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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마태복음을 보겠습니다. 성경 마태복음 2장, 마태복음 2장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따라 베들레헴으로 온 이야기를 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동방 박사들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들인지를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다시 반복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바사 제국에서 왕을 세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온 이유는, 오래 전부터 기다려 온 왕의 탄생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을 통해서, 또 바벨론 포로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왕에 대한 이야기를 분명히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바사 제국의 왕 세우는 자들은 새로운 왕을 매우 열심히 찾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왕이 폐위되고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죠. 동방 박사들은 왕좌에 오를 위대한 군주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위대한 군주가 나타나야 서방의 거대한 로마 제국에 맞설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동기에는 정치적인 요소와 함께 영적인 요소가 섞여 있었습니다. 이들이 예루살렘에 왔을 때, 헤롯이라는 매우 흥미로운 인물을 만났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이 헤롯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드렸듯이, 마태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야기에 이 장면을 포함시킨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마태복음은 그리스도를 왕으로 제시합니다. 그렇다면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데 있어서, 왕을 세우는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경배하는 장면만큼 잘 어울리는 것이 또 있을까요? 더 나아가서 이들은 이방인이었습니다.

우리는 역설적인 장면을 한 가지 보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메시아를 기다렸어야 할 유대인들이 정작 그리스도의 탄생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었던 이방인들, 당시에 유력했던 민족, 동방의 박사들이 오히려 왕께 경배하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마태의 기록 속에서 왕이신 예수님을 봅니다. 먼저는 다윗의 계보를 통해 보았고, 이제는 세상의 왕을 세우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은 왕으로서 존귀를 받으셔야 하는 분이다”라고 말하고, 2장은 실제로 그 존귀를 받으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바사 제국의 왕 세우는 자들을 통해서,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인정받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장면은 그리스도의 왕 되심,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다스리실 권리를 더욱 분명하게 확증합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참된 왕이 예루살렘, 그러니까 자신의 도성에서조차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왕으로서 가장 환영받아야 할 곳, 바로 그 왕궁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보러 베들레헴으로 가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먼 나라에서 온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 경배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일반 백성들뿐 아니라 지도자들, 통치자들, 신학자들, 제사장들까지 모두가 무관심했습니다. 아니면 헤롯처럼, 쓴 뿌리와 미움과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마태복음의 시작부터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가 보입니다. 무관심한 사람들, 적대하는 사람들, 그리고 경배하는 사람들, 이렇게 세 부류가 나옵니다. 앞으로 이 세 부류를 계속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동방 박사들은 이방 민족의 첫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이방 민족을 마음에 두고 계셨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제부터 마태복음 2장 1절부터 12절을 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서론을 나누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성경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매우 놀라운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마태복음 2장에는 다섯 장면이 있습니다. 다섯 개입니다. 기억하기 쉽도록 간단한 단어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번째는 동방 박사들의 도착, 두번째는 헤롯의 소동, 세번째는 헤롯의 연기, 네번째는 동방 박사들의 경배, 다섯번째는 동방 박사들의 피신입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생각을 정리하시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먼저 ‘동방 박사들의 도착’을 보겠습니다. 1절부터 2절입니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여기서 이 “박사들”이라는 말은 참 번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특정한 세습 제사장 계열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본래 메대 지방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바사 제국, 또 메대 왕국, 그리고 바벨론 왕국에서 매우 높은 지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점차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의미와 거의 동의어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박사라는 것은 단순히 똑똑하다기 보다 지혜자의 지위를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이렇게 묻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예수님이 태어나신 직후에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1절의 처음 부분에서 두 가지를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먼저 “유대 베들레헴”이라는 표현입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한 8-9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아주 조용하고 작은 마을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미가는 이곳을 에브랏, 이렇게 불렀습니다.

“베들레헴”이라는 이름 자체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떡집’, 이런 뜻이죠. ‘베트’는 집이고, ‘레헴’은 떡입니다. 그러니까 ‘떡의 집’, 이런 뜻입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 태어나신 마을 이름으로 아주 잘 어울립니다. 그렇죠? 이 작은 마을은 비옥한 들판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서 생산량이 아주 풍부했습니다. 잠시 이 마을의 모습을 조금 더 설명해 드리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제가 베들레헴에 몇 번 가본 적이 있으니까 최대한 생생하게 묘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예루살렘은 해발 약 600미터가 넘는 고원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높은 언덕 꼭대기에 세워진 도시이죠. 그리고 이 예루살렘 약간 남쪽에 베들레헴이 있습니다. 지형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동서로 높은 능선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보면 말 안장처럼 생겼습니다. 베들레헴은 두 등선 사이의 오목한 곳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회색빛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실제로 거의 석회암밖에 안 보입니다. 오늘날에도 건축 규제 때문에 반드시 예루살렘 돌로 건물을 지어야 합니다. 그래서 건물들이 마치 땅에서 그대로 솟아오른 것처럼 보입니다. 땅 색깔이랑 거의 똑같아 보입니다. 그러니까 베들레헴은 석회암 회색빛 도시입니다. 마치 원형 극장처럼 능선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매우 인상적이죠.

베들레헴 마을에는 오래된, 아주 흥미로운 역사가 있습니다.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야곱이 라헬을 베들레헴에 장사하고 그 무덤 곁에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오늘날에도 택시를 타고 베들레헴으로 내려가다 보면, “저기가 라헬의 무덤입니다” 이렇게 말을 해줍니다.

