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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찬식이 있습니다. 성찬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 아들을 내어 주신 것을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지난 몇 주 동안 저는 ‘건지심’이라는 우리가 소홀히 해 온 교리, 방치된 교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이 주제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건지심을 기념하기 위해 성찬식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은 건지심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오늘 아침에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지난번에 다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각주 하나를 덧붙이는 겁니다. 사실 설교라기보다는 각주를 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설교에 붙이는 각주입니다. 혹시 그때 참석하지 못하셨다면, 건지심을 다룬 지난 두 주일 동안의 오전 설교 테이프를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당 입구 쪽에 있는 테이프 센터에서 구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때 전하지 못했던 몇 가지 내용을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일반론을 말씀드리죠. 구원은 참으로 위대한 주제입니다. 죄인의 삶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구속사의 위대한 주제이자 성경의 위대한 주제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하신 그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구원이라는 위대한 진리에는 매우 풍성하고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저는 크게 두 범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에는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구원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있고, 인간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있고,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에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느낄 수도 볼 수도 없고, 삶의 모습으로 직접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에는 하나님의 관점, 하나님의 결정, 하나님의 판결, 선언, 하나님의 택하심과 행하심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그 자체로 우리의 삶에 가시적으로 나타나 보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칭의가 그렇습니다. 칭의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적용하셔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선언입니다. 속량도 마찬가집니다. 속량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죽음과 지옥으로부터 값을 치르고 사시는 겁니다. 여기에는 대속의 값을 치른다는 개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양자됨이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구원받을 때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된다고 말합니다. 공식적으로 주어지는 새로운 법적인 신분입니다. 그리고 화목이라는 위대한 진리도 있습니다. 죄인과 하나님 사이에 있던 적대 관계가 제거되어 죄인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기에 합당한 자가 되는 것이죠. 칭의, 속량, 대속, 양자됨, 화목, 이러한 것들은 우리를 위해 이루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은혜로 적용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시는 일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직접 경험한다거나 눈에 보인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눈에 보이고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분만 바꾸지 않으십니다. 우리에 대한 생각, 우리를 바라보시는 관점, 법적 지위만 바꾸시는 게 아니라 우리의 실제 삶도 변화시키십니다. 우리의 삶을 실제로 달라지게 만드십니다. 이 변화는 눈에 보입니다. 우리의 본성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의지를 바꾸고, 욕구를 바꾸고, 말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십니다. 이 두 번째 범주에 속하는 영적 현실이 바로 건지심이라는 위대한 진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내용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단지 신분만 바뀐 사람이 아니라 본성이 바뀐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지위, 신분이 새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본성도 새롭게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생, 거듭남, 새 생명, 회심,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죠. 신분만 바뀐 것이 아니라 본성도 바뀌었습니다. 그러므로 건지심 교리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건지심을 받은 영혼의 삶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극적인 변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제가 지난 몇 주 동안 계속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은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회에서 누가 참된 그리스도인이고 누가 거짓 그리스도인인지를 분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누가 진짜이고 누가 아닌지를 구별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첫째, 원수는 교회 안에 가능한 한 거짓 신자들을 많이 뿌려 놓아서 교회의 생명력을 빨아들이고, 누룩처럼 온 덩이에 퍼지게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썩은 사과 하나가 전체를 상하게 하는 것처럼 만들려는 거죠. 또 마귀는 교회가 참된 그리스도인을 구별하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계속해서 속임수와 거짓된 확신 가운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런 구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원수가 뿌려 놓은 가라지가 자리를 잡게 되고, 실제로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께 속했다고 착각 속에서 계속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게 됩니다. 그러면 교회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정결함을 유지할 때에 세상에 나타내야 할 그 위대한 영향력과 능력마저 파괴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짧은 시리즈에서 ‘건지심’이라는 주제로 누가 참된 그리스도인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별히 건지심 가운데서도 우리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 다시 말해서 신자의 삶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변화와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았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건지심의 특징이 분명하게 나타나야 한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내용에 오늘 각주를 하나 덧붙이겠습니다. 