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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 교회에서 예배를 계속 드리셨다면, 제가 몇 주 동안 계속 살펴보던 누가복음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사실 누가복음을 잠시 멈추는 것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꼭 전해야 한다는 아주 강한 부담을 느껴서 건지심에 대한 설교 한 편을 전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이제는 시리즈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러다가는 평생 계속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제 마음을 계속 짓누르는 이 문제, 이 내용을 꼭 전해야 하겠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귀신 들린 사람을 건져내시는 장면을 살펴보다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또 누가가 이사야 61장을 인용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면서, 메시아가 오셔서 자기 백성을 건지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듯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는 ‘건지심’에 관한 설교를 들어 본 기억이 없습니다. 한 번도 없습니다. 건지심을 다룬 신학적인 글을 읽어 본 기억도 없습니다. 그래서 신학 서적 뒤에 있는 색인을 통해서 건지심을 다룬 내용이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건지심이라는 관점에서 구원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이 위대한 진리가 대체로 교회에서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방치된 교리인 ‘건지심’에 관한 말씀을 계속 전하고 있습니다. ‘건지심’ 교리가 왜 중요할까요? 제가 이 시리즈를 통해 여러분에게 계속 말씀드리고 있듯이, 크게 결여된 이른바 ‘복음주의 교회’의 분별력 때문입니다. 너무나 슬프고 실망스럽습니다.

복음주의 교회에 분별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분별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복음주의 교회가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것들을 나열할 수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를 분별하는 문제인데, 이 부분에서 분별력이 심각하게 부족합니다. 저는 이 점이 정말 놀랍습니다. ‘복음주의’라는 말 자체가 ‘복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복음주의 교회, 바로 복음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가 복음을 듣고 참되게 회심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지 못하거나 구별하려 하지 않는다는 현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이제는 관용과 포용의 시대라면서,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있고 자기들 마음대로 정의한 것이라도 기독교라고 주장하기만 하면 모두 참된 기독교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심지어 그런 폭넓은 포용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를 불쾌하게 여깁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습니다. 이번이 겨우 네 번째 주인데도, 우리 교회는 물론이고 우리 교회 밖에서도 적지 않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어젯밤에는 한 남성분이 저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이 시리즈를 듣고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이 시리즈를 듣고 있는데, 목사님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뭡니까?”, 이렇게 물었죠.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군요. “사람들이 목사님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 혹시 알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뭐, 대략적으로는 짐작이 가지만, 뭐라고 하는지 저에게 말씀해 보시겠습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존 맥아더가 그렇지 뭐. 자기가 모든 진리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잖아.’ 지금 목사님 설교를 다시 듣고 있는데요, 사람들이 목사님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는 게 저는 참 속상하네요. ‘존 맥아더가 그렇지 뭐. 자기가 모든 진리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잖아.’ 이렇게 생각하니 말이에요.” 여러분, 이것만은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저에게서 진리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진리의 근원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으십니까?

저는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저는 미국 사회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지금은 포스트모던 시대입니다. 진리가 없다고 말하는 시대입니다. 이전 시대 사람들은 진리를 찾아다녔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진리를 찾지 못했으니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결론을 내린 겁니다. 진리를 찾지 못한 이유는 성경을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채플에서 대학생들에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 문화가 직면한 가장 큰 걸림돌은 성경입니다. 성경이야말로 미국 문화의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여러분,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성경이 없다면 동성애자의 권리에 대한 아무런 논쟁을 벌이지 않을 겁니다. 음란물에 대해서도 논쟁하지 않을 겁니다. 소아성애, 음행, 간음, 이혼, 가정의 붕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성경이 없다면 이런 문제들에 대해 아무런 논쟁도 없을 겁니다. 낙태며 안락사에 대해서도 논쟁하지 않을 겁니다. 미국 사회는 성경 때문에 갈라져 있습니다. 성경이 문제입니다.

