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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요한계시록 1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7절부터 8절입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여러분, 혹시 책 좋아하십니까? 특히 다양한 사건으로 가득한 책을 좋아하신다면 분명히 요한계시록을 좋아하게 될 겁니다. 이 책은 다른 어떤 책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긴장감으로 가득하고, 드라마 같은 장면들로 가득하고, 신비, 열정, 그리고 공포와 두려움이 연속적으로 이어집니다. 재앙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교회가 배교하고, 세계 경제가 무너지고, 세상의 마지막 전쟁이 벌어지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자연 재해와 하나님의 마지막 진노의 심판이 이어집니다. 피가 낭자하고 정치적 갈등이 겹겹이 쌓이고 지옥같이 사악한 통치자가 등장합니다. 결국에는 온 우주가 파괴되고 사람들의 몸과 영혼을 영원한 지옥에 던지는 심판이 선포됩니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은 믿을 수 없을만큼 흥미로운 책이지만, 그러면서도 소망의 책이자, 기쁨의 책이며, 행복한 결말의 책입니다. 모든 내용을 다 보려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겁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여기 7절과 8절에서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한 예고편, 이 책의 핵심을 간략하게 보여줍니다.

요한계시록은 오실 예수님에 관한 책입니다. 재림에 관한 책입니다. 7절에 이 책 전체의 논지이자 주제이며 핵심이 되는 위대한 선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다시 오십니다. 계시록 전체를 요약하는 문장입니다. 한마디로 압축합니다. 요한은 이 사실을 풀어내는 데 21장을 할애하고, 마지막 22장은 영광에 이르기까지의 결론으로 이어갑니다.

7절에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첫번째 예언을 만납니다. 인사말이 끝난 후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예언의 선포입니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라는 선언입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볼지어다…” 무엇을 말입니까? “그가… 오시리라.” 주목해야 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영어성경으로 보면 ‘오시리라’에 해당하는 부분의 시제가 현재형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가 오실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오실 것이다” 또는 “그가 장차 오시리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현재형으로 “그가 오고 계신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오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 여정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 “그가 오고 계신다”는 다니엘 7장 13절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또 다니엘 7장 14절은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요한은 예수님이 오고 계신다는 예언적 계시를 받았습니다. 다니엘 7장 13절의 약속이 다시 선포되는 것입니다.

“오실 이”는 메시아의 호칭이었습니다. “오실 이”는 메시아를 가리키는 특별한 이름입니다. 사실 마태복음을 보면 흥미로운 내용이 나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세례 요한이 옥에 갇혀 있을 때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유대인들은 모두 “오실 이”가 메시아의 칭호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오실 이”이십니다. “오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 ‘에르코마이(erchomai)’는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과 관련하여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아홉 번 사용됩니다. 그 아홉 번 가운데 일곱 번은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를 “오실 이”라고 하신 경우입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바로 오실 이가 오신,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책입니다. 현재 시제로 쓰인 것은 예수님이 이미 오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곧 오실 것이라고 기대하며 살게 만듭니다. 요한이 “볼지어다 그가 오시리라”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늘 간절한 기대 속에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핵심입니다.

재림의 위대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재림이 성경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주제인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제가 조금 도와드리겠습니다. 성경 전체 중에서 약 5분의 1이 예언, 즉 미래에 대한 말씀을 다룹니다. 그중에서도 3분의 1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말씀입니다. 성경 속에 미래에 대한 예언이 660개 정도 있는데, 그중 333개가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라고 계산한 학자도 있습니다. 그중 109개는 예수님의 초림 때 성취되었고, 224개는 재림 때 성취될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이 많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46명 중에서 예수님의 초림을 언급한 선지자는 10명밖에 되지 않지만, 재림을 언급한 선지자는 36명입니다. 구약에서는 1,500개가 넘는 구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언급합니다. 신약에서는 25절마다 한 번꼴로 재림을 언급합니다. 성경이 초림을 한 번 언급할 때마다 재림은 8번 언급됩니다. 속죄가 한 번 언급될 때마다 재림은 두 번 언급됩니다. 예수님 자신도 재림에 대해 21번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재림을 준비하라는 말씀이 50번 이상 나옵니다.

