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되면 저는 언제나 기쁩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주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미국에서는 참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기념은 하는, 그런 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조지 워싱턴의 생일, 에이브러햄 링컨의 생일은 한 날에 함께 기념합니다. 마틴 루터 킹에게는 자기 이름을 딴 날이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이 세 사람의 탄생을 기념한다고 해서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이 소송을 제기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만큼은 그 어떤 공공장소에서도 기념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찬양할 수도 없고, 예수님이 유일한 주님이심을 선포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소송을 하겠다고 위협을 가하거나 제지합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것은 싫어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적어도 장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습니다. 돈을 벌고 싶기 때문이죠.
정부도 막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고팔고 여행할 때 발생하는 세금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즐거움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쏙 뺀 채로 파티만 할 수 있다면 모두가 만족할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예수님의 탄생은 아주 유용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만 빼버릴 수 있다면 실용적 가치가 엄청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예수님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의도는 선하지만 환상에 빠진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만들어 낸 허상쯤으로, 혹은 고대의 한 인물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실제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꾸며진 존재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크리스마스의 원래 모습을 밝히 드러냄으로써 바로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조지 워싱턴이나 에이브러햄 링컨, 마틴 루터 킹보다 덜 중요한 분입니까? 예수님에 대해 그렇게까지 떠들 필요는 없지 않냐고요? 예수님의 삶, 성품, 예수님이 하신 말씀,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그렇게까지 분명하게 말할 필요는 없지 않냐고요? 예수님이 뒤로 밀려나야 할 분입니까? 파티는 그대로 남겨 두고 파티의 주인공은 치워버려야 하는 겁니까? 예수님이 하찮은 분입니까?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예수님을 찬양하려는 사람들은 입을 다물어야 하느냐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골로새서 1장을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신 아기의 실체를 보여 주는 위대한 말씀입니다. 15절부터 제가 읽겠습니다. 성경이 예수님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잘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15절부터 19절까지 나오는 모든 진술은 예수 그리스도께만 해당되는 그런 선언입니다. 이 말씀은 오직 예수님께만 해당됩니다.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내용을 정리하는 한 문장이 18절 마지막에 나옵니다.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도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도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보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 위에 계신 분도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만물보다 먼저 계시며 만물을 붙들고 계신 분도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몸된 교회의 머리이시며 시작이시며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도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아버지의 기쁨을 따라 모든 충만이 그 안에 거하는 분도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이 모든 선언은 단 하나의 사실을 말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독보적인 분이시다. 그 누구도 예수님과 같을 수 없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 위에 계십니다. 무한히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조금 전에 누가복음에서 읽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낮아진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마구간에 있는 여물통이죠. 그 작은 몸을 감싸고 있던 포대기는 하나님이 인간으로 태어나셨다는 실체를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그렇게 보이게 만들려고 했지만, 그 본질은 낮아지심입니다. 종의 모습입니다. 철저한 자기 비움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마구간의 구유에 누인 예수님의 모습으로, 예수님의 낮아지심만 강조한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그 실체를 가려버리려는 사람들은 결국 한 가지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작고 초라해 보이는 사건이 어떻게 온 세상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사건이 될 수 있을까? 예수님이 그렇게 독보적인 분이 아니시라면, 도대체 어떻게 인류의 역사가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나뉘게 되었을까?
제가 보기에는, 예수님에 대해 끊임없이 반발하고 그 탄생을 하찮게 여기려는 모든 시도는 마치 셰익스피어(Shakespeare) 작품 속 인물의 입을 빌린 표현에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너무 과하게 부인하고 있는 것 아닌가.” 결국 마음속에 숨겨진 악한 동기를 드러내는 고백 같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분명합니다. 천사가 말한 것처럼,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그 이름은 임마누엘, 그러니까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탄생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더럽혀진 이 세상에 들어오셨지만, 죄에 물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죄책을 짊어지셨습니다.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셨습니다. 우리의 고통을 대신 지셨습니다. 우리의 허물 때문에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우리의 죄악 때문에 짓눌리셨습니다. 우리의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기 위해, 우리를 위한 처소를 예비하시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영원히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아기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하늘의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유일하신 분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분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겁니다.