우리 마음 깊이 새겨질 때까지 거듭 말할 필요가 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에 나타나는 건지심의 첫 번째 요소는 오류에서 진리로의 건지심입니다. 우리는 오류에서 진리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몇 주 동안 제가 지적했듯이, 오늘날 기독교 안에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이 새로운 생각, 새로운 관념, 새로운 운동이 나타났습니다. 독실한 불교도라면 결국 천국에 갈 것이고, 독실한 모하메드교도도, 다시 말해서 무슬림이라도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유대인이든지, 무신론자이든지, 몰몬교도라도 독실하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답니다. 정교회에 속해 있든 로마 가톨릭교회에 속해 있든, 그저 예수님의 이름만 부르든, 그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만 하면 모두 충분하답니다. 이렇게 진리를 최소한으로 축소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을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참된 신자들을 오류에서 진리로 분명하게 건져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을 통해 참된 신자로 드러나죠. 다시 골로새서 1장으로 가보겠습니다. 본문으로 살펴보았는데, 오늘 각주를 덧붙이려는 바로 그 구절이 골로새서 1장 12절과 13절입니다. 12절, 13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물론 이것은 확고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기에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이라는 것은 법적인 내용입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분이 바뀌고 우리의 지위가 바뀌었다는 말이죠. 그러나 우리는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에 참여하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실제로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우리는 흑암에서 빛으로 건짐을 받았습니다. 여기 이 빛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는 오류에서 건지심을 받았습니다. 흑암은 오류와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는 오류에서 진리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는 진리와 의미가 같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진리이십니다.

그러므로 첫째로, 건지심을 받은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오류에서 진리로 옮겨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진리에 속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진리를 믿습니다. 진리를 받아들입니다. 진리에 순종합니다. 진리를 사랑합니다. 진리를 선포합니다. 심지어 진리를 위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할 것입니다. 진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빛이신 그리스도와 의미가 같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진리를 믿지 않으면서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할 것이라거나, 살아 계신 하나님과 참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뭔가요? 오류에서 진리로 건짐을 받는 것뿐입니다.

다시 요한복음 8장으로 가보겠습니다. 매우 중요한 장입니다. 요한복음 8장입니다. 누가 그리스도인이고 누가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하는 문제는 요한에게 매우 중요하고 중대한 진리였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자신의 서신뿐만 아니라 복음서에서도 이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입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다시 31절로 가보면,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내 말, 즉 주님의 말씀은 진리와 의미가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라고 하셨습니다. 참된 제자, 마데테스 알레토스(mathētēs alēthōs),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는 말씀 안에 거합니다. 그를 오류에서 자유롭게 한 것이 바로 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건지심의 중심에 진리가 있습니다. 이제 41절로 내려가 보십시오. 여기에서 유대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버지는 한 분 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하죠. “우리 모두에게 한 아버지가 계시다. 우리 모두가 같은 하나님을 예배한다. 이러한 종교 스펙트럼 안에서 어디에 있든 상관없다. 일종의 일신론적 종교들이 한데 모여 있는 이 범주 안에서 입장이야 어떻든 상관없다. 우리 모두는 한 아버지, 한 하나님을 모신다.”

유대인들이 바로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나름대로 충분히 할 만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었고, 엘로힘(Elohim), 야훼(Yahweh)를 믿었습니다. 창조주이시며 아브라함에게 위대한 언약을 주시고 그 밖의 여러 언약을 주신 언약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 당신과 정확히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말한 겁니다. 오늘날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이렇게 말하는 거죠. “우리는 같은 하나님을 믿지요. 우리 모두가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라고 말이죠.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아주 간결하지만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이보다 더 분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42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듯 그리스도를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참 하나님으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같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바른 진리를 믿고, 그리스도에 관한 바른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사실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44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너희 아비,” 누구에게서 났다고요? “마귀에게서 났으니.” 참된 그리스도와 참된 사역을 믿지 않고, 성경이 밝히 말하는 참된 방식을 통한 참된 구원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해 잘못 알고,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해 잘못 알고,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구원에 관해 잘못 알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사실 그 사람의 아버지는 누굴까요? 마귀입니다.