좌파적이고 자유주의적이고 세속적인 문화는 우리가 성경을 믿는 것 자체는 개의치 않습니다. 다만 성경을 교회 밖으로 가지고 나오지는 말라고 합니다. 교회 안에만 두고 공적인 논의의 장으로는 가져오지 말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세상이 듣기 싫어하는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그들에게는 골칫거리가 된 겁니다. 세상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저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복음주의 교회에서도 성경을 골칫거리로 여긴다면 심각한 일입니다. 저만 진리를 알고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제가 진리의 근원이라는 말도 아니고요. 성경에 진리가 있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진리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진리’라는 말의 뜻이나 알고 있는지 저는 의문이 듭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진리를 정의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진리를 아주 간단하게 정의해 드리겠습니다. 진리란 실제로 존재하는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이해하시겠어요? 그것이 진리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모습이 아니라, 실제 원래 모습 그대로가 진리입니다. 우주의 탄생, 유지에 관한 진리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물질에 관한 진리가 있고요, 모든 영적인 것에 관한 진리도 있습니다. 진리란 모든 것이 존재하는 실제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모든 것의 실체를 알고 싶다면 모든 진리의 근원이신 진리의 하나님께로 가야 하고, 진리이신 그리스도께로 가야 하고, 진리의 성령께로 가야 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면 진리를 알게 될 겁니다. 저는 제 의견을 진리인 것처럼 내세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그때 제가 생각해서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그저 성경을 연구할 뿐입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의견을 내놓을 정도로 똑똑하지도 않은데, 하물며 제가 어떻게 진리를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진리는 분명히 존재하고, 그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한 목사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도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대형 교회의 목사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군요. ‘맥아더 목사는 이런저런 일에 너무 흥분합니다. 종교개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좀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에 관심이 없다면야 그렇겠지요. 그러나 저는 진리에 관심이 있습니다. 저는 진리를 위해 살고, 진리로 살아가고, 진리를 선포하고, 진리를 위해 싸웁니다. 제가 지금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제가 명성을 얻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사람들이 들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A. Times)> 잡지의 회장님과 점심을 먹었는데, 제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영향력이 상당히 큽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왜 목사님의 의견을 말씀하지 않으시나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답을 해 드렸습니다. “회장님, 농담하시는 거죠? 무슨 의견이 더 필요합니까? 저는 제 의견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진리를 전할 뿐이죠. 하나님의 진리에 관한 칼럼을 원하신다면 제가 얼마든지 쓰겠습니다.” 여러분, 제가 하려는 일은 오직 진리를 전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으로 진리를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한번은 신학생이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설교할 때 사람들에게 진리를 알려주는 것만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통해서 직접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말이죠. 다시 말해서 그저 권위적으로 “이것이 진리다”라고 선언하기보다, 왜 이것이 진리를 이해하는 합당한 방식인지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물론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설교자가 권위적으로 선언만 하면 안 됩니다. 스스로에게 어떤 권위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는 그저 앞에 서서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고, 또 이것은 이렇다”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무엇인가를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이 성경을 살펴보시고, 자세히 상고해 보았더니 진리라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제 설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이 이해하도록 여러분을 이끌어서 진리를 아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저를 소개하는 것을 들어 왔지만, 제 친구 R. C. 스프로울(R. C. Sproul)만큼 저를 따뜻하고 훌륭하게 소개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한번은 스프로울이 저를 이렇게 소개하더군요. “존 맥아더 목사는 저의 친구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맥아더 목사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증명할 수 있다면, 자신의 생각을 바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의 말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분명합니다. 우리 믿음의 핵심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누가 참된 그리스도인인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문제를 두고 얼마나 혼란스러워하는지를 보면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이번 여름에 수천 명의 복음주의자들이 모인 암스테르담 2000(Amsterdam 2000) 대회에 참석했던 대학생과 이야기를 나누어 봤습니다. 그 학생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로마 가톨릭 사제가 개회사를 하고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복음주의자들이 일어서서 박수를 보내면서 환호를 하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이런 기독교라는 가면극과 위선을 그만두고, 누가 정말 그리스도인인지 제대로 따져 봅시다”라고 말한다면 비난받을 게 뻔합니다. 주변부로 밀려나고 소외됩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진리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말하려는 것입니다. 어떻게 참 그리스도인을 구별할까요?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건지심’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건지심 신학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누가 참 그리스도인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건지심을 받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가르칩니다. 아마 이 한 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건지심’이라는 말이 그리스도인을 정의하는 데 가장 적절하고, 가장 포괄적이고, 가장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건지심을 살펴보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보통은 이런 질문을 하죠.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나는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가? 나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는가? 나는 구속받았는가?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신 속전이 나에게 적용되었는가? 나는 정말 그리스도인인가?” 그리고 이제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러면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기도했습니다.” 기도했다고요?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집회에서 강단 앞으로 나갔습니다. 감정이 아주 격해졌고 울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나가서 어떤 분하고 이야기도 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것들로 그리스도인 여부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정말 마음이 괴로웠어요. 어떤 일을 저질렀고요, 그것 때문에 정말 괴로웠어요. 결혼생활, 인생에서 어려운 상황에 빠졌고요,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손을 내밀었어요.” 이것도 아닙니다.