요한계시록 5장에서 사도 요한은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환상 가운데 하늘의 보좌 앞,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이끌려 들어가죠. 그리고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의 손에는 두루마리가 들려 있습니다. 온 우주에 대한 소유권 증서와도 같은 것이죠. 지금 이 세상은 찬탈자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요, 영혼을 멸망시키는 사탄이 이 세상의 신으로서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5장의 장면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계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누가 이 세상과 우주를 다시 되찾을 수 있느냐?” 요한이 보니, 하늘과 땅 어디에도 그 자격을 가진 자가 없습니다.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뛰어난 지성을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위대한 학자도 없습니다. 강력한 군사 지도자도 없습니다. 왕도, 통치자도, 황제도 없습니다. 종교 지도자도 없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울기 시작합니다. 아무도 이 찬탈자에게서 우주를 되찾을 권세도 능력도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한 분이 앞으로 나오십니다. 어린 양이면서 동시에 사자이신 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그 어린 양이 나와서 아버지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십니다.
온 우주 가운데 오직 예수님만이 합당하십니다. 온 우주 가운데 오직 예수님만이 그 권세와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과 견줄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해야 한다면, 그 중심에는 반드시 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제외시킨다면, 가장 심각한 모독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보려면 우리가 읽은 본문으로 돌아가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사실 제가 이 본문하고 히브리서 1장 1절부터 3절 사이에서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말씀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두 본문이 서로 매우 잘 연결되기 때문이죠.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받아 붓질을 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그리고 그 한 획 한 획이 예수님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주고, 창조된 우주와의 관계를 보여주고,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관계를 보여주고, 교회와의 관계를 보여주고, 그리고 모든 계시와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자,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겠습니다. 15절입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입니다. 이 내용을 이해하려면 배경을 조금 알아야 합니다. 길게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당시에 아주 흔했던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그렇듯이 그때도 거짓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진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거짓을 퍼뜨리는 그런 사람들이죠. 그 가운데 한 부류는 자신들이 더 수준 높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깊고 우월한 지식을 가졌다고 여겼습니다. 당시의 영적 지식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기독교를 평범하고 낮은 수준의 종교로 여겼습니다. 자신들이 훨씬 더 높은 차원에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던 거죠.
스스로를 영적으로 택함받은 사람들, 신학적으로 뛰어난 사람들, 지적으로 우월한 사람들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더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서 성경을 왜곡했습니다. 이 내용을 이해하려면 배경을 조금 아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들은 악한 존재가 세상을 만들었다고 믿었습니다. 악한 존재가 우주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 존재가 만든 모든 것이 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물질이 악하다, 이렇게 보았습니다. 모든 물질,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것, 육체적인 것은 전부 다 악하다고 여겼습니다. 반대로 영은 선하다고 보았습니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것은 모두 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선과 악이 섞이는 일이기 때문이죠. 선하신 하나님은 결코 그런 일을 하실 수 없답니다. 더 나아가서는 선하신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으셨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창조했습니까? 그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으로부터 어떤 존재들을 계속 흘러나오게 하셨는데, 일종의 모조품 같은 존재들, 그러니까 천사같은 존재들을 끝없이 만들어 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주 멀리 계시면서 그런 존재들을 유출하셨는데, 그 존재들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다가 어느 순간 선을 지나서 악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그 악한 존재가 물질을 만들었답니다.