예수님이 이보다 더 단호하게 말씀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은 참 하나님을 안다면서 자랑스럽게 여기던 사람들에게 증거를 들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4절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그리고 이제 잘 들으십시오.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오류에 빠진 사람은 마귀의 자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진리가 경계선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4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잘 들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믿지 않은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믿지 않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잘 들으세요, 필연적으로 진리를 믿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진리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진리를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는 사람들의 말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리를 말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 너희가 실제로 누구에게 속했는지를 드러낸다. 너희가 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리에 속했습니다. 우리는 진리로 살아갑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46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그리고 47절에서 그 질문에 답하십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너희는 매우 종교적이다. 구약성경도 가지고 있다. 매우 독실하다. 율법을 철저하게 지킨다. 창조주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예배하기 때문에 세상의 일류라는 사실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내가 지금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아버지는 마귀다. 너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도 아니다. 너희는 마귀의 자녀다. 너희가 마귀의 자녀인 이유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의 말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신자와 불신자를 구분하는 가장 결정적인 잣대입니다. 얼마나 진지하게 믿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게 뭔가요? 진리입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요한의 서신, 요한일서 4장으로 가보십시오. 요한일서 4장 5절에서 요한은 불신자들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세상에는 세상의 주파수가 있습니다. 모든 안테나가 그 주파수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서로 통하고 서로의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이 논리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차근차근 알려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참 하나님으로 믿고, 예수님에 관한 진리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순종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다시 말해서 사도들의 교리를 진리로 인정한다는 겁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진리로 인정하는 겁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요한은 여기서 그리스도에게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너희가 하나님께 속했다면 우리의 말을 듣는다.” 신약성경은 사도들과 동역자들을 통해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자는 사도들이 기록한 말씀을 믿고, 신약성경을 믿고, 구원의 메시지와 하나님의 진리가 신약성경에 유일하게 계시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은 이렇게 믿지 않습니다. 이어서 6절에서 요한은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진리의 영이 누구입니까? 오직 한 분뿐입니다.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요한복음에서도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부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진리의 영은 성령 오직 한 분뿐인 반면에, 미혹의 영은 많습니다. 모든 귀신과 사탄이 다 미혹의 영입니다. 그리고 진리의 영은 미혹의 영을 대적합니다. 그런데 요한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우리는 어떤 사람이 성령의 능력 아래 있는지, 아니면 거짓말하는 영의 지배를 받는지를 알 수 있다. 어떻게 아는가 하면, 사도들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면 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날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즉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오순절 날에 이 유대인 수천 명이 바로 그날 구원을 받았고, 성경은 그들이 즉시 “사도들의” 무엇을 계속 따랐다고 했습니까? “가르침”을 따랐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의 대상이 바뀔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신뢰의 대상이 바뀔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그토록 절대적이고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신약성경의 완전한 권위를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바로 진리의 성령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그들의 마음을 찔러 깨닫게 하시고 진리를 확신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경에 계시된 그대로의 그리스도를 믿게 될 것이고, 사랑하게 될 겁니다. 우리가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하는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사랑을 그리스도께 드린다는 뜻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사도들이 기록한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게 될 겁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2장 27절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 그러니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여러분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기름 부음, 그 진리의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7절로 가보면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제 5장 1절로 내려가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자, 이 논리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잘 따라오십시오. 요한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면, 먼저 사도들의 말을 듣습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진리임을 확신하게 하시기 때문이죠. 사도들이 기록한 말씀을 믿고, 사도들의 가르침과 사도들이 전한 진리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예수 그리스도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형제를 사랑합니다. 하나님께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는 다른 사람들도 사랑합니다.