따라서 재림은 성경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제가 이렇게 횟수를 언급하는 이유는 다 외우라는 뜻이 아니라, 성경에 재림에 관한 예언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를 알려드리려는 겁니다.

일리노이 주 에반스턴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주관으로 열린 세계 각국 교회 대표자 회의에서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미국 개신교 목회자들 가운데 오직 10퍼센트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교리가 중요하다고 답했답니다. 나머지 90퍼센트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습답다.

사실 베드로가 이미 이런 불신앙을 예언했습니다.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라고 조롱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롱하는 자들은 항상 재림을 부인하고 싶어합니다. 왜냐하면 재림은 심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할 준비도, 그 심판을 직면할 의지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롱하는 자들이 뭐라고 하든지 성경은 예수님이 반드시 다시 오신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필수적인 이유를 말해줍니다. 재림에 대한 예언이 많다는 것을 넘어서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릴 테니까 잘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님의 재림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님의 재림을 요구합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49장 10절입니다. 메시아의 통치에 관한 최초의 예언입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유다의 허리에서 메시아이신 실로가 나오실 것이고 민족들이 그에게 복종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에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재림 때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시편 2편에서도 하나님은 예수님의 유업으로 이방 나라를 주실 것이고 예수님이 철장으로 다스리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미래에 반드시 일어날 일입니다. 초림 때에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재림 때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전에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초림 때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통치자가 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은 미래에 반드시 이루어질 일입니다.

성경은 스가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감람산이 갈라질 것이며, 모든 민족이 그곳에 모여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오실 때 영광스러운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를 읽어 보십시오.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초림 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재림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민수기 23장은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재림을 보장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말씀 역시 재림을 보장합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떠나가실 때 반드시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이 재림을 보장합니다.

누가복음 19장에서 예수님은 이런 비유를 하셨습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그리고 26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내가 바로 그 왕이다. 내가 떠날 것이다. 내가 다시 올 것이다. 너희가 복음의 특권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점검할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심판하겠다. 믿음으로 반응했다면 나와 함께 영광에 들어가게 하겠다.” 예수님은 떠나셨다가 다시 오실 왕이십니다. 자신의 백성에게 상 주시기 위해, 자신을 거부한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왕이십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때 천사가 왔습니다. 여섯 번이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예수님은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재림을 보장합니다. 하나님은 거짓을 말하지 않으시기에 반드시 오십니다. 진리만을 말씀하시는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기에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셋째로, 성령님의 보증이 재림을 보장합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서 성령님은 “진리의 영”으로 나옵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곧 성령께서 성경 기자들을 움직이셔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고린도전서 1장 4절부터 8절, 빌립보서 3장 20절부터 21절, 골로새서 3장 4절, 야고보서 5장 8절, 베드로전서 1장 13절, 요한일서 3장 2절부터 3절 등에서 읽는 재림에 관한 말씀은 성령님께서 저자들을 감동시키셔서 기록하신 증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재림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친히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님도 예수님의 재림을 약속하셨습니다. 삼위 하나님의 약속, 삼위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걸려 있기 때문에 반드시 오십니다.

넷째로, 예수님이 반드시 다시 오셔야 하는 이유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예수님의 재림을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5장에서 잠깐이지만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들의 회심에 대해 보고하고 있을 때, 야고보가 일어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14절부터입니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가지고 계셨는데 바로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백성을 모으시는 것이었습니다.