아주 어리석고 악한 어떤 하위 신이 물질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 완전히 선했던 영적인 세계가 망가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를 그 하위 신이 만들어 놓은 물질 세계의 문제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다, 이렇게 봅니다. 이런 관점으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육체를 입으신 분일 수가 없습니다. 참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결코 육체를 취하실 수 없다고 보는데 육체를 가진 존재는 모두 악하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예수님을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여러 존재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 역시 육체를 취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선한 존재는 결코 악과 연합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결론은 이겁니다. 하나님은 창조주가 아니고, 예수님도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은 사람이 되지 않으셨고, 예수님도 결코 사람의 몸을 입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바울은 바로 이런 주장을 배경으로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만들어 낸 터무니없는 체계를 버려라. 그리고 분명히 알아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그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그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예수님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이것이 진리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볼 때,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그대로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1장 3절도 같은 사실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며, 그 본체의 형상이시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대로 드러난 분이십니다. 빛처럼 세상에 비추인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질을 그대로 나타내시는 분이시다. 단지 빛을 비추는 정도가 아니라, 그 본질과 실체 자체이신 분이다.
여기 이 ‘형상’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도장이나 인장을 찍을 때 사용하는 틀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그대로 드러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정확하게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록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어떤 영광입니까? 하나님께만 속한 그 동일한 속성으로 충만한 영광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비워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그대로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드러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본질과 실체 그 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분이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더 나아가 예수님은 하나님을 단순히 비추는 정도가 아닙니다. 골로새서 2장 9절입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장 19절입니다.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도 바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완전히 드러내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을 완전히 나타내시는 계시이십니다. 바울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삶을 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제가 생각하는 기준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다면, 반드시 죄가 없어야 할 겁니다. 예수님처럼 말이죠. 예수님은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셨습니다. 그 모든 소란스러운 재판 과정에서 예수님을 심문했던 빌라도조차 이런 결론에 이르죠.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로마 백부장의 결론도 동일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도 그랬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을 정죄할 수 없었죠. 안나스, 가야바, 헤롯, 다시 빌라도에게 넘겨진 모든 재판 과정에서, 그 누구도 예수님의 죄를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야 한다면 죄가 없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역사의 기록과 사도들의 증언, 그리고 진리는 분명히 말합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다면, 가장 깊고 위대한 말씀을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이 “이 사람처럼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마다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면, 다른 사람들의 삶과 인격에 깊은 영향을 미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에게 미친 영향은 그 어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을 한번 보십시오. 본래는 어수룩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신학의 기본적인 내용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명의 능력이 제자들을 변화시켰고, 결국 세상을 뒤흔드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예수님은 사람들을 변화시키십니다.
이것이 영향력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면, 바로 이런 영향력이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다면 기적을 행하셔야 하겠죠.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반복해서, 또 공개적으로,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놀랍도록 풍성하게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다면 미래를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자신에 관한 일들을 미리 말씀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일들을 말씀하시고, 미래에 일어날 일들, 세상의 마지막까지도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셔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사랑과 친절과 긍휼과 은혜를 봅니니다. 그 어떤 인간도 경험할 수 없는, 완전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세상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수준의 덕과 공의와 지혜를 보았습니다. 어떤 각도로 보아도,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신다면 그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완전한 현현이시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리스도의 탄생을 하찮게 여기는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계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심각한 모독입니다. 또 15절은 예수님을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시간적인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창조 세계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존재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담이 먼저 창조되었고, 하와가 아담에게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수많은 사람이 태어났죠. 그러므로 이 표현은 예수님이 가장 먼저 태어난 분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 예수님이 프로토토코스(prōtotokos), 가장 높은 지위를 갖고 계시다, 그런 뜻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처음 난 자’, 그러니까 장자는 상속자를 말합니다.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이어받을 권리를 가진 사람이죠. 특권, 영광, 존귀를 가진 사람입니다. 야곱은 장자는 아니었지만 ‘프로토토코스’, 그러니까 상속자였습니다.