형제 사랑이 분명하게 나타날 겁니다. 요한은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다시 3장 14절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자, 잘 보십시오. 먼저 여러분이 오류에서 진리로 건짐을 받았다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진리이심을 믿고, 참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참된 사역과 그리스도가 주시는 참된 구원을 믿습니다. 또한 사도들이 성경에 기록한 진리를 믿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사도들의 교리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백성도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받아들입니다. 그곳이 여러분의 집입니다. 그곳에 여러분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곳이 여러분이 속한 곳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놀랍게도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몸 안에 두셔서 교회, 곧 하나님의 참된 백성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헌신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늘 이렇게 묻습니다. “거짓 종교 안에 있으면서도 참된 그리스도인일 수 있을까요?” 글쎄요, 참된 그리스도인이면서 그곳에서 열리는 행사나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짓 체계 안에 머물면서 그들이 믿는 것을 믿는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일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그곳의 교제를 소중히 여기고, 그 교제를 찾아다니고, 그 교제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면 결코 참된 그리스도인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를 사랑합니다. 건전한 교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요, 건전한 교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사랑합니다. 형제를 사랑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서로 하나로 세워 가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제 요한이서를 보십시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도 전체적인 그림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셨을 겁니다. 요한이서 9절을 보십시오.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전에 몇 가지 말씀을 드렸지만 조금 더 말씀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지나쳐”라는 말이 나오죠. 지나가는 사람, 경계를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울타리 밖으로 나간다는 뜻입니다. 진리에는 경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분명한 계명, 그러니까 참된 계명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입니다. 누구든지 그것을 넘어가서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교훈”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교훈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관한 교훈이라는 뜻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성경이 가르치는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의 경계를 벗어나는 사람, 누구든지 그 진리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얼마나 단도직입적입니까?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께서 우리를 모든 무엇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소유합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에 관한 참된 가르침 안에 거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왜곡해서 이해한다면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 겁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고, 예수님이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이심을 믿지 않고, 동정녀에게서 나셔서 완전하고 죄 없는 삶을 사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에 관한 사실들을 믿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또 일부 기괴한 ‘믿음-말씀(word-faith)’ 운동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인이 되셨고 악한 존재가 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님 자신의 죄값을 치르게 하시려고 사흘 동안 지옥에 보내셔야 했다고 믿는다면,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진리의 영에게 가르침을 받고 계십니까? 아니면 미혹의 영에게 가르침을 받고 계십니까? 요한은 이 문제를 우리가 아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줍니다. 자, 9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의 참된 가르침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됩니까? 물론 이 가르침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한 사도들과 동역자들을 통해서 신약성경에 기록된 겁니다. 누구든지 이것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그 가르침 안에 거하는 사람은, 저는 여기서 이 ‘거한다’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진리의 언저리에 겨우 걸쳐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진리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참된 가르침 안에 완전히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두 모신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진리 안에 확고히 자리 잡을 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충만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10절에서 경고가 이어집니다. 누구라도 여러분에게 이 진리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서 성경적이지 않은 것, 그리스도에 관해 참되지 않은 것, 진리의 경계를 넘어가는 것, 그 울타리 밖에 있는 것, 정통 신앙의 범위를 벗어난 것을 가지고 온다면 그 사람을 집에 들이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과 관계도 맺지 마십시오. 자신의 사역을 계속해 나가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위치에 세우지도 마십시오. 그렇게 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당시에는 여러 지역을 다니며 가르치는 교사와 설교자들이 사람들의 집에 머물려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집에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의 사역을 인정하고 지지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분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겁니다. 집에 들이지 말고 인사도 하지 마십시오. 인사하지 말라는 것은 잘되기를 빌어 주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를테면 이렇게 말하는 거죠. “죄송하지만 여기에는 머무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하는 일을 저주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라는 겁니다. 