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구약의 아모스와 예레미야를 인용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무슨 뜻인지 설명하겠습니다. 베드로가 방금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구원하신 일을 보고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도 분명히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나라 가운데서 한 백성을 불러내고 계신다고, 하나님이 모든 나라 가운데서 한 백성을 자기에게로 불러내고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11절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이것이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 가운데서 한 백성을 부르신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친형제였던 야고보가 아모스 9장 11절부터 12절에서 예언된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한 겁니다.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다윗의 장막, 다시 말해 다윗의 나라, 다윗의 집, 왕가가 다시 세워지고 회복될 것입니다. 나라입니다. 그러나 나라가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불러내시는 백성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교회를 먼저 부르시고, 그 다음에 나라가 세워집니다. 16절은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지자가 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요점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불러내십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이 돌아오셔서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모든 민족이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에 있게 될 겁니다. 다시 14절 말씀으로 돌아옵니다. 핵심 구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십니다. 16절은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라고 합니다. 따라서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교회를 불러낸 후에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바울에 따르면 교회는 남편을 기다리는 순결한 처녀와 같습니다. 에베소서 5장 25절부터 27절에 나오죠. 데살로니가전서에서도 교회가 휴거를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제로 합니다.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상 여기서 모두 다룰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열방을 향한 계획 역시 예수님의 재림을 보장합니다. 왜냐하면 시편 2편에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이 돌아오셔서 이방 나라들을 다스리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예언입니다. 요엘 3장 2절입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심문하리니”라고 합니다. 미래에 일어날 사건입니다.

9절로 내려가면 하나님께서 전쟁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아마겟돈 전쟁을 말하는 겁니다.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라는 표현입니다. 장차 때가 올 것이고, 장차 전쟁이 있을 것이고, 장차 심판이 있을 것이고, 그 전쟁과 그 심판의 때에 메시아께서 오셔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요엘 3장 12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거기 앉아서 사방의 모든 나라를 심판하리라.” 메시아의 사명입니다. 따라서 열방의 장차 올 심판, 여호사밧 골짜기, 판결의 골짜기, 민족들의 심판은 예수님의 재림을 보장합니다.

여섯번째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예수님의 재림을 보장합니다. 구약을 읽어보면 제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반복해서 나오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한 나라를 약속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메시아가 오셔서 그 나라를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메시아가 오셨지만 이스라엘은 나라를 받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사야 59장 2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와서 너희를 영원히 구원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아직 이스라엘에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메시아가 아직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죽이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재림 때에는 믿게 될 겁니다. 예레미야 23장 5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이 일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메시아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평화와 안전, 번영이 있는 나라를 주실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보장하십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열방을 위해, 이스라엘을 위해, 교회를 위해 세우신 계획은 모두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제로 합니다. 예수님은 열방을 심판하시기 위해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교회를 불러 모으시기 위해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주시기 위해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리고 세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당하신 수치가 예수님의 재림을 보장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등을 돌렸습니다.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상태로 이야기가 끝나면 안됩니다.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이고, 다시 오실 때에는 영광 중에 오셔서 모든 이가 경배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을 보면 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끔찍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대제사장과 대화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26장 63절입니다.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대제사장은 이것을 신성 모독으로 여겨서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아직 나의 마지막 모습은 보지 못했다. 나는 수치로 이 이야기를 끝내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권능 가운데 있는 나를 볼 것이고, 영광 가운데 있는 나를 볼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은 아직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아니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은,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피 흘리며 죽어가는 십자가에 달린 죄수의 모습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피와 침과 파리로 얼룩진 살갗, 유대의 하늘 아래서 벌거벗은 채 매달린 그 모습, 그것이 결코 마지막 모습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최종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여덟번째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셔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사탄의 높아진 지위 때문입니다. 사탄은 지금 잠시 동안 높은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성경은 세 번이나 사탄을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이 세상의 신”이라고 불렀습니다. 요한은 “온 세상이 그의 권세 아래 있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사탄을 “죽음의 권세를 잡은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은 예수님이 오신 이유가 마귀를 멸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멸하러 오셨습니다. 로마서 16장 20절은 이렇게 약속합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셔서 이 세상의 보좌를 찬탈한 그 거짓 지배자를 끌어내리고 폐위시키셔야 합니다.

마지막 아홉번째 이유는 성도들의 소망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소망이 예수님의 재림을 보장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약속이 재림을 보장하고, 하나님의 계획이 보장하고, 그리스도의 수치가 보장하고, 사탄의 거짓된 높아짐이 보장하고, 우리의 소망이 보장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에서만 소망을 가진다면,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천국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디도서 2장 11절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8절은 우리가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한다”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 것은 기독교 복음과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걸려 있고, 교회와 이스라엘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의 완성이 걸려 있으며, 사탄이 축출되어야 하고, 성도들의 소망과 기대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우리가 살펴본 아홉 가지 모든 이유들이 모두 나와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것은 7절의 첫 선언, “볼지어다 그가… 오시리라”라는 말씀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재림을 보장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고 계십니다.