시편 89편 27절을 보면 이 표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 여기서 장자라는 말은 왕 중의 왕, 가장 높은 분, 이런 뜻입니다. 히브리서 1장도 같은 내용입니다. 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3절 마지막에서는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신 것이죠. 바울이 말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완전한 현현이시며,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도 상속자이시고, 가장 높은 분이시고, 모든 것 위에 계신 분이십니다. 바울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완전히 드러내는 분이시다, 존재하는 모든 것 위에 계신 최고의 분이시다’라고 선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주장을 실제로 하셨는지 혼란스러워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전혀 혼란스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돌로 치려고 했죠. 요한복음 10장 33절입니다.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도마가 손을 내밀어서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을 때, 정확하게 본 겁니다. 이제 16절과 17절에서 두 번째 관계가 나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세상, 그러니까 창조와의 관계입니다. 16절입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절입니다.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라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붙드시는 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모든 것이 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보다 먼저 계시고, 모든 것이 예수님 안에서 유지됩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히브리서 1장 2절에서 우리가 읽는 그대로입니다. “또 아들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말 그대로, 예수님을 통해 세상을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온 우주, 모든 코스모스, 모든 물질 세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해 보면 정말 압도됩니다. 만약에 태양 안에 지구를 넣는다면, 약 120만 개의 지구를 넣을 수 있습니다. 그 후에 또 약 430만 개의 달을 더 넣을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남습니다. 태양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죠. 태양은 약 1억 5천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별인 알파 센타우리는 태양보다 다섯 배나 더 큽니다. 그리고 달은 약 34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사실 달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하루에 한 39킬로미터쯤 걸어간다면 한 27년이면 달에 도착할 수가 있습니다.
빛은 초당 30만 킬로미터를 이동하기 때문에, 달에는 한 1.5초 만에 도달합니다. 이제 만약 우리가 그 속도로 이동을 할 수만 있다면, 약 8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수성에는 4분 30초 만에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약 4천 2백만 킬로미터 떨어진 금성에는 2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또 5천 5백만 킬로미터 떨어진 화성에는 한 4분 21초면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긴 여행을 원하신다면 목성까지 갈 수도 있는데, 목성은 약 5억 9천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35분 11초가 걸립니다. 토성까지 가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립니다. 한 1시간 정도 걸립니다. 거리가 약 12억 7천만 킬로미터입니다. 그리고 더 멀리 가고 싶으시면 천왕성은 약 25억 9천만 킬로미터, 해왕성은 약 48억 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명왕성은 그보다 훨씬 더 멀리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명왕성까지 간다고 해도, 아직도 집 앞마당을 벗어난 정도에 불과합니다. 베텔게우스라는 놀라운 별은 약 1경 4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데 지름이 지구의 공전 궤도보다 더 큽니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별입니다. 이 모든 물질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이 모든 것을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면서 선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인간이 죄로 더럽히고 만거죠. 그리고 예수님은 언젠가 다시 오셔서 이 창조를 새롭게 하시고, 처음 의도하신 그 영광으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16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또한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모든 것은 예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예수님을 위해 존재합니다. 예수님 자신의 선과 기쁨과 목적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모든 것보다 먼저 계셔야만 창조하실 수 있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선재하신 분이십니다. 성육신 이전부터 살아 계셨습니다.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예수님은 창조 이전부터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주이시니까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붙들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것이 결속되는 원리이죠.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들어 놓고 떠나셨다는 그런 이신론적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모든 것들을 붙들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나로 유지하는 원리이십니다. 모든 것이 움직이게 하시고, 모든 것이 궤도를 따라 돌도록 하십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우주 안에 있는 천체들이 스스로 궤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붙들어 두시기 때문에 궤도를 유지하는 겁니다. 그리고 원자 안을 들여다보면 중성자와 양성자와 전자가 그 자리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도, 자생적인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그렇게 작동하도록 계속해서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능력의 말씀으로 모든 것들을 붙들고 계십니다. 만약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진다면 우리는 번갈아 얼어붙거나 혹은 타버릴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항상 같은 속도로 움직이게 굳건히 붙들고 계셔야 합니다. 지구는 정확히 23도의 각도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사계절이 존재합니다. 만약 그렇게 기울어져 있지 않다면, 바다에서 올라온 수증기가 남북으로 이동해서 양쪽 끝에 거대한 얼음 대륙을 만들어낼 겁니다. 자전에도 큰 문제가 생길 겁니다. 계절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만약 달이 지금과 같은 정확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는다면, 바닷물은 하루에 두 번씩 모든 육지를 뒤엎고 말 겁니다. 이 모든 것을 누가 그 자리에 붙들고 계시겠습니까? 만약 바닷물이 지금보다 몇 킬로미터만 더 깊어진다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산소가 모두 흡수되어 식물 생명은 존재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처럼 미묘한 균형을 도대체 누가 유지하고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만물보다 먼저 계셨고, 모든 것이 예수님 안에서 결속되고, 모든 것이 그 안에서 유지됩니다. 이렇게 전능하신 분께서 말구유에 누워 있습니다. 창조주이시며, 모든 것을 붙드시는 분이시고,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이 말입니다. 이 아기는 창조의 시작이시며, 창조의 끝이시며, 창조를 붙드시는 분이시고, 창조의 목적이십니다.
