 보겠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또 다른 방법이 나와 있는데, 사실 앞서 말씀드린 연합이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바로 영적 은사를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0절입니다.

베드로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라고 말합니다.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은사를 받았다고 믿습니다. 그 은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께서 주신 재능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받은 독특한 은사의 조합입니다.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서로 다르다고 믿습니다. 마치 눈송이가 모두 다르듯이, 영적으로도 똑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로마서 12장과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열된 은사의 범주,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11개에서 많게는 19개로 보기도 하는 그 목록에서, 각 사람에게 맞게 은사들을 조합해서 주십니다. 그 조합이 각각의 신자에게 주어지는 고유한 은사입니다. 그 고유한 은사는 사역 현장에서 발휘됩니다. 그 은사 자체가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그 은사를 사용해서 서로를 섬김으로써 그리스도의 몸 안에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사역을 수행합니다. 그래서 전략을 잘 세워야 하는 겁니다. 이어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로 은사를 주셨다면 사용해야 합니다.

11절입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말의 은사라면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고, 섬김의 은사라면 육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야 한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다시 말해서, 은사를 사용할 때는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영적인 은사를 사용해서 서로를 섬기고,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하나되어 서로를 섬길 때, 그 안에서 영적인 성장이 촉진됩니다.

이제 지금까지 나눈 내용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각각의 요소를 다뤘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주로 시인함으로써 성장하고, 그 목적을 향해 삶을 맞춤으로써 성장하고, 믿음으로써, 열매 맺음으로써, 찬양으로써, 기도로써 성장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전도로써, 말씀을 전함으로써, 도덕적으로 정결함으로써 성장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를 말했지만, 결국 마지막 결론은 이것입니다. 혼자서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혼자서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의 삶에 이루고자 하시는 성장을 위해서는 서로를 책임지고 섬기는 환경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가 성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명령에서 시작됩니다. 베드로후서 3장 18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이것은 명령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예’ 혹은 ‘아니오’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만일 “예, 하나님, 저는 성장을 원합니다. 멈춘 채로 있고 싶지 않습니다. 성장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복을 알기 원합니다. 한계가 있지만 제가 이해할 수 있는 한, 성숙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깊이 알기 원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유익한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제 안에서 최대한 드러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저는 낮은 이곳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정상에 오르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하는 분은 이렇게 질문하셔야 할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상에 오를 수 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 그리고 따라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그 길을 따르고 믿음의 동역자들에게서 격려를 받을 때, 우리는 참된 영적 성숙에 이르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때 무엇이 남습니까?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 열매가 무엇입니까? 처음 시작한 곳으로 돌아갑니다. 다윗은 시편 16편 8절부터 9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이 말씀을 꼭 붙잡으십시오. 다시 말해, 다윗은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간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영적 성숙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기쁨입니다. “내 마음이 기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고자 하시는 겁니다. 교리문답이 이 점을 정확히 짚었습니다. 이렇게 묻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답입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2장 6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크고 놀라운 기쁨을 쏟아 부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저는 이 기쁨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삶의 부산물이라고 믿습니다. 성장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 기쁨을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영적으로 성장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쁨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깊고도 풍성한 만족감이 주어집니다.

마지막으로 한 구절을 나누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에베소서 3장 21절은 지금까지 우리가 나눈 모든 말씀의 결론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이 바로 교회입니다. 결론으로 이렇게 선포합니다.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은 영광 받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기쁨으로 채워주십니다. 감옥에 갇혀 있거나 끔찍한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바울처럼 커다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기쁨은 영적으로 성장하는 성도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 끝은 무엇입니까? 사도 요한의 말 속에 결론과 목적, 그 끝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영적 성장의 정점입니다. 언젠가 예수님을 뵐 때 우리는 그분과 같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덧붙입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언젠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될 것을 참으로 믿는다면, 지금 당장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영광에 맞추어 살아가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지난 6주 동안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성장하는 방법임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의 육신으로는, 비록 이 진리들을 알고 있다 해도, 스스로는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이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영적으로 성숙해 가도록 친히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 없이는 그리스도의 주권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책망 없이는 우리의 죄를 고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열매를 맺게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열매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찬양을 가득 채워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없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우리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이 가르쳐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거듭나게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정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모든 선한 일들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고, 성장하는 자에게 주시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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