이제 요한이 미리 보여주는 장면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아주 간결하고 직접적인 몇 가지 내용을 다루겠습니다. 먼저 요한은 영광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첫번째 요점입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모두 서론이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집중해서 들어야 할 요점은 바로 이겁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모든 것이 재림을 보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죠. 첫번째는 재림의 영광입니다. 그 영광은 “구름을 타고”라는 말로 표현되었습니다.

성경을 연구해 보면 구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바로 구름입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를 받았습니다. 또 출애굽기 40장을 보면 성막이 세워졌을 때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습니다. 열왕기상 8장 10절에서도 성전이 완성되었을 때 여호와의 영광의 구름이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또 다니엘 7장 13절에는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변형되셨을 때에, 마태복음 17장 5절을 보면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9절에서는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구름이 예수님을 가려 제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때에도 마태복음 24장 30절에 말씀하신 대로 구름을 타고 오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는 다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을 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단순히 하늘에서 오신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구름이 있는 하늘에서 오신다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름은 단순한 자연의 구름이 아니라 영광의 구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광의 구름입니다.

구약으로 돌아가서 창세기부터 보면 쉐키나(shekinah)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빛입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광채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람의 눈에 보이는 빛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또한 들을 수 있는 빛이기도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동산에서 하나님이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에너지로 가득한 빛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지 육체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십니다. 에너지로 충만한 찬란한 빛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너무나 강렬하고 너무 눈부셔서 하나님을 보고 살아남을 자가 없었습니다. 출애굽기 33장에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직 일부만 볼 수 있었고 반드시 가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미래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는 그 영광을 가리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먼저 하실 일은 우주의 모든 빛을 끄시는 것입니다. 해가 꺼지고, 달이 꺼지고, 별들이 꺼지고, 온 우주가 완전히 어둠으로 뒤덮입니다. 요한계시록에 그 장면이 나옵니다. 그 완전한 어둠 속에서 하늘로부터 영광이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찬란한 영광이 태양 수백만 개보다도 더 밝게 빛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구름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찬란한 광휘입니다. 히브리서 1장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수만 곱하기 수만, 천천 곱하기 천천, 즉 수를 셀 수 없는 수많은 거룩한 천사들이 불타는 듯한 영광 가운데 함께합니다. 여기에 더해 구약과 신약의 모든 성도들이 흰옷을 입고 빛나는 말을 타고 함께 나타납니다.

여기서 ‘흰’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류콘(leukon)’인데, 단순히 ‘희다’라는 흰색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눈부시게 빛나는’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두컴컴한 하늘에서 설명할 수 없는 빛이 쏟아져 나오는 장엄한 광경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전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영광의 구름을 말합니다. 앞으로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두번째로 요한이 소개하는 것은 재림의 범위입니다. 7절은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라고 합니다. 각 사람의 눈입니다. 온 인류,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재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재림 때에는 오해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는 그 영광이 가려져 있었습니다. 사람의 육신 속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단 한 번, 변화산에서 예수님은 그 가리개를 젖히셨고 제자들만이 그 눈부신 영광을 보았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었는데도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그것은 단지 영광의 한 조각이었을 뿐이고, 여전히 육신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온 세상의 눈이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 요한은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눕니다.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이 두 부류입니다. “그를 찌른 자들”은 누구입니까? 로마 군인들은 아닙니다. 오래 전에 죽었기 때문에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말하는 걸까요?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7절입니다. 군인이 와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34절을 보면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라고 했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죽으셨기 때문에 다리를 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36절입니다.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이어서 3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무슨 뜻일까요?

요한은 스가랴의 예언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스가랴가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라고 했습니다. 그를 바라본 이 무리가 누구입니까? 스가랴는 유대인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이라고 했습니다. 스가랴는 심판의 그 날이 오면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유대인을 가리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누가 예수님을 찔렀습니까? 로마인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십시오. 사도행전 2장 2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 짓입니다. 로마인의 손을 빌렸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이 한 짓입니다.