자, 이제 세번째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관계를 보십시오. 16절을 보면,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이런 말이 나옵니다.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다 그에게서 창조되었습니다. 신약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용어들입니다. 천사들의 계급과 서열을 가리키는 표현이죠.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를 포함해서 여러 서신에서 이 용어들을 반복해서 사용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천사들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동시에 그 위에 계신 왕이십니다.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라는 표현은 천사들의 다양한 계층과 서열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 모든 것 위에 계십니다. 가장 높은 천사장들조차도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합니다. 스랍이든, 그룹이든, 타락한 천사들이든, 심지어 사탄까지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아래에 있습니다.
그날 밤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이렇게 외쳤던 그 천사들조차도,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의 종이었습니다. 그 천사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신 존재입니다. 선택받은 천사이든 거룩한 천사이든 타락한 천사이든, 모든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합니다. 천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의 능력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붙드시는 능력이 없이는 계속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히브리서 1장 7절을 보면,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만드시며”라고 했습니다. 창조를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하나님과 예수님이 천사들을 만드셨을 때, 사역자들, 그러니까 섬기는 자들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셨을 때, 아들은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그리고 천사들은 예수님을 경배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주권자이시기 때문이죠.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이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하시며.” 천사들은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섬김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권자이십니다. 이제 네 번째 관계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계신지, 창조된 우주와 어떤 관계에 계신지, 그리고 보이지 않는 천사들의 세계와 어떤 관계에 계신지를 살펴봤습니다. 이제는 교회와의 관계를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예수님은 근본이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것 가운데서 으뜸이십니다. 이 안에는 매우 중요한 진리들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성경에서는 몸이라는 비유가 자주 사용됩니다. 교회는 몸과 같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 머리와 같다, 이렇게 말이죠.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비유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 그대로입니다. 성장하게 하는 능력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뇌, 두개골 안에 작은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에 뇌하수체라고 불리는 샘이 있습니다. 이 뇌하수체는 성장과 매우 관련이 깊습니다. 여러 가지 호르몬 가운데서 성장 호르몬을 분비함으로써 몸의 성장을 촉진합니다. 몸의 성장은 이 성장 호르몬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대뇌는 신체의 여러 부분을 통제합니다. 또 소뇌는 근육 작용을 조화롭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졌습니다. 인간의 모든 신체 기능은 뇌의 통제를 받습니다. 의식적인 기능이든 그렇지 않든 모두가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머리에서 일어나는 작용에 의해 자극을 받습니다. 성장도, 지시 체계도, 모든 사고 과정도 모두 머리와 뇌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결정하는 방향을 제공하죠.
이것은 한 가지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서 모든 진리의 근원이시고, 모든 지식의 근원이시고, 모든 지혜의 근원이시며, 모든 성장의 근원이시고, 모든 인도의 근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시작이십니다. 교회의 시작입니다. 교회의 근원이십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만드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가 존재하는 근원이십니다. 그리고 곧이어 보게 되겠지만, 부활로 말미암아 교회 가운데 가장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르케(archē)이십니다. 개척자이십니다. 앞서 가시는 분이십니다. 인도자이십니다. 교회의 근원이십니다. 단지 머리이실 뿐 아니라, 창조주이시며, 근원이십니다. 18절을 계속해서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여기에 다시 프토토토코스(prōtotokos)라는 표현이 나오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간적으로 가장 먼저 부활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구약에도 부활한 사람들이 있었죠.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부활하시기 전에 죽은 자들을 살리신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시간적인 순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부활한 모든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부활하게 될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프토토토코스(prōtotokos)라고 하는 말입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십니다. 바울은 여기서 부활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태어나셨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인류가 장차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게 될 것을 보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영웅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나온 모든 이들 가운데서 가장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가장 우월하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한 역사 속의 죽은 어떤 인물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몸인 교회의 근원이십니다. 그 몸을 시작하신 분이십니다. 자신의 부활을 통해 온 교회에 생명을 주신 분이십니다.