또한 룻기를 보면 룻이 보아스와 결혼한 후에 베들레헴에 살았습니다. 베들레헴에서 룻은 요단 골짜기 건너편까지 훤히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입니다. 안장처럼 생긴 지형에 서 보면 요단 골짜기를 넘어 사해를 지나 그 너머 모압의 산지까지 시야에 들어옵니다. 모압 여인인 룻은 베들레헴에 살면서도 고향 땅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의 고향 도시입니다. 베들레헴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사실이죠. 베들레헴은 언제나 다윗의 성입니다. 사무엘상 16장, 17장, 20장을 보면 베들레헴이 다윗의 성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23장에는 다윗이 쫓기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을 때에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이렇게 외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고향인 베들레헴을 그리워하는 표현이죠.

이스라엘이 분열된 이후에 르호보암은 이 성읍을 요새로 만들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여러 사건이 있었지만, 베들레헴은 여전히 다윗의 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작은 마을, 사실 도시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작은 마을에서 오래 전부터 메시아가 태어나기를 기다려 왔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왜냐고요? 바로 구약의 예언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다윗 성에서 다윗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아들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메시아가 그곳에서 태어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정작 메시아가 태어났을 때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베들레헴을 조금 더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조금 더 설명해 보겠습니다. 베들레헴의 비탈진 언덕 곳곳에 집이 있습니다. 사실 평평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 탄생 교회 근처 광장에 올라가야 그나마 조금 평지가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비탈이 많고, 그 비탈 위에 집들이 빼곡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집을 비탈에 지을 때에는 주로 아래쪽에 공간을 만듭니다. 석회암이 그렇게 단단하지도 않고, 또 산 자체에도 자연적으로 움푹 패인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더 파내서 동굴 같은 공간을 만들고는 마구간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바로 그런 동굴 형태의 공간에서 태어나셨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오늘날에도 가톨릭 교회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바로 그 동굴을 발견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갈릴리 바다 한가운데를 제외하고는, 예수님과 관련된 거의 모든 장소에 교회를 세워 놓았습니다. 물 위를 걸으신 자리에는 세울 수 없었지만, 그 외에 예수님께서 발을 디디셨다고 여겨지는 곳마다 거의 다 교회를 세워 두었습니다.

그들이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이 동굴은 비탈진 언덕에 위치해 있는데요, 그 위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교회로 들어가면 계단을 따라서 한참을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아주 작고 좁은 동굴이 나오는데요, 머리를 숙이고 어깨를 움츠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 바로 그곳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자리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이 동굴에 관한 이야기는 최근에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동굴을 거룩한 장소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고, 로마 황제가 더럽히려고 거짓 신인 아도니스를 위한 신전을 그 위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인 4세기경에 콘스탄티누스 1세가 이곳을 지나가면서 아도니스 신전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그 이후로 그곳을 계속해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러니까 베들레헴은 비탈진 언덕이 많은 작은 마을입니다. 집 아래에 이런 식으로 산을 파서 만든 작은 마구간도 있습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은 특별히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적절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베들레헴을 떠올릴 때 오직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만을 생각할 수 있으니까 말이죠. 어쩌면 하나님께서도 이 점을 염두에 두셨을 겁니다. 그래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작은 마을을 택하셨을 겁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아주 가깝습니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민감했다면 왕이 태어나셨을 때 온 백성이 주목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입니다.

여러분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기에는 분명히 시간차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장 1절의 동방 박사들의 도착과 예수님의 탄생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지난 시간에 제가 잠깐 언급했지만, 저의 판단으로는 적어도 몇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난 것으로 보입니다. 짧은 기간은 아니지만 예수님이 태어난 것은 연말쯤이고, 그 다음 해 초에 헤롯이 죽었습니다. 헤롯은 기원전 4년 경, 음력 월식이 있었던 3월 말이나 4월 초쯤에 죽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탄생 이후에 최대 4개월, 혹은 5개월, 길어도 6개월을 넘지는 않는 기간이 생깁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11절을 보면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가 구유에 계시지 않습니다. 마구간에 계시지 않습니다. 어디 계신가요? 집에 계십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미 정결예식을 위해서 성전에 다녀왔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유대 여인이 아기를 낳으면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성전에 가서 정결예식을 해야 했습니다. 비둘기를 드렸다고 제가 말씀드렸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드리는 제물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탄생 이후에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 정결예식을 했다면, 요셉과 마리아는 동방 박사들이 가져온 선물로 더 값진 제물을 드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아직 동방 박사들의 선물을 받기 전이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물을 정결 예식에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결 예식을 이미 행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동방 박사들이 도착하기 전에 최소 40일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기 예수님은 이미 어느 정도 자라서 아마 1-2개월 정도 자란 상태였을 겁니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전체적인 배경을 이해하도록 제가 지금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 본문을 보면 “헤롯 왕 때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헤롯에 대해서 설명하려면 정말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배경이며 출신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많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니까 오늘은 중요한 부분만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헤롯은 순수 유대인 혈통이 아닙니다. 에돔 사람입니다. 다른 말로 이두매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에돔은 예루살렘 동남쪽에 있습니다. 헤롯은 바로 이 에돔 출신입니다. 헤롯은 로마에 충성했습니다. 이 점을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로마가 그 지역을 점령하고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영리한 사람들은 로마와 타협했습니다. 출세 욕심이 있는 사람들은 로마에 아부하고 로마와 협력했습니다. 헤롯이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내전이 일어났던 시기와, 로마가 그 지역에 지배권을 확립해 가던 시기에, 헤롯은 로마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의 신임을 얻게 된 것이죠.