또 사도행전 3장 14절도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유대인들을 향해 말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렇습니다. 유대인입니다.

그렇다면 요한이 7절에서 한 말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을 찌른 유대인들이 그분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볼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알게 되는 것은, 그때에 이미 구원받은 유대인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열두 지파 가운데 각각 만 이천 명, 모두 십사만 사천 명이 구원을 받아서 온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그리고 환난 후반부,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에 구원받는 유대인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바라볼 그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구원받은 상태일 겁니다. 그러나 또 다른 유대인들은 하늘로부터 임하시는 예수님을 처음 볼 때까지는 구원받지 못한 상태일 겁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순간과 최종 심판 사이에는 일정한 기간이 있습니다. 이것이 며칠인지, 또 몇 시간인지는 알 수 없지만,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저는 바로 그 순간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구원받는 순간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때 살아 있는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스가랴 12장으로 돌아가서 이 놀라운 진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스가랴 12장 10절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구원하시겠다고 합니다.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들이 메시아를 바라볼 겁니다. 애통하며 울게 될 겁니다. 왜 울겠습니까? 자신들이 메시아에게 한 일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날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구원하시고, 유대인들을 구원하시고, 은혜와 간구의 영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여기서 “간구”란 회개의 영을 의미하는데, 그 영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용서를 구하게 됩니다. 간절히 용서를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위해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찌른 이가 하늘로부터 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독자를 잃었을 때처럼, 장자를 잃었을 때처럼 깊은 슬픔으로 애통할 것입니다.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눈물울 흘릴 것이고, 회개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그 날에,” 11절입니다.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끔찍한 애통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경건한 왕 요시야가 바로 느고에게 죽임을 당했을 때에 므깃도 골짜기에서 애통했던 것처럼, 역대하 35장에 기록되어 있죠, 끔찍한 애통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12절입니다.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이스라엘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영광의 광채 가운데 오십니다. 온 세상이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보게 될 것입니다. 그중 일부는 이미 구원받았지만, 아직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바로 그 순간 회개와 간구의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13장 1절은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무슨 일을 하시는 겁니까?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씻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하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진리입니까. 구원입니다.

그 날에, 단 하루만에 이루어질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그날이 바로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입니다. 스가랴 3장 9절에서 이미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애통한다는 것은 가슴을 치며 슬퍼하는 것, 통곡하고 울부짖는 것입니다. 회개의 애통입니다. 마음에 꼭 새겨 두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빛나는 영광 가운데 오실 때, 유대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이사야 25장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미 구원받은 14만 4천 명이 세상에 복음을 전했을 것인데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들은 유대인들이 영광 가운데 오시는 그리스도를 보며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은혜로 간구하는 영을 부어주셔서 용서를 구하게 만드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죄를 씻어 주시는 정결의 샘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그때 바울이 말한 로마서 11장의 말씀이 성취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어떻게 됩니까? “구원을 받으리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보고 회개하며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볼 또 다른 무리가 있습니다.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누구입니까? 마태복음 24장 30절이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땅의 모든 족속이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볼 때, 그들도 애통할 것입니다. 하지만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들의 통곡은 회개의 애통이 아닙니다.

이들은 이방인들입니다. 세상의 나머지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애곡”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흥미롭습니다. 헬라어로 ‘콥토(kopto)’인데, 문자적으로는 “자르다” 이런 뜻입니다. 왜 “자르다”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요? 동양의 관습에서 나온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깊은 절망 가운데 있을 때에 이상하게도 자기 몸을 베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지금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절망 가운데 자기 몸을 칼로 그어버렸다는 이야기를 저에게 털어놓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열왕기상 18장 28절을 보면, 바알의 선지자들이 광란에 빠져서 바알이 자기들의 기도를 듣지 않는다는 사실에 공포에 사로잡혀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절망에 빠지자 자기 몸을 그었습니다. 동양 사람들에게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몸을 베는 행위가 애통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스가랴서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회개하며 애통할 것입니다. 세상도 애통할 것이지만, 세상의 애통은 회개의 애통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9장 21절입니다.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이들의 애통은 회개의 애통이 아닙니다. 사실 이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저주하고 모독할 뿐 전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에 모든 사람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통곡하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회개하며 애통하고 통곡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이방인들은 심판과 두려움에 애통하며 통곡할 것입니다.