정말입니다. 본질적으로 그런 뜻입니다. 물론 방금 생각난 표현이기는 하지만, 요지는 그렇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런 사람들을 초청해 들이고, 그들에게 가르칠 자리를 내어 주면서 “정말 훌륭한 분들 아닙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저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싶습니다. 아시잖아요. 그들도 결국 우리와 함께 천국에 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일이 잘되기를 빌어 준다면, 11절을 보십시오.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들으셨습니까? 미혹의 영이 하는 일을 돕고 거기에 힘을 보태는 거죠. 속임수가 퍼지는 일을 돕고 거기에 힘을 보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을 때, 오류에서 진리로 건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들어오셔서 역사하셨다는 뜻입니다. 본래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는데,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이 보면 미련해 보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어 있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이 살아가던 육에 속한 사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변화되어서 진리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러면 갑자기 그 사람은 성경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마음을 살리셔서 성경이 진리라고 믿게 하시고, 성경이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고 믿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이 자신으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진리에 필수적인 것은 성경을 믿는 겁니다. 성경에 기록된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어떤 사람을 흑암에서 빛으로 건져 내기 위해 역사하신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아무런 소망도 없고 무력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믿게 됩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잃어버린 자이고, 소망이 없고, 멸망할 수밖에 없고, 정죄받은 자라는 것을 믿게 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 아래 있다는 사실로 인해서 마음에 깊은 두려움과 고통을 느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고, 영원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이시고, 동정녀에게서 나셔서 이 세상에 오신 영원한 하나님이자 사람이심을 믿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죄가 전혀 없고, 완전하고 거룩한 삶을 사셨고, 단 한 번도 죄를 범하지 않으셨고, 어떤 죄에도 결코 죄책이 없으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오직 하나님의 참된 말씀만을 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지니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심으로 물질세계에 대한 창조적 능력을 나타내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또한 귀신들을 다스리는 기적을 행하심으로 귀신들의 영적 세계에 대한 놀라운 권세와 전능하심을 나타내셨으며, 거룩한 천사들에 대해서도 권세를 가지셔서 원하셨다면 천사들을 군단으로 불러오실 수도 있었다는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믿는다면 성령님이 깨닫게 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아무 죄 없는 대속자로서, 흠 없는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악도 행하지 않으셨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대신해서, 여러분의 자리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고,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오른편에 앉히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성령님을 보내셔서 교회를 세우시고 그 안에 거하게 하셨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시고, 어느 날 다시 오셔서 영원한 나라와 영광을 세우실 것을 믿습니다.

또 우리는 구원이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주어진다는 것을 믿습니다. 칭의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의가 전혀 없지만,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의 완전한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주 예수께서 우리의 의가 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바로 우리가 믿는 것들이죠. 이 진리를 깨닫고, 믿고, 받아들이고, 오직 이 진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 기꺼이 그리고 간절히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복종하고 순종합니다. 하나님이 건져내신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바로 이들이 건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 순종합니다. 요한은 이 문제에 대해서 더 말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4장 15절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여러분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무엇을 하셨는지, 그리고 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이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되는지를 온전히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3장 23절을 보십시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자, 그렇다면 누가 참된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또 사도들도 기록한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믿는 사람입니다. 또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성령님이 하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고, 그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높이십니다. 흑암에서 빛으로 건짐을 받는 것은 사탄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지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빛과 진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의미입니다. 여러분이 빛 가운데 있고 진리 가운데 있으며, 진리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서 능력 있게 역사하셨다면 여러분은 진리를 믿고,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에 속한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탁월한 저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는 표지(The Distinguishing Marks of a Work of the Spirit of God)>에 나오는 몇 가지 말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에드워즈는 비범한 지성으로 참된 신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이해했고, 진리의 문제도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미혹의 영이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그들로 하여금 오류가 없는 유일한 기준인 성경을 높이 평가하게 하고, 성경을 귀하게 여기며, 성경을 매우 가까이하고 익숙하게 만들겠는가?” 