로마는 유대 땅을 정복한 뒤에 총독을 세웠는데요, 이 총독은 로마의 속국을 다스리는 공식적인 통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는 에돔 사람 안티파테르(Antipater)를 유대 총독으로 세웠습니다. 헤롯은 이 안티파테르의 아들입니다. 로마 사람들의 환심을 산 사람이죠. 그래서 로마는 헤롯을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임명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과 유대를 다스릴 사람이 필요했고, 지방, 그러니까 시골 지역을 관리할 사람이 또 한 명 필요했던 겁니다. 중요성에 있어서는 조금 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예로운 자리입니다. 그러니까 로마는 안티파테르를 예루살렘과 유대를 다스리게 하고, 아들 헤롯에게는 갈릴리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인 주전 47년에 갈릴리의 분봉왕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7년 뒤인 주전 40년, 앞서 이야기했던 동방 박사들이 왔던 파르티아-바사-메대 지역에서 내전이 일어났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일대를 공격해 들어오자 헤롯은 급히 배를 타고 로마로 도망을 칩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겁니다. 동방 세력이 그 완충 지대를 흔들기 시작하자 헤롯은 서둘러서 로마로 달아난 겁니다. 헤롯은 안티파테르의 아들이라고 했죠.

로마에 도착한 헤롯은 로마 원로원 앞에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내세우기 시작합니다. 친 로마 성향이라고 원로원들을 설득합니다. 동시에 자신이 그 지역을 잘 알기 때문에 그곳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다룰 수 있다고 이렇게 주장을 합니다. 이 말 저 말 많이 했지만 결국 헤롯이 원했던 것은 절대적인 권력입니다. 마침내 주전 40년경에 헤롯은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을 받습니다.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로마가 헤롯을 유대인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정예 부대를 주면서 그 지역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헤롯이 유대에서 실권을 장악하까지 3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명목상의 지위를 현실 권력으로 만드는 데 3년이 걸린 겁니다. 마침내 주전 37년, 헤롯은 승리를 거두고 유대인의 왕이 됩니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유대인의 왕으로 불리고 싶어했습니다. 헤롯은 끝까지 왕위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이제 2절에 나오는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이 말, 동방 박사들의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시겠죠? 헤롯이 두려워할 만한 질문 아니겠습니까? 헤롯은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걸고 그 자리를 얻었습니다. 로마까지 가서 원로원 앞에서 온갖 아부와 아첨을 떨면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받아냈습니다.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서 3년 동안이나 싸워서 겨우 얻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지위를 유지하느라 온갖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페르시아, 그러니까 바사에서 온 왕을 세우는 자들, 동방 박사들이 무리를 지어서 성 안으로 들어와서는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이렇게 묻고 다닙니다. 그러니 헤롯은 두려울 수밖에 없죠.

얼마나 충격적인지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1절입니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동방으로부터 왔다 정도가 아닙니다. 온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헤롯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겁니다. “이럴 수가 있나? 왕을 세우는 박사들이 왔다니, 큰일났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와서 유대인의 왕이 나신 곳이 어디냐고 묻고 다니다니, 예상치 못한 일입니다. 놀랍고 충격적인 일입니다.

사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렇게까지 놀랄 일은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을 주의 깊게 살폈다면 때가 가까웠다는 사실을 이미 분명하게 알 수 있었을 겁니다. 역사학자들도 그 당시 분위기가 특별했다고 기록합니다. 매우 흥미롭습니다. 당시에는 장차 오실 한 왕에 대한 이상한 기대감이 퍼져 있었습니다. 동방 박사들도 왕을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왕을 찾아서 예루살렘에 온 것이죠. 말하자면 사방에서 왕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당시의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심지어 로마 역사학자조차도 이 사실을 인정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수에토니우스(Suetonius)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동방 세계에는 오래 전부터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바로 그 시기에 유대에서 나온 자가 세상을 다스리게 될 운명이라는 믿음이었다.” 수에토니우스는 아마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 시대 이후에 이 내용을 기록했을 겁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주후 70년에 이스라엘을 정복했던 인물이죠. 그러니까 수에토니우스는 베스파시아누스 후대의 역사가인데, 과거를 돌아보면서 그 시대에 유대에서 나온 자가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렇게 기록한 겁니다. 다시 말해서 당시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유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유명한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도 같은 내용을 기록합니다. 타키투스(Tacitus)는 역사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이때 동방이 강성해지고, 유대에서 나오는 통치자들이 온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타키투스(Tacitus)의 증언입니다. 또 요세푸스(Josephus)도 <유대 전쟁사>라는 책에서, 당시 유대인들이 자기 민족 가운데서 한 사람이 나와서 온 세상의 통치자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조금 후대를 보면, 수에토니우스(Suetonius)의 기록에 따라 아르메니아 왕 티리다테스(Tiridates)가 지혜자들을 데리고 로마로 가서 황제 네로(Nero)를 방문한 일도 나옵니다. 또 아테네에서는 박사들이 플라톤(Plato)을 기념하며 제사를 드리는 모습도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바로 그 무렵,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는 세상의 구원자로 칭송을 받았습니다. 로마 시인인 버질(Virgil)은 이제 막 황금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로마 황금시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방에서는 지혜자들이 서쪽으로 왔습니다. 이제 곧 세상을 구할 위대한 구원자, 위대한 지도자, 위대한 통치자가 나타날 것이다, 이런 기대감이 세상에 온통 퍼져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때가 찬 거죠. 그리고 동방에서 박사들, 곧 마기(magi)들이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 기록한 이 말씀을 직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이라.” 분명히 때가 찼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때가 찬 것을 느꼈습니다.