“저는 믿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도 믿습니다. 그러니 저는 분명 그리스도인일 겁니다” 라거나 “저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런 대답은 또 어떻습니까? 자, 보십시오. 이 모든 말은 어떤 사건을 가리킵니다. 육체적으로 행한 사건일 수도 있고요, 감정적인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단지 여러분이 기도했다는 사실만 말해줄 뿐이죠. 천국에 가고 싶어서 기도하는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여러분이 집회에서 강단 앞으로 나갔다고 해 봅시다. 그것이 무슨 뜻이든, 집회에서 앞으로 나가는 사람은 아주 많죠. 그러나 그랬다고 해서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회심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도 아닙니다.

마음이 괴로운 사람도 많고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심지어 귀신들도 믿고 자기들에게 닥칠 운명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세례를 받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답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도 그 사건 자체가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줄 수는 없습니다. 참된 구원은 여러분을 건져내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드러나고 나타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령님이 여러분을 건지신 겁니다. 우리는 지금 구원의 여러 측면 중에서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포괄적으로 요약하는 진리로 건지심의 개념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우리 구원에는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요소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칭의, 화목, 양자됨, 구속, 이런 것들은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구원에는 법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분, 상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지위에 관한 것이죠. 반면에 우리 구원에는 실제로 드러나고 나타나고 경험할 수 있는 요소들도 있습니다. 중생, 새 생명, 거듭남, 회심, 성화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살펴보기 시작하면, 모두가 ‘건지심’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하나의 사건을 근거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건지심을 받았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한 영적 영역에서 다른 영적 영역으로, 한 생명의 원리에서 다른 생명의 원리로 옮겨지는 겁니다. 건지심이 실제로 그의 삶에서 일어납니다. 첫 번째로 무엇을 말했습니까? 주님께 속한 사람들은 오류에서 진리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 내용에 대한 설교를 한 번 했고요, 여러분이 기억하시듯 지난 시간에 거기에 각주를 달듯이 보충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각주에 또 각주를 달고, 그 각주에 또 각주를 달아야 될 것 같습니다. 오늘 같은 시대에는 이 문제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골로새서로 잠시 가서 골로새서 1장 12절과 13절을 보겠습니다. 이 부분은 간단히 살펴본 다음에, 여기에 관련된 내용을 말씀드리고 두 번째 요점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골로새서 1장을 보십시오. 저는 지금 이 문제에 대해 제 마음에 있는 것을 정말 다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인내심을 발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입니다. 골로새서 1장 12절입니다.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 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가족인 우리는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격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격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만한 자격이 우리에게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격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 그렇게 하셨는지 알고 계시죠?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적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빛은 진리를 가리키는 비유입니다. 그리고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우리를… 건져내사.” 바로 여기에 ‘건지심’ 개념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여기서 흑암은 오류를 가리키는 비유입니다. 건지심의 첫 번째 범주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인 사람들은 오류에서 진리로 건짐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십시오.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어떤 진리입니까? 우리가 복음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진리입니다. 거짓 교리에서 참된 교리로,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건짐을 받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참된 복음 안으로 건지심을 받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이 말하듯이 다른 복음은 어떤 것이든 저주를 받게 합니다. 요한이서 9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에 관한 참된 교훈 안에 굳게 자리 잡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선교에 관한 논의에서 이런 말을 흔히 합니다. “저 멀리 복음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사람들도 주님께서 어떻게든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참된 복음을 알지 못하면서 구원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구원에 이르는 관계를 맺는 사람도 없습니다.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그 교훈 안에 거하는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두 모십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제가 계속 말씀드렸죠. 오류에서 진리로 건지심을 받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 안에 구원의 교리가 온전히, 분명하게 계시되어 있다는 진리를 믿습니다.