이 질문의 답이 ‘아니다’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이 성경을 의심하고, 성경을 자기 뜻대로 조작하고, 성경에 무엇인가를 더하고, 성경에서 무엇인가를 빼고 있다면, 진리의 영의 역사가 아닙니다. 미혹의 영의 역사입니다. “흑암의 왕이 자신의 흑암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에게로 인도하겠는가? 마귀는 언제나 거룩한 책인 성경을 향해 치명적인 악의와 증오를 드러내 왔다. 그 빛을 꺼 버리고 사람들을 성경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 왔다. 자신의 흑암의 나라를 무너뜨릴 빛이 바로 성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마귀는 오랜 세월 동안 성경의 능력이 자신의 목적을 좌절시키고 자신의 계획을 무너뜨리는 것을 경험해 왔다. 성경은 끊임없이 마귀를 괴롭히는 재앙이다. 성경은 미가엘이 마귀와 싸울 때 사용하는 주된 무기이다. 성경은 마귀를 찌르고 정복하는 성령의 검이다. 성경은 말을 타신 이의 입에서 나와 원수들을 치는 그 날카로운 검이다. 성경의 모든 구절은 옛 뱀을 괴롭히는 화살이다. 수천 번이나 그 화살이 찌르는 고통을 맛보았다. 그러므로 성경을 대적하고 그 안에 있는 모든 말씀을 마귀는 미워한다. 우리는 마귀가 결코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더 귀하게 여기게 하거나 성경을 더 사랑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헌신하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들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들을 보았나요?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말씀에서 무엇인가를 빼내고, 말씀에 무엇인가를 더하고, 자신들을 말씀보다 높이면서 이런 계시 저런 계시를 믿어야 한다, 공의회의 결정이다, 칙령이다, 교황의 문서가 있다, 환상도 있다, 계시도 있다, 직관도 있다, 이렇게 한다면 어떻습니까? 이런 것들을 말씀보다 높은 자리에 둔다면, 또 다른 곳에도 빛이 있다고 말한다면, 어둠의 영을 드러내고 있는 겁니다. 에드워즈는 이렇게 썼습니다. “참된 성령은 사람들로 하여금 건전한 교리에 부합하는 진리 안에 더욱 굳게 서게 한다. 이와 같이 역사하는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역사하신다. 성령은 모든 것을 실제 있는 그대로 보여 주신다. 성령은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하신다. 진리를 드러내는 것은 무엇이든 빛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빛에 드러나는 것은 모두 보인다. 모든 것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빛이기 때문이다.”

“마귀의 나라는 어둠의 나라이다. 그의 나라는 오직 어둠과 오류에 의해서만 유지되고 확장된다. 사탄은 어둠을 통해 자신의 모든 권세와 지배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성경은 ‘어둠의 권세’가 있다고 하고, 귀신들을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이라고 한다. 우리의 어둠을 제거하고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는 영은 우리를 속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영이다. 우리에게 진리를 확신하게 하는 영은 우리에게 이처럼 큰 은혜를 베푼다. 내가 진리를 보게 되고 모든 것을 실제 있는 그대로 깨닫게 되었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먼저 내가 어떤 방법을 통해 이런 유익을 얻게 되었는지를 따져 묻는 게 아니라 즉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저는 이 말이 참 좋습니다. 먼저 내가 어떤 방법을 통해 이런 유익을 얻게 되었는지를 따져 물을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왜 따져 물을 필요가 없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왜 그런 유익을 받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답 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에드워즈는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어떤 영적인 역사이든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더욱 귀히 여기게 한다면,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분명한 표지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에 관해 바르게 믿는다면, 그러니까 예수님이 누구신지, 왜 오셨는지, 무슨 일을 하셨는지,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바르게 믿는다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에 관한 절대적인 진리만을 높이십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진리와 다른 것은 무엇이든 미혹의 영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참된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믿습니다. 사도들이 기록한 모든 말씀을 믿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사랑합니다. 성경의 진리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진리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빛 안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둠의 권세 안에 머물면서도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거나,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에 속한 사람들을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지금까지 건지심의 첫 번째 영역을 말씀드렸습니다.

함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조나단 에드워즈가 말했듯이, 우리가 어떻게 진리를 알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 앞에 엎드려 감사할 뿐입니다. 한때 어둠 가운데 있었던 우리를 빛에 거하게 하시고, 한때 오류만 알던 우리로 진리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와 사도들의 교리에 담긴 진리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는 빛의 나라에 거하며 진리의 왕을 섬기는 백성으로서 진리에 속한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요. 이 자리에 오류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오류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면, 자신들의 처지가 얼마나 심각하고 또 심각한지를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이들은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습니다. 처음부터 거짓말하는 자, 속이는 자, 모든 귀신을 통해 거짓과 속임을 퍼뜨리는 자인 마귀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진리의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분명하게 깨닫게 하시는 성경의 진리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흑암에서 빛으로 건져내시는 그 능력의 역사로 인해 성령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성령님이 행하시는 참된 역사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찬양하며 성령님께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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