이 동방 박사들은 다니엘이 전해준 내용의 정보, 포로기 이후에 자기 땅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들은 여러 가지 지식,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님께서 말씀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기대, 또 성경에 “별”로 나타나는 하늘의 징조를 보고서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사람들은 동방 박사들이 도대체 몇 명이었을까, 이렇게 정말 궁금해 합니다만,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흔히 전해 내려오는 멜키오르(Melchior), 또 발타사르(Balthasar), 가스파르(Caspar), 이 세 사람은 아니라는 겁니다. 인도에서 한 사람, 애굽에서 한 사람, 헬라에서 한 사람이 왔다느니, 또 나중에 도마(Thomas)에게 세례를 받았다느니, 이들의 뼈가 헬레나(Helena)에 의해서 발견이 되어서는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교회에 안치되었다가, 후에 밀라노로 옮져졌는데, 지금도 그곳에 가면 두개골을 볼 수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모두 전설에 불과합니다.

몇 명이 왔는지 모릅니다. 이름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들은 모두 추측일 뿐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올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헬라어로 보면, 여기저기 다니면서 계속해서 묻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astēr)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이 말을 계속 하면서 돌아다닌 겁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어디 계십니까?”

아마도 동방 박사들은 이 질문을 할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에 적잖이 놀랐을 겁니다. “예?” 이렇게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을 테니까 말이죠. 박사들은 분명 이렇게 생각을 했을 겁니다. “이 사람들은 유대인 아닌가? 그렇다면 자기들의 왕이 언제 태어났는지, 어디서 태어났는지 당연히 알고 있어야 되지 않아?”

그런데 저는 이 두 구절을 읽다가 두 가지 질문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해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이겁니다. 그 별의 정체가 무엇일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도대체 그 별이 무엇이었을까? 그래서 제가 지난주와 이번 주에 이렇게 여러 가지 자료를 읽으면서 그 별이 무엇인지를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여러분,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먼저 실제 별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짜 별이라는 겁니다. 또 목성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목성이 ‘행성의 왕’이라고 불리기 때문이죠. 또 어떤 사람들은, 케플러(Kepler)의 이론인데, 물고기자리에서 목성과 토성이 합을 이루었던 현상이다, 이렇게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불규칙하게 나타난 혜성이었다, 이렇게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낮게 떠 있는 유성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인류 마음속에 있는 운명의 별이었다, 이렇게 말하기도 하죠.

정말 터무니없는 이야기입니다. 아주 허황된 주장입니다. 그 별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으세요? 제가 생각하는 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누가복음 2장 9절을 보십시오. 아마 어린 시절부터 아주 궁금해하셨던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복음 2장 9절에 답이 있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아니라 목자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들이 목자들이죠.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남은 자를 보여주는 장면 같기도 합니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목자들이 하늘에서 빛나던 것을 보았습니다. 뭡니까? “주의 영광”입니다. 구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개념을 한번 살펴보면, 하나님의 영광은 빛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계속해서, 반복해서 빛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임재를 비추실 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빛으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낮에 나타날 때에는 빛나는 구름 같았습니다. 밤에 나타날 때에는 불기둥 같았습니다. 성막 위에 내릴 때에도 빛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이렇게 말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바위 틈에 숨기시고 자신의 영광을 빛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 빛이 얼마나 강했는지 모세의 얼굴에까지 남았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백성에게 말할 때 얼굴에서 빛이 났죠.

하나님의 영광은 타오르는 빛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육신의 장막을 잠시 거두시고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을 때 제자들은 무엇을 봤습니까? 예수님의 영광을 봤습니다. 밝게 비추는 찬란한 빛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도 타오르는 빛 가운데 임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하늘의 모든 빛을 끄실 것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별이 떨어질 것입니다. 해와 달, 모든 것이 완전히 어두워질 겁니다. 하늘은 두루마리처럼 말려서 사라져 버리고 말 겁니다. 온 세상이 칠흑같이 어두워질 그때에, 그리스도께서 찬란한 빛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영광의 얼굴 앞에서 숨기 위해 바위와 산을 향해서 자기들 위에 무너져 내리라고 외칠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을 빛으로 설명합니다. 빛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는 즉시 소멸될 것이니까요. 마치 태양을 3미터 앞에서 보는 것 같을 것입니다. 아니죠, 수백만 개의 태양 앞에 서는 것과 같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목자들이 보았던 그 빛이 바로 주의 영광이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영광을 동방 박사들이 본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조금 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구약에서 별을 뜻하는 대표적인 히브리어는 코카브(kokab)입니다. 중요한 단어는 아니지만 히브리어와 연결해 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기본 뜻이 중요합니다. “빛나다, 타오르다”입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코카브(kokab)가 실제 별을 가리킬 때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하늘의 별을 말할 때도 이 코카브가 사용됩니다. 때로는 천사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때로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코카브라는 단어가 언제나 실제 별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강렬하게 빛나는 것, 눈부시게 타오르는 것을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민수기 24장 17절에는 매우 흥미로운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잘 들으십시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리라.” 민수기 24장 17절입니다. 메시아 예언이 분명합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분이 오실 것이다. 빛을 발하는 분이 오실 것이다. 별이 오실 것이다. 그리고 저는 이 예언이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영광, 찬란히 빛나는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믿습니다.

잠시 마태복음 24장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4장입니다. 처음부터 다 보지는 않겠습니다. 30절로 가봅시다. 29절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바로 그 내용입니다. 모든 것이 어두워집니다. 이제 30절입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잘 보십시오. “인자의 징조”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자이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기 직전에, 예수님을 가리키는 표지가 먼저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표지가 왜 필요합니까? 표지는 목적지를 안내하는 역할을 합니다. 길을 가다가 “로스코 대로(Roscoe Boulevard), 1.2킬로미터” 이런 표지판을 여러분이 봤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표지판이 로스코 대로는 아닙니다. 로스코 대로를 가리켜 줄 뿐이죠. 표지입니다. 표지는 무엇인가를 알려주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인자가 오실 때에도 그런 징조가 있습니다.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참 흥미로운 표현입니다. 징조가 하늘에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무엇을 볼 것이라구요?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여기에 바로 인자의 코카브(kokab), 찬란히 빛나는 영광이 나옵니다. 코카브(kokab)라는 히브리어 단어 자체가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뜻은 같습니다. 저는 이 인자의 징조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쉐키나 영광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형언할 수 없는 영화로운 빛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요한계시록 1장 16절은 하나님의 아들이 힘 있게 비치는 해처럼 빛난다고 말합니다.