진리란 참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고, 제2위격이신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통해 성육신하심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 없는 삶을 사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고, 실제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하늘로 승천하셨고,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지금은 아버지의 오른편에서 아버지와 함께 다스리시고,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하고 계십니다. 언젠가 다시 오셔서 영광 가운데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복된 소식인 진리의 기초를 이루는 핵심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물론 이 모든 진리가 지닌 의미와 세부적인 내용까지 전부 이해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믿고,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합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실 때, 오류에서 진리로 옮기십니다. 성령님은 죄인으로 하여금 진리를 이해하고 믿게 하시고,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진리에 전적으로 헌신하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골로새서 1장은 본질적으로 성도들이 빛 가운데 거한다고 말하면서, 거의 같은 의미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고 말합니다. 빛 가운데 있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에 있는 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 가운데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진리를 안다는 것은 진리이신 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이제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는 연결 고리가 될 본문을 보겠습니다. 로마서 10장입니다. 로마서 10장을 조금 살펴본 다음에 로마서 6장으로 가겠습니다. 여러분 반드시 이해하셔야 합니다. 제가 한번은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순복음 기업인 연합(Full Gospel Business Men’s)’ 오찬 모임에 강사로 초청받은 적이 있습니다. 대단히 은사주의적인 단체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죠. 저를 초청하면서 ‘방언의 은사’에 관해 설교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단체의 한 분이 제가 방언을 받았고 이제는 그 은사를 지지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를 강사로 초청한 거죠. 아마 이런 것을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존 맥아더 목사가 와서 마침내 이 위대한 방언의 은사를 체험하게 된 이야기를 하겠구나. 성령을 받은 자신의 간증을 들려주겠구나.” 반면에 저는 그분들이 성경이 방언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를 알고 싶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를 초청해서 이 주제를 다루게 하다니, 참 관대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곳에 가서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방언이 무엇인지, 또 제가 왜 성경을 근거로 방언의 은사가 중단되었다고 믿는지를 말했습니다. 설교 중에 강단에서 끌려내려간 것은 그때가 유일합니다. 정말 말 그대로 제 몸을 붙잡아서 강단에서 끌어내렸습니다. 제가 하는 말에 너무나 화가 났던 것이죠. 저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을 하라고 초청받은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강단으로 나와서는 저를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밤중에 강력한 전율을 받아 방언이 터져 나오게 해 주소서.”

정말입니다. 저를 위해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 후에 일어난 일인데, 저는 그 단체의 한 지도자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모임에 참여하신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9년 되었습니다.” “방언 이야기 말고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근거로 당신을 받아들여 천국에 들어가게 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분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죽고 나면 긴 계단이 보일 것인데 계단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문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들여보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지요.” 복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합니다. 방언 문제에는 그렇게 흥분하면서도 사람을 구원하는 진리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이런 모습을 자주 봅니다. 로마서 10장을 보십시오. 이보다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9절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여기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믿지 않는다면, 예수님이 주님이시고 하나님이시고 주권적인 주인이시고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예수님이 실제로 무덤에서 부활하셨다는 사실과 그 모든 함의를 믿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속죄에 만족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하시며 높임을 받으신 구원자이십니다. 이것을 믿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여기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12절은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고 말합니다. 13절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지만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복음의 핵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14절은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라고 합니다. 아무도 진리를 전해 주지 않고, 믿어야 할 내용을 아무도 알려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듣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 가지 않으면 들을 수도 없고, 누군가 보내지 않으면 아무도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요점입니다. 우리가 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알지 못하고, 오류에서 진리로 건지심을 받지 않은 사람이 회심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진리이고,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을 통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구원에 관한 진리입니다. 그래서 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복음을 전하러 가는 사람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가지 않으면 사람들이 들을 수 없고,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고, 믿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이죠. 17절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라고 합니다. 믿음은 직관으로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깁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깁니다. 더 나은 사본에는 실제로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 복음을 듣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전에 말씀드렸듯이 이 사실을 분명히 믿으십시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빛, 다시 말해서 양심의 빛과 이성의 빛에 따라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복음의 빛이 이르게 하실 겁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마음을 준비시키신 사람들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하나님께는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이제 로마서 6장을 보겠습니다. 지난주에 이 구절을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습니다. 로마서 6장 17절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을 해 봅시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여기서 잠깐 멈추겠습니다. 종이란 무엇입니까? 이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종은 주인 밑에서 철저히 복종하며 섬기는 사람입니다.