세번째 요점은 재림에 대한 반응입니다. 구름 속에서 영광이 드러날 것인데, 그 영광을 모든 사람이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반응으로 이어집니다. 저는 이 부분이 참 좋습니다. “그러하리라 아멘.” 말하자면 영적 하이파이브 같은 겁니다. 요한이 “예, 그렇습니다. 행하소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것이 반응입니다. 요한은 여기서 단어 두 개를 사용합니다. 하나는 헬라어이고 하나는 히브리어입니다. ‘나이(nai)’는 헬라어로 “예” 이런 뜻입니다. ‘아멘(amen)’은 히브리어로 “예” 이런 뜻입니다. 두 가지 언어를 함께 사용해서 확언을 한 것입니다. 요한은 22장 20절에서도 똑같은 고백을 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예 주님, 그렇게 행하십시오. 요한은 감격에 차 있습니다. 이것이 요한의 반응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반응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말 놀라운 결론입니다. 여러분이 꼭 붙잡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요약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마지막 특징은 바로 그 확실성입니다. 확실성입니다. 8절에 나옵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제가 주석서를 몇 권, 아니 사실 이번주에 이 부분에 대한 주석을 한 스무 권 정도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해석이 있었습니다. “왜 이 구절이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7절과 어떤 연결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뜬금없이 여기에 들어간 것 같고, 문맥상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는 처음 읽었을 때 바로 알았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습니까? 혹시라도 이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이 사건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인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확증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확실성 위에 찍힌 하나님의 서명입니다. 절대적으로 장엄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세 가지 속성을 강조하시면서 이 예언 위에 자신의 서명을 하신 것입니다. 매우 익숙한 하나님의 속성 세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전지하심(omniscience)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알파와 오메가가 무엇입니까?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 아닙니까? 무슨 의미입니까? 들어보십시오. 알파벳은 모든 지식을 저장하고 전달할 수 있는 놀라운 도구입니다. 영어 알파벳에는 몇 글자가 있습니까? 26개죠. 그 26개 글자로 단어를 몇 개까지 만들 수 있습니까? 무한히 만들 수 있습니다. 알파벳은 참으로 놀라운 발명품입니다. 그 26개 글자를 무한한 조합으로 배열하여 모든 지식을 담아내고 전달할 수 있습니다. 알파벳의 체계를 벗어나 조합된 문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이 알파벳은 모든 지식을 담는 그릇입니다.