잘 들으십시오.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는 이 놀라운 타오르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늘에 나타난 예수님의 징조입니다. 예수님은 영이십니다. 영적인 존재이십니다. 동시에 부활 이후의 영화로운 몸을 가진 분이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나타나는 징조가 있습니다. 바로 찬란히 타오르는 영광입니다. 어느 날 변화산에서 예수님은 그 영광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장차 다시 오실 때에도 그 재림의 징조, 그러니까 하늘에 있는 인자의 징조는 하늘을 가득 채우는 찬란한 영광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처음 오셨을 때에도 동일한 징조가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에 있는 인자의 징조입니다. 별 하나가 아닙니다. 천체도 아닙니다. 행성들의 집합도 아닙니다. 어떤 신비주의자의 머릿속에 떠도는 인간 운명의 별도 아닙니다. 인자의 징조는 오직 하나님의 쉐키나 영광이 빛 가운데 드러난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늘에서 타오르는, 눈부시게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한 가지를 더 덧붙이고 싶습니다.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그의 별을 보고.” 잘 보십시오. “그의 별”입니다. 그의 타오르는 빛입니다. 참고로 아스테르(astēr)라는 단어는 여기서는 “별”로 번역되었지만, 하늘의 별만 뜻하지는 않습니다. 빛나는 것들을 가리킬 때도 사용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자신만의 빛, 자신만의 찬란한 광채를 가지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서 “빛남”, “타오름”, “찬란히 드러남” 이런 뜻입니다. 동방에서 예수님의 빛을 본 것입니다. 그의 코카브(kokab), 그의 아스테르(astēr), 그의 타오르는 영광, 그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의 별”이라는 표현 자체가 매우 특별한 별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별이 나타났습니다. 흥미로운 단어입니다.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았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별을 보았답니다. 7절에서 헤롯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여기서 이 ‘나타난’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이노(phainō)’는 “빛을 비추다”, “환히 드러나다” 이런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헤롯이 이렇게 물은 겁니다. “언제 별이 빛나기 시작했느냐?” 흥미롭게도 별에 해당하는 ‘아스테르(astēr)’라는 단어는 번개를 가리킬 때도 사용됩니다. 번개도 아스테르(astēr)라고 합니다. 어떤 때에는 하늘의 별로 번역되고, 어떤 때에는 번개로도 번역됩니다. 또 어떤 때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것으로 번역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분명하게 찬란히 빛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르게 해석할 방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실제로 별이어야 한다고 단정지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특별한 빛이 언제 나타났느냐?”라는 헤롯의 말에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예수님이 오실 때 새로운 빛이 나타났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예수님의 아스테르(astēr), 하늘에 있는 인자의 징조라고 믿습니다. 초림 때에도 빛의 징조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재림 때에도 동일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징조, 예수님의 별입니다. 하늘에 있는 별이나 행성이 아닙니다.

점성술(astrology)이라는 유사 과학으로 주님의 오심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박사들이 보잘것없는 별자리를 들여다보면서 “토성과 행성이 저렇게 움직이니까 이제 그분이 태어나시는구나”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본 것은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하다는 것을 알았고, 구약성경의 말씀과 다니엘이 전해준 내용에 연결을 시킨 겁니다. 천문학, 점성술이 이들에게 방향을 알려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구약의 불기둥 같은 겁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구름기둥과 불기둥 기억하시죠? 또 하나님의 영광이 지성소 위에 머물렀던 것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별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별이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예수님이 계신 집 위에 머물러 섰다고 합니다. 실제 별이었다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이죠. 인자의 징조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묻는 분이 계실 겁니다. “만일 그 별이 그렇게 찬란하고 장엄한 그리스도의 영광이었다면, 왜 페르시아, 그러니까 바사에 있던 박사들만 보고 다른 사람들은 못 봤습니까?”

충분히 가능한 질문입니다. 저도 똑같이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선택적으로 드러내셨을까?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세상 모든 사람의 눈을 멀게 하시고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4장에 아주 좋은 예가 나오죠. 14장 19절입니다.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가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기 직전입니다. 그전까지는 하나님의 사자가 앞에서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홍해 앞에 다다르자 백성의 뒤편으로 갑니다. 밀어 주려고 갔을까요? 아닙니다. 무엇을 하려는지 이제 잘 보십시오.

구름 기둥,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이죠. “...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이제 이스라엘 백성의 뒤에 구름 기둥,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여호와의 사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스라엘은 빛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로의 군대는 무엇을 봤습니까? 어둠입니다. 동일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보여 주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보여 주시고, 알게 하고자 하시는 사람에게만 알게 하십니다. 다르게는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박사들은 어떻게 별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연결했을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너무도 분명하게 드러내셨기 때문에 알았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겠습니다.