종이라고 하면 자신의 의지나 생각이나 의견이나 계획이나 목적이나 미래가 자기 손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종은 그저 명령받은 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명령하는 권위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에 대해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말 그대로 죄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죄가 우리의 주인이었습니다. 물론 때때로 인간적인 차원에서 선하고 친절한 일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인간적으로 고귀해 보이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사랑을 표현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노인들을 돌보고, 자선단체에 기부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지배하는 힘과 권세는 죄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실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엄청난 변화입니다. 대단히 크고 극적인 변화입니다. 이제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닙니다. 이제는 의의 종입니다. 여러분의 주인은 의입니다. 여러분을 움직이는 힘도 의입니다. 전에는 죄에서 만족을 찾았고, 죄에서 즐거움을 찾았고, 죄에서 기쁨을 찾았고, 죄에서 성취감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의에서 즐거움을 찾고, 의에서 만족을 찾고, 의에서 기쁨을 찾고, 의에서 성취감을 찾습니다. 전에는 옳은 일을 싫어하고 잘못된 일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잘못된 일을 싫어하고 옳은 일을 좋아합니다. 엄청난 변화입니다.

정말 엄청난 변화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17절 중간을 보십시오. 반드시 보셔야 합니다. “마음으로 순종하여.” 외적인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규칙을 받고 이제 그것을 이를 악물고 죽을 힘을 다해 지키려고 애쓰게 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겁니다.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에 순종하게 되었습니까? 잘 보십시오. 여러분이 건지심을 받아 들어가게 된 바로 그 ‘튀폰 디다케스(tupon didachēs)’에 순종하게 된 겁니다. 여기에 또다시 ‘건지심’이라는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는 ‘파라디도미(paradidōmi)’입니다. 건네주다, 넘겨주다, 다른 곳으로 옮기다,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에게 변화가 일어난 이유, 여러분이 죄의 종에서 의의 종이 된 이유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이 오류에서 건지심을 받아 그 ‘튀폰 디다케스(tupon didachēs)’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튀폰(tupon)’은 틀, 구조, 형태, 일정한 체계를 뜻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진리 체계, 가르침의 체계, 일련의 교리와 진리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그 진리의 체계 안으로 옮겨져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게 된 겁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을 보여 주는 첫 번째 표지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구원하는 진리의 체계 안으로 옮겨진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복음을 설명하지도 못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참된 복음을 믿지 않는다면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주의자들도 받아들일 여지를 두어야 합니다.”

“그 사람들도 우리의 그리스도인 형제들입니다. 자유주의자들도 받아들일 여지를 두어야 하고, 가톨릭 신자들도 받아들일 여지를 두어야 하고,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도 받아들일 여지를 두어야 합니다. 또 계단을 올라가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도 받아들여야 하고,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역사하시고 이런 말씀도 하시고 저런 말씀도 하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모두 우리의 그리스도인 형제들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그들이 그리스도인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주면 안 됩니다. 저는 그런 속임수에 가담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이루는 그 진리의 체계 안으로 건지심을 받아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게 된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 드디어 두 번째 요점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오늘은 간단하게 소개만 하겠습니다. 두 번째 요점입니다. 첫 번째는 진리의 성령님이 우리를 오류에서 진리로 건지셨다는 것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두 번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죄에서 의로 건지셨습니다. 다시 1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그리고 18절은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사실입니다.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 남편이 정말 형편없이 행동하고 있어요. 교회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다른 여자와 외도까지 합니다. 하지만 저는 남편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교회에도 다녔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를 했기 때문이죠.” 그러면 제가 이렇게 말합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짓기 원하고, 죄에서 가장 큰 만족감과 성취감을 얻는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새로운 생명의 원리가 있습니다. 새로운 주인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의의 종입니다. 완전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새로운 원리가 생겼고, 그 새로운 원리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낸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신학자 중의 한 사람이 책을 쓰면서, 사람이 회심해도 삶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정말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회심은 삶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습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바꿉니다. 에스겔 36장을 보겠습니다. 건지심을 통해 우리 존재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 핵심 원리를 이제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참고로 <뉴 킹 제임스 성경(New King James Version)>은 로마서 6장 17절을 ‘건지심을 받았다(delivered)’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아주 훌륭하게 번역했습니다. 이제 에스겔 36장을 보십시오. 새 언약에 관한 중요한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새 언약은 바로 구원의 언약입니다.