이 모든 사실의 결과로,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이시고, 동일한 본체이시라는 사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에 계신 분이라는 사실,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라는 사실, 모든 영적 세계 위에 주권자로 계신다는 사실, 교회에 대하여 주권자이시고, 인도자이시고, 권위이시고, 근원이시고, 생명이 되신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18절 하반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적으로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당연한 일 아닙니까? 온 우주 가운데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지신 분, 모든 것의 기준이 되시는 분, 모든 것의 근원이신 분, 목적이 되시는 분, 창조의 영역 안에서 앞서 가시는 분, 붙드시는 분, 다스리시는 분, 교회의 머리이시고, 시작이시고, 부활한 자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지신 예수님이야말로 만물의 으뜸이 되시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크리스마스 명절은 즐기면서, 정작 그 명절의 이유가 되시는 분을 외면한다는 것이 얼마나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까? 더 나아가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대상이 단순한 역사 속의 한 인물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제 바울은 빠뜨리는 것이 없도록, 19절에서 모든 것을 다 말한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른 모든 계시된 것들과 어떤 관계에 계신지에 대해서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신성의 모든 능력, 신성의 모든 속성이 그 안에 있습니다. 2장 3절은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라고 합니다. 9절은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질의 충만이시고,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이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누군가가 이후에 나타나서는 “나는 하나님이다” 이렇게 말하더라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으십니다. 경쟁자도 없으십니다. 더 이상의 계시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신성의 모든 충만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일이기 때문이죠.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왜입니까? 그 답이 20절에 나옵니다. 잘 들으십시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십자가로 가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피를 흘리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죽음을 통해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우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속받은 인류를 모아서 하나님께로 데려가기 위해 오셨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예수라고 불리게 된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과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에 화목을 이루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우주에 드리워진 저주를 제거하시고, 이 우주를 원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창조의 목적에 맞게 회복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과 저 같은 사람들을 모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사람들을, 인류의 역사 전체를 통해 모으시고,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우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에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잃어버린 자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되기 위해 우리와 같은 육신을 취하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진리입니다. 구약에서 요압이 반역하여 떠났던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위해 간청하여 다윗에게 데려왔고, 다윗이 입을 맞추었던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시죠?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셔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입맞춤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의 참 의미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우리 문화 속에 크리스마스가 한편으로는 너무 가볍게 여겨지고, 또 한편으로는 공격을 받아서 가장 중요한 것, 그러니까 영원히 중요한 단 하나의 의미를 없애버리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때에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12월 25일이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저는 또 크리스마스를 둘러싼 여러 가지 외적인 요소들을 옹호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만일 세상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초점을 맞출 기회를 준다면, 그 기회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 기회를 붙들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것이 옳기 때문이죠. 그리고 반드시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제거하고, 잔치는 그대로 두고, 그 이유만 없애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을 얻으려는 시도 속에서, 결국 자기 영혼을 잃어버리고 말죠. 우리는 이들을 향한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 하나님을 우리의 구주로 고백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구원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이처럼 은혜로 우리에게 이 선물을 주셨는지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특별히 이 크리스마스의 계절에, 그리스도께 속한 신실한 사람들의 증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구주께로 향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이 그리스도를 가리기 위해 온갖 일을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의미와 성육신의 개념과 구원의 진리를 흐리게 만들고 있습니다만, 주님, 공격이 거세질수록 우리의 증언도 더욱 담대해지게 하시고, 우리에게 사람들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인도할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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