여러분, 이제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조금 놀라실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내년에는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 그 어디에도 동방 박사들이 바사에서 베들레헴까지 별을 따라왔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별이 예루살렘으로 인도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움직였다는 말도 없습니다.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어디에서 봤습니까? “동방”입니다. 동방에서 그 별을 봤습니다.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별이 알려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유대인의 메시아가 태어나야 할 곳을 알고 있었습니다. 왕의 도성이 예루살렘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 왕들이 다스리는 곳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별이 길을 안내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동방 박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러셨던 것처럼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을 너무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보여주셨기 때문에,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곧장 말에 올라타서 떠났습니다. 정해진 곳을 향해서 출발했습니다. 마태는 이들이 어떻게 페르시아 말을 준비했는지, 몇 킬로미터를 이동했는지, 어디에서 먹고 쉬었는지, 그런 자잘한 이야기는 기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등장하는 이유도 오직 예수님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세부사항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실 때 얼마나 놀랍게 일하시는지를 생각하면 감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바사에 있는 경건한 이방인 박사들, 왕을 세우는 자들에게 자신의 징조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징조를 알아챘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알았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태가 강조하는 부분이 참 아름답습니다.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왔노니.” 무엇 때문에 왔습니까?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예수님이 경배를 받으실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경배하러 왔습니다. 예수님보다 경배받기에 합당한 분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바로 이겁니다. 손에 쥔 것은 구약 예언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뿐이었습니다. 가진 것은 미신이 뒤섞인 학문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동방 박사들이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징조가 나타났을 때, 부족하고, 오해하고, 아는 것이 많지 않았지만, 오래 기다려 온 왕을 찾기 위해 기쁨으로 길을 떠난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모세오경을 날마다 읽었습니다. 예언서도 날마다 읽었습니다. 그러나 헤롯이라는 악하고 잔인한 사람의 지배 아래에서, 불과 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완전히 무관심했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마태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지속적으로 책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교회의 문을, 복음의 문을, 이방인들에게 열고 계시다는 사실에 대한 마태의 통찰력을 볼 수 있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세상에는 언제나 주님을 사모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구주를 갈망하고, 주님의 발치에 갈 수만 있다면 희미한 징조 하나라도 기꺼이 따라가려는 마음이죠. 그런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전에 비행기를 탔을 때 일어났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그때 저는 꼭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출판사에 넘겨야 할 원고가 있어서 반드시 비행기가 도착하기 전에 끝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거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나님께 이렇게 중얼거렸죠. “주님, 제 옆자리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앉게 해 주세요. 세인트루이스(St. Louis)에서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까지 계속 전도하느라고 시간을 다 보내면 안 됩니다. 오늘은 일을 해야 해요.”

그런데 결국 중간에 비행기가 한 번 멈췄습니다. 잘못된 비행기에 탔든지, 비행기에 문제가 생겼든지 해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습니다. 일정이 꼬여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비행기를 옮겨 탔습니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제 옆에 와서 앉는 겁니다. 저는 계속 일을 하고 있었고, 그 사람은 잠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 사람이 깨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움직이다가 그만 그 사람을 깨우고 말았습니다.

속으로 제가 “아, 큰일났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먼저 저에게 질문을 해왔습니다. “혹시 선생님이십니까? 자료가 많네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뭐 선생님 비슷한 걸 하기는 합니다.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가르치십니까?” “성경을 가르칩니다.” “성경을 가르치신다고요? 아, 정말 잘됐네요.” 하더니 바로 이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혹시 제가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에게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정말입니다. 제가 그 말을 듣고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습니다.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원래는 의심도 하고, 반박도 하고, 또 회의적으로 나와서 적어도 한 한 시간쯤은 변증을 하고 나서야 예수님을 영접하곤 하는데, 그 사람은 곧바로 예수님과 교제하는 방법을 저에게 물어본 겁니다. 결국에는 그랜드 캐니언을 지날 때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침례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그분이 로스앤젤레스로 이사를 와서 어떤 사람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하길래 제가 물어봤죠. 우리 교회의 장로님이셨습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이렇게 마음이 준비된 사람들이 언제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도 그렇게 마음이 준비된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온 것입니다. 두 번째 장면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장면입니다. 첫 번째 장면에서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면, 두 번째 장면에서는 헤롯이 동요합니다. 혼란입니다. 헤롯은 동방 박사들과 정확히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3절입니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동방의 박사들이 와서 왕이 태어난 곳을 묻고 다닌다는 소식을 듣자 헤롯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온 예루살렘이 술렁였습니다.

헤롯은 자신이 화약고 위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헤롯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지배도 싫어했습니다. 독립과 자치를 원했죠. 헤롯은 백성들이 자신을 무너뜨리고 로마의 통치도 뒤집어 엎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만일 바사 세력이 여기에 개입해서 유대인의 왕이라고 불리는 인물을 중심으로 거대한 연합체를 만든다면, 정말 큰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당시 헤롯 군대는 잠시 나라 밖으로 원정을 나가 있었습니다. 동방 제국이 로마에 늘 위협이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언제라도 갈등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위도, 목숨도 위태롭다는 것을 헤롯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헤롯은 이미 적어도 일흔 살은 되었지만, 여전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단 하나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크게 흔들렸습니다. 공포에 빠졌습니다. 속이 뒤집힐 만큼 불안해졌습니다. 이 상황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 ‘소동’보다 더 좋은 단어가 있을까 싶습니다. 비슷한 예가 마태복음 14장 26절에 나옵니다. 똑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바로 이 단어입니다. 정상일 때 나오는 반응이 아닙니다. 아주 극도로 충격을 받았을 때 나오는 단어입니다. 완전히 공황 상태에 빠진 겁니다.

헤롯이 이렇게 소동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적어도 자기 생각에 자신은 유대인의 왕이었습니다. 지금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을 뿐 아니라 모든 힘을 다해서 왕위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의 왕위를 빼앗아 갈 자가 태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온 겁니다. 더구나 왕을 세우는 자들까지 와서 왕으로 삼겠다고 하니,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죠. 얼마나 심각했겠습니까? 그리고 온 성에 “새 왕이 왔다.” “유대인의 새 왕이 왔다.” “유대인의 새 왕이 태어났다.” “들었느냐? 바사 사람들이 이 땅으로 왔다.” “왕을 세우는 자들이 왔다.” “유대인의 새 왕이 왔다.” 이런 소문이 퍼져 나갔을 겁니다.