이 새 언약, 다시 말해 구원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에 주목하십시오. 25절입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내가 너희를 구원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겁니까?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놀라운 말씀입니다. 씻으십니다. 깨끗하게 하십니다. 신약에서 말하는 중생의 씻음과 의미가 같습니다. 말씀의 물로 씻는 것과 의미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모든 더러운 것과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6절입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여기서 에스겔은 생각과 느낌과 감정과 태도가 자리 잡고 있는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중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적인 성품을 바꾸시고, 내적인 본성을 바꾸시고, 내적인 원리를 바꾸시고, 내적인 성향을 바꾸십니다. 새 마음을 주십니다. 새 영을 우리 속에 두십니다. 의에 대해 아무런 감각도 갖지 못했던 그 굳은 마음을 제거하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그리고 27절에서는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가능한 모든 표현을 동원하셔서 같은 사실을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너희의 내면을 완전히 바꾸겠다.” 계속 27절입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절 하반절을 보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에서 구원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될 때 진리의 성령께서 여러분을 오류에서 진리로 옮기십니다. 거룩하신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죄에서 의로, 악에서 덕으로 옮기십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말합니다. 죄의 권세, 죄의 지배가 깨지고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다시 잠시 로마서 6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와 관련된 성경 말씀은 너무나 많습니다.

19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그러니까 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종이라는 것이 이해하기 쉬운 비유이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너희가 영적인 진리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니, 이해할 수 있는 종이라는 개념에 영적인 진리를 연결해서 설명하겠다는 말입니다.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너희가 가진 기능 전부가 그랬다. 너희의 마음과 사고방식, 목소리와 말, 몸을 비롯한 모든 것을 부정과 불법에 내어 주어서 더 큰 불법에 이르렀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결과만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결과가 달라졌을 뿐 아니라, 살아가는 삶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죄의 종이었던 사람이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저는 로마서 11장 말씀이 정말 좋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건지시는 이가 오시면 죄를 제거하십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 14절은 죄가 더 이상 여러분을 주관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죄는 더 이상 여러분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로마서 6장 4절로 돌아가 보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죽으심 안에서 장사되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부활 안에서 일으킴을 받아 이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과 같은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저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갈망하는 것이 달라졌고, 제가 사랑하는 것이 달라졌고, 저의 욕구가 달라졌습니다.