왜 하나님이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나는 전지한 최고의 주권자다”라는 뜻입니다. “나는 히브리어로 하면 알렙과 타우이고, 헬라어로 하면 알파와 오메가이고, 영어로 하면 A와 Z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온다고 하지만 모르는 것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 자신도 알지 못하는 어떤 변수가 생겨서 그 일을 방해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보아라, 나는 A와 Z다.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다. 내 지식 밖에는 어떤 정보도, 어떤 진리도, 어떤 이해도, 어떤 지혜도 없다. 내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할 때,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뜻밖의 상황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다. 나는 모든 것을 안다. 모든 지식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계획을 망칠 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재림을 방해할 수 있는 미지의 요소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두번째로 강조하시는 속성은 하나님의 편재성(omnipresence)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놀라운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거기에 있었고, 지금 여기에 있고, 앞으로 저기에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순히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의미를 열어 두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한 현존을 확증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에나 계십니다. 항상 계셨고, 항상 계실 것이고, 지금도 계십니다. 하나님의 임재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묶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우리가 아는 건 우리가 가본 곳에 대해서뿐입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있다면, 그곳에 우리가 모르는 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언제나 어디에나 항상 존재한다. 그러므로 내가 없는 곳은 없다. 내가 오기 전이라는 순간은 결코 없다. 내가 떠난 후라는 시간도 결코 없다. 왜냐하면 내가 결코 부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가 오고 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확정된 사건이다. 모든 일, 모든 문제, 모든 사람, 모든 사건, 모든 장소, 그리고 모든 현실과 영원이 다 내 앞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세번째 속성은 전능하심(omnipotence)입니다. 8절 끝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좋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일 수도 있다.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아실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하나님보다 더 강력한 누군가가 있어서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상기시켜 주겠다. 나는 판토크라토르(pantokrator), 곧 모든 능력을 가진 자이다.” 모든 지식을 가지고 계시고 어디에나 계신다고 해도, 능력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정보가 많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면밀하게 관찰을 하더라도 통제할 힘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요한계시록에 아홉 번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자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지식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절대적이고 주권적으로, 완전하게 다스리십니다. 따라서 요한이 “예수님이 오고 계신다”라고 기록한 대로 예수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하나님이 보증하십니다. 예수님은 영광의 구름 가운데 오실 것이고 온 세상이 보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애통하며 구원받을 것이고, 이방인들은 애통하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반응은 이래야 합니다. “아멘, 아멘, 그러하리라 아멘.”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내 말을 믿으라,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7절 말씀이 참된 이유는 8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속성으로 재림을 보증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을 떠나 이 땅에 오셔서 낮아지셨습니다. 다시 오실 때는 영광 가운데 오실 것입니다. 처음에는 죽임을 당하시려고 하늘을 떠나셨습니다. 다시 오실 때는 심판하시려고 오실 것입니다. 처음에는 섬기시려고 하늘을 떠나셨습니다. 다시 오실 때는 섬김을 받으실 것입니다. 처음에는 은혜를 베푸시려고 하늘을 떠나셨습니다. 다시 오실 때는 공의를 요구하실 것입니다. 처음에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려고 하늘을 떠나셨습니다. 다시 오실 때는 찾아서 멸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이 계속해서 묻습니다. 여러분은 준비되어 있습니까? 예수님이 다시 오십니다.

존 필립스(John Phillips)는 이렇게 썼습니다. “영국 역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사자왕 리처드 1세의 정복과 십자군 원정에 대한 것이다. 리처드가 살라딘과 싸우러 멀리 떠나 있는 동안 나라는 어려움에 빠졌다. 간사하고 무능한 동생 존이 왕위를 빼앗아 나라를 잘못 다스렸다. 영국 백성들은 고통 속에 왕의 귀환을 사모하며 하루속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리처드가 돌아왔다. 영국에 상륙하자마자 곧장 왕좌를 향해 행진했다. 영광스러운 귀환을 둘러싼 수많은 전설이 생겨났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로빈 후드 이야기이다. 존의 성들은 볼링핀처럼 무너졌다. 위대한 리처드는 왕좌를 되찾았다. 감히 그의 길을 막을 자가 없었다. 백성들은 기쁨에 찬 함성을 질렀다. 종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사자가 돌아왔다. 사람들이 외쳤다. ‘왕이여, 만세!’”

“언젠가 리처드보다 훨씬 위대한 왕이 영국보다 훨씬 큰 나라를 차지하실 것이다. 그분이 없는 동안 땅을 유린한 자들, 그분의 소유를 빼앗아 간 자들, 세상을 잘못 관리한 자들은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주권 앞에 무릎 꿇은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짧지만 가슴 벅찬 장면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도 요한처럼 고백합니다. “그러하리라 아멘.” 또 주님께 간구합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 복종함으로 준비되게 하옵소서.

이제 머리를 숙이고 잠시 묵상하시는 동안,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직 알지 못하는 분이 계시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재림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가올 대량 학살 속에서 여러분이 살아남으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게 될 겁니다. 우리가 살아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는 예수님을 보는 무리에 포함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설령 살아서 그 장면을 보게 되더라도, 여러분이 회개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 대다수는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예수 그리스도께 구원을 구하고,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며, 주님과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지금, 바로 이때, 오늘 저녁에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람들의 마음에 말씀해 주옵소서.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그 날, 그리스도의 심판의 재림에 앞서 일어날 그 모든 비극적인 사건들에 준비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하옵소서. 많은 영혼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주님의 영광을 위해 구원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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