헤롯은 열심당원들과 과격한 민족주의자들이 봉기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자유를 외치는 폭동이 나라 곳곳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고 여겼을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그래서 급진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헤롯의 썩고 타락한 마음속에서 서서히 음모가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상황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겁니다. 마태의 기록을 보면 예루살렘 사람들은 박사들의 질문에 그다지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떼를 지어 베들레헴으로 달려갔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도시 전체가 크게 동요한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참 믿기 어렵습니다. 충격적입니다. 바사에서 온 저 유명한 왕을 세우는 자들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면, 당연히 민심이 크게 동요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온 도시가 난리가 나야 정상 아닙니까?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아무 일 없는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유가 뭐냐고요? 간단합니다. 성경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겁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또 “그가 세상에 계셨으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엄청난 관심이 생겨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관심도 없었습니다.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우리가 싸워서 이기리라” 이런 저항 운동도 없었습니다. “새 왕을 세우고 헤롯을 끌어내리자” 이런 움직임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헤롯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보다 헤롯에 대한 공포가 더 컸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두려워한 것은 헤롯의 통치입니다. 본문을 한번 보십시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예루살렘이 왜 함께 소동했을까요? 헤롯을 너무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할 이유가 뭐냐고요? 충분합니다. 오랜 세월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사람들은 이 광인의 분노와 복수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정말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저 사람들이 헤롯을 자극하면, 결국 피바다가 될 거야.” 그래서 모두 떨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잠시 헤롯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말로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잔혹한 일들을 저질렀습니다. 먼저 긍정적인 면부터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헤롯은 매우 유능한 사람입니다. 대개 이 정도 위치까지 올라가는 악한 사람들은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기 마련입니다. 젊은 시절에 갈릴리의 총독이었을 때에, 헤롯은 게릴라 부대를 상대로 해서 큰 승리를 거뒀습니다. 당시 갈릴리에는 산악 지대에서 활동하는 반란군들이 늘 있었는데요, 헤롯은 그 작은 무리들을 계속해서 진압해 나갔고, 그 지역에 실제적인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로마를 위해서 세금을 거두는 일에도 매우 열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헤롯을 아주 높이 평가했습니다. 질서를 유지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매우 교묘한 외교가이기도 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헤롯이 전쟁을 치를 때에도 결단력 있는 지도자였다, 이렇게 기록합니다. 패배 직전의 전세를 뒤집어서 승리로 바꾸는 능력도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역사에서 평화를 유지하고 질서를 세우는 데 성공한 유일한 통치자다, 이렇게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어려운 시기에는 백성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세금을 돌려주기도 했습니다. 주전 25년에 큰 기근이 있었는데, 궁전의 금 장식을 녹여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매우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헤롯은 대단한 건축가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에 극장을 세웠습니다. 원형극장도 지었고, 히포드롬(hippodrome)도 세웠습니다. 히포드롬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경마장입니다. 자신을 위한 웅장한 궁전도 지었습니다. 그리고 주전 19년에는 성전 공사를 시작합니다. 바로 유명한 헤롯 성전입니다. 그러나 성전이 완공되기 전에 죽어버렸죠. 그리고 그 성전은 주후 70년, 티투스 베스파시아누스(Titus Vespasianus)가 이끄는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정복했을 때에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헤롯은 타락하고 황폐해진 여러 지역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도 했습니다. 가이사랴라는 도시를 건설했는데, 아주 큰 항구 도시입니다. 장엄합니다. 베이루트, 안디옥, 다메섹, 두로, 시돈, 로도스 이런 도시들도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심지어 아테네의 건축 사업에 기부도 했습니다. 또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마사다(Masada)도 건축했습니다. 복지 정책도 아주 잘 운영했습니다. 사람들이 옷을 구하지 못할 때에는 외국에서 옷을 들여와서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헤롯은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거라면 무엇이든지 할 줄 아는 아주 영리한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헤롯은 잔인했습니다. 마치 악마 같았습니다.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역사가들은 이 점에 모두 동의합니다. 제가 헤롯에 대해서 읽은 모든 글의 첫머리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병적으로 질투심이 강했고, 누구도 믿지 못할 만큼 극도로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모든 사람에게서 위협을 느꼈고, 모든 상황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평생 살인 음모를 꾸미면서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살인을 계획했습니다. 헤롯은 하스모니안 가문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그 가문 전체를 죽이려고 계획을 세웁니다. 하스모니안은 마카비의 후손입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시겠지만, 마카비는 헬라의 지배에 맞서 유대의 자유를 위해 싸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로마가 들어오자 헤롯은 마카비의 친족들이 자기에게 똑같이 저항을 할까봐 두려워했던 겁니다. 그래서 차라리 모두 죽여버려서 아무도 자신을 무너뜨릴 희망조차 갖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겁니다.

헤롯에게 아내가 열 명, 자녀는 열두 명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아내가 ‘마리암네’ 입니다.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역사책을 읽다 보면 이 이름이 나오니까 알아 두시면 좋습니다. 마리암네에게는 아리스토불루스라는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리스토불루스는 헤롯이 통치하던 당시의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헤롯은 아리스토불루스를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죽여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자기 아내의 동생인데 말입니다.