저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높여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성령의 성전인 만큼 하나님의 성령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사람들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고 담대하게 드러내고 싶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갈망은 본성적으로는 생기지 않습니다. 회심하지 않은 자연인으로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일들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미련해 보입니다. 완전히 눈이 멀었고, 완전히 죽었고, 그저 죄가 이끄는 길을 따라가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합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부모님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제 아이가 기도했던 때를 기억해요. 그때 구원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직 잘못된 일만 하려고 하면서 저런 삶을 살고 있어요.”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아이의 성품이 드러나는 겁니다. 아이의 본성이 본래의 방식대로 행동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죄를 지으면서 “나는 이게 싫다. 너무나 괴롭다. 나는 이것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면,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로마서 7장처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삶 속에 거룩함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고, 옳은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 사람은 천국을 향해 가고 있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31장 33절에도 언약에 관한 말씀이 하나 더 나오는데, 굳이 찾아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같은 내용입니다. 예레미야 31장은 새 언약에 관한 대표적인 본문입니다. 방금 언약에 관한 말씀이라고 했는데, 정확히 말하면 새 언약에 관한 대표적인 본문입니다. 들어 보십시오. 예레미야 31장 33절입니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온전히 마음을 쏟고, 그들도 나에게 온전히 마음을 쏟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외적인 율법으로 억지로 붙들어 둘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이 마음 전체에 새겨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소원이고, 갈망이고, 기쁨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아침에 이곳에 오셔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찬양했습니다. “그 무엇보다 예수님을 원합니다(I’d Rather Have Jesus)”, 이렇게 찬양할 때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그 찬양이 여러분의 마음에서도 울려 나왔습니까? “그래, 바로 이것이 내 마음이야. 하나님, 예수님이 제 안에 계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그런 마음이 드셨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믿는 자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 진리에 동의하고 합당하게 반응하게 하신 겁니다. 성화는 칭의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건지심이란 죄에서 건짐을 받아 의로 옮겨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관점 전체가 완전히 바뀌고 전혀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5절은 참으로 놀라운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도 저는 정말 좋아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단지 법적인 의미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법적으로 죄에서 풀려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로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3장 3절은 “우리가 곧 할례파라”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게 신자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기뻐하십니까?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십니까? 육체를 신뢰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말씀에 순종하기를 갈망하십니까? 바로 이런 것들이 새 생명을 얻었다는 증거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을 보십시오. 8절과 9절은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합니다. 10절은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말합니다. 야고보도 야고보서 2장에서 같은 사실을 말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겁니다. 삶이 변화되었다는 증거를 통해 우리는 그 믿음이 참되고 살아 있는 믿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은 많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5절도 생각납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그런 외적인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 지음을 받은 겁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죄와 의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입니다. 살펴볼 수 있는 말씀이 거의 끝이 없을 정도로 많지만,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입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택하사,” 택하심입니다. “처음부터 구원을 받게 하심이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됨이니.” 보십시오. 바로 여기에 제가 말씀드리려고 했던 두 가지 요점이 모두 나옵니다.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여기서는 두 번째로 언급되지만, 첫 번째 건지심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거룩하게 하셔야 합니다. 거룩하게 하심, 다시 말해서 성화란 분리를 뜻합니다. 성화라는 말은 분리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분리입니다. 여러분은 죄에서 건지심을 받아 의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죄에서 분리되고 진리를 믿음으로 나타납니다. 두 가지 중요한 요점입니다. 성경은 이 점에서 너무나 일관되게 말합니다. 참된 복음을 믿지 않고, 거룩함을 갈망하지 않고, 의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옳은 것을 사랑하지 않고, 잘못된 것을 깊이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여러분이 건지심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정말 그리스도인인지 판단할 때 단순히 그 사람의 말만 보면 안 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주여, 주여”라고 말할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에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오직 삶을 보고 그 열매를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너희는 불법을 행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게 속한 자들이 아니다. 너희가 무엇을 주장하든 상관없다. 너희는 불법을 행한다. 너희는 내게 속하지 않았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해도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너희의 삶을 보라. 불법을 행한다. 우리는 누가 그리스도인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삶에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건지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의 표현대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건짐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류와 죄에서 분리되어 진리와 의로 옮겨졌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누가 참 그리스도인인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다고요? 그 답이 바로 여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믿으며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갑니다. 다음 시간에 더 살펴보겠습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이 복된 아침 주님께 나아갑니다. 이전에도 간구했듯이 제가 이 진리를 지나치게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게 하시고, 너무 많이 말하지도 너무 적게 말하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 사랑하는 성도들이 이 진리를 이해하는 데 어떤 식으로도 제한을 받지 않게 하면서도 같은 요점을 지나치게 되풀이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이 문제가 제 마음을 얼마나 강하게 사로잡고 있는지 주님께서 아십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큰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혼란스러울 것이 전혀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저 저의 의견일 뿐이라는 말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정확하게 보여 주는 증거이죠.

저는 저 자신의 의견에도 다른 누구의 의견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진리를 원합니다. 주께서 진리를 너무나 분명하게 밝혀 주셨기에 우리에게 그 진리에 대한 책임을 물으셨습니다. 주님은 진리를 모호하게 감추어 놓지 않으셨습니다. 진리는 성경 전체에 너무나 분명하고 풍성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관계를 맺으려면 진리를 아는 데 이르러야 하고, 죄에서 의로 건지심을 받아야 합니다. 어둠의 나라, 어둠의 권세는 오류의 영역이자 불의의 영역입니다. 빛의 나라,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는 진리의 영역이며 거룩함의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속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진리로 거룩함으로 건지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자신의 삶과 주님과의 관계를 정직하게 살펴보게 하시고, 혹시라도 우리가 실제로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면, 영광스러운 진리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죄에서 의로 건짐받게 해 달라고 부르짖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를 사용하셔서 수많은 사람에게 진리를 전하게 하옵소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너무나 심각하게 혼란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진리의 사람이 되고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을 대할 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이해하고 믿고 받아들이며 사랑하는 모습이 없고, 옳은 것을 향한 열정과 사랑이 없고, 선과 거룩함에서 모든 만족을 찾으려는 갈망도 없다면, 그들의 참된 영적 상태를 드러내도록 우리가 돕게 하시고, 참된 믿음과 회개로 초대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그렇게 사용하여 주옵소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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