무더운 어느 날 헤롯이 이렇게 말합니다. “여리고에서 잔치를 열자.” 여리고는 팜스프링스(Palm Springs)하고 아주 비슷한 곳입니다. 산 아랫동네에 있는 휴양지입니다. 아름다운 종려나무가 가득하고, 물도 아주 맑고, 햇살도 따뜻합니다. 정말 멋진 곳입니다. 그래서 더운 어느 날 헤롯은 아리스토불루스를 초대해서 여리고 근처 요단 강가에서 수영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젊은이를 물속으로 뛰어들게 만듭니다. 물론 미리 사람들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함께 놀면서 즐기는 척하면서 대기하고 있었던 겁니다. 물속으로 뛰어들어 장난을 치는 척하다가 아리스토불루스를 물 속으로 잡아당겨 죽여버렸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 후에 헤롯은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줍니다. 장례식에 직접 참석했을 뿐만 아니라, 내내 눈물을 흘렸답니다. 또 헤롯은 자기 아내 마리암네도 죽였습니다. 또 장모 알렉산드리아도 처형했습니다. 자기를 계속 괴롭힌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친아들 둘도 마음에 들지 않아 했습니다. 결국 그 두 아들까지 죽여버립니다. 왕좌를 노릴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죠.

죽기 닷새 전에는 셋째 아들까지 처형하라고 명령합니다. 권력에 대한 탐욕, 끝없는 의심, 반드시 복수하고야 마는 이 광적인 집착이 평생 헤롯을 지배했습니다. 헤롯은 잔인했고, 피에 굶주렸고, 늘 불안에 떨었습니다. 폭군이었습니다. 살인자였습니다. 그의 성격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헤롯은 죽음을 앞두고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리고로 내려가 예루살렘의 저명한 시민들을 모두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모두 다 체포해서 거짓 죄목을 꾸며서 감옥에 가두라고 합니다. 유대 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전부 감옥에 가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죽는 순간, 이들을 모두 죽여라.” 그러니까 사람들이 물어보죠. “왜 죽여야 합니까?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헤롯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가 죽어도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죽는 날 이 도시 전체가 울게 만들겠다.”

그러니 동방 박사들이 성 안으로 들어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이렇게 물었을 때에, 성경이 “헤롯 왕이 소동한지라” 이렇게 기록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정말 두려워했습니다. 헤롯은 언제나 권력에 대한 위협을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권력 위협을 느끼고 완전히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참 놀라운 대조를 봅니다. 박사들은 평안했지만 헤롯은 공포에 떨었습니다. 한쪽에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습니다. 헤롯은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가이블라인 박사(Doctor Gaeblein)는 이렇게 말합니다. “위대한 도시 예루살렘에는 장엄한 종교 제도가 있었고, 아직도 건축 중이던 웅장한 헤롯 성전이 있었고, 귀족적인 제사장 계층과 자선 제도도 있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왕을 알지 못했다. 아니, 왕이 오시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스스로 만족하고 있었다. 하늘로부터 오신 주, 곧 왕을 거절하게 될 전체 이야기를 예표하는 것이었다. 여관에만 예수님을 위한 자리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백성 가운데에도 예수님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헤롯 왕은 소동하였고 온 예루살렘이 그와 함께 소동하였다. 헤롯은 자기 것이 아닌 왕좌를 빼앗길까 두려워했고, 예루살렘은 헤롯의 두려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반란과 유혈 사태와 고통을 뜻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가이블라인 박사의 말은 이런 뜻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함께 불안해했던 이유는, 헤롯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두려움은 정당했습니다.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헤롯은 군인들을 보내서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한 명도 남김없이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가운데 혹시 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예루살렘이 소동한 겁니다. 참 놀라운 장면 아닙니까? 이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때 크게 감격합니다. 우리의 기쁨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알고자 하는 갈망에서 나옵니다. 말씀을 깨달을 때에 우리는 벅차오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고백합니다. 이 모든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을 때, 전혀 기쁨이 없습니다. 전혀 즐겁지가 않습니다. 영원한 지옥에 있는 헤롯을 돌아봅니다.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을 봅니다. 그들은 왕이 오셨을 때 왕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왕을 알지 못했습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30년 후에 그 왕께서 그들의 도시에 오셔서 정체를 밝히셨을 때에도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참된 신자는 아닐 겁니다. 또 그 옛날 사람들처럼 지금도 대놓고, 거리낌 없이 주님을 거절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헤롯 같은 사람에게는 기쁨이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헤롯은 어떻게 할 수 있었는가, 잠시 이 땅에서 왕 노릇하는 대신에,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다스릴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끊임없이 스스로 복수하려 애쓰는 대신에 하나님을 신뢰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랬더라면 누군가가 헤롯을 해치려고 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친히 변호해 주시고 갚아주셨을 텐데 말입니다. 평안을 찾아 헤매던 헤롯이 하나님이 평강의 왕이심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우리는 그런 영혼이 지옥에서 어떻게 고통을 받고 있을지 상상할 뿐입니다. 학살이며 살인이며, 얼마나 많은 죄악을 기억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니 거기에는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복잡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깨달아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그 말씀의 실제 의미를 깨달을 때 슬프기도 합니다. 반면에 성경이 “동방 박사”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깊은 친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멀리서 왔지만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남은 자들입니다. 동방 박사들을 허락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온 인류가 결국 두 부류로 나뉜다는 사실을 알게 하옵소서. 거절하는 자들과 믿는 자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영원을 결정하는 갈림길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오늘 밤 믿음 없이 이곳을 떠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하여 주옵소서. 아무도 헤롯과 함께, 무관심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자리에 서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오히려 우리 모두가 열정적이고, 기쁨이 넘치고, 힘 있게 달려가고, 감격 가운데 경배했던 동방 박사들의 편에 서게 하여 주옵소서. 엎드려 경배하게 하옵소서. 세상에 오셔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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