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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창조 다섯째 날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1장 20절부터 23절, 창세기 1장 20절부터 23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성경이 말하는 창조의 다섯째 날입니다. 우리는 1주일 간의 창조를 하루하루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말씀을 깨닫고 있습니다. 제가 요즘 창조와 관련된 자료들을 계속해서 읽고 있는데, 읽어도 읽어도 자료가 줄지가 않습니다. 이런 류의 시리즈를 시작하면 늘 그렇듯이 저를 도와주려는 분들이 책도 보내주시고, 이메일로, 또 팩스로 인터넷에 있는 수많은 자료들을 보내주셔서 제 서재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제가 읽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읽고 있는데, 읽을수록 더욱 흥미롭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깨달은 것들을 나누고 싶은 마음도 커집니다.

관련 자료들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깨닫는 사실이 있습니다. 저는 평생 과학을 깊이 있게 공부해본 적이 없습니다. 대학 시절에도 필수 과목만 겨우 들었습니다. 그마저도 대부분을 이미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창조 세계의 놀라운 다양성과 복잡성을 과학적으로 접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에 새겨진 두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다양성과 복잡성입니다. 창조 질서 안에 드러나는 다양성과 복잡성은 하나님의 지혜가 얼마나 크고 광대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창조를 조금만 깊이 생각하며 살펴보아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얼마나 광대한지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놀라운 점은, 하나님을 부정하려는 진화론자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얼마나 어리석고 절망적인 결론을 내리는지를 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1996년 12월, 진화론자이자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Carl Sagan)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마도 당대에 가장 잘 알려진 천문학자였을 겁니다. 세이건은 삶이 그저 우연히 생겨났다는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공허와 절망으로 삶을 마무리했습니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세이건은 테드 코펠(Ted Koppel)과 텔레비전 인터뷰를 했습니다. 코펠은 세이건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평생을 천문학자로서 과학과 우주를 연구하며 사셨는데, 혹시 세상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라고 말이죠. 그러자 세이건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는 암석과 금속 덩어리 위에 살면서 지극히 평범한 별을 돌고 있습니다. 그 별은 우리 은하를 이루는 약 4천억 개의 별 중 하나이고, 또 우리 은하는 수십억 개의 다른 은하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우주는 아마도 수많은, 어쩌면 무한한 수의 다른 우주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세이건은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하나님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가장 뛰어난 진화론자도 단지 우주가 존재한다는 사실밖에 모릅니다.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왜 존재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창조주가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우주의 모든 것은 하나님, 창조주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심지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론 우주 뒤에는 거대한 지성이 존재한다. 이를 믿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러나 이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을 결코 알 수 없다.” 인본주의적 진화론자는 눈앞에 분명히 드러난 것을 똑바로 보기를 거부하고, 자신을 알리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거부합니다.

자, 이제 창조 질서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복잡성과 다양성은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이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차원의 능력 말고는 다른 어떤 설명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저는 복잡성과 다양성을 드러내는 창조 질서 중에서 몇 가지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어떤 새들은 별자리를 따라 길을 찾아 이동합니다. 그런데 그런 방법을 어떻게 아는 걸까요? 알에서 갓 부화한 새들을 하늘이 전혀 보이지 않는 건물 안에서 키우다가, 가본 적 없는 지역의 별자리를 보여주면 그 방향을 향해서 고향을 찾아 날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나방도 우리처럼 귀가 두 개 있습니다. 그런데 나방의 귀 안쪽에 작은 진드기가 삽니다. 흥미로운 것은 진드기가 항상 나방의 한쪽 귀에만 산다는 사실입니다. 두 귀에 모두 기생하면 나방이 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한쪽 귀에서만 삽니다. 도대체 진드기들은 어떻게 한쪽 귀에 이미 다른 진드기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걸까요? 또 아주 신기한 폭탄벌레라는 곤충이 있습니다. 이 벌레는 몸 안에 두 가지 화학 물질을 가지고 있는데, 발사가 될 때에 몸 밖에서 서로 섞여서 폭발을 일으켜서 적의 얼굴 앞에서 터집니다. 그래서 폭탄벌레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화학 물질은 벌레의 몸속에서는 절대로 섞이지 않기 때문에 몸 안에서는 폭발하지 않습니다. 만일 이 벌레가 진화했다면 어떻게 폭발물질을 몸에 분리된 채로 저장할 수 있었을까요?

캐나다에 있는 앨버타 대학교(The University of Alberta)는 온대 기후에서 평균 천 8백개의 폭풍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고, 이 폭풍들이 무려 13억 마력의 에너지를 소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엄청난 힘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캐나다의 한 물리학자는 약 2만 6천 제곱킬로미터의 지역에 10센티미터의 비가 내리려면, 그만큼의 물을 증발시키기 위해서 석탄 6억 4천만 톤을 태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수증기를 다시 냉각시켜서 구름으로 모으려면 24시간 내내 100일 동안 8억 마력의 냉각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태양의 막대한 힘으로 물을 증발시키시고, 하늘에서 냉각시키시고, 다시 비로 내리게 하십니다. 미네소타의 한 농부는 연간 강수량이 60센티미터라고 할 때, 그 과정으로 인해서 매 1만 제곱미터당 약 100만 리터의 물을 아무 비용 없이 공급받고 있습니다. 이 모든 힘이 어디에서 옵니까?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 따르면 곤충의 종이 1천만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 중에 개미의 종류는 2천 5백개나 된다고 합니다. 개미 한 군단은 1억 마리 정도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놀라운 번식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미국의 전체 새를 50억 마리로 추산했습니다. 청둥오리는 시속 96킬로미터로 날 수 있고, 독수리는 시속 160킬로미터로 날 수 있고, 매는 시속 290킬로미터로 급강하할 수 있습니다. 또 대구는 알을 9백만 개나 낳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청어는 7만 개밖에 낳지 못한답니다. 7만 개도 충분히 놀랍지만요. 그렇죠? 알을 9백만 개나 낳는다뇨. 대구 9백만 마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국에 피시앤칩스 가게가 많은가 봅니다. 대구가 떨어질 리가 없잖아요.

둘레가 약 4만 킬로미터이고, 무게는 6,586섹스틸리언 톤, 그러니까 6.586 곱하기 10의 27승 킬로그램인 지구는, 허공에 매달린 채로 시속 1,600킬로미터의 속도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면서 자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구가 움직여도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겁니다. 동시에 지구는 자전하면서 태양 주위를 시속 1,600킬로미터로 9억 3천만 킬로미터의 궤도를 공전하고 있습니다. 이 공전하는 지구가 완벽한 각도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계절이 생기는 겁니다. 계절은 곡식이 자라게 해서 인류를 먹여 살립니다. 혜성 머리 부분의 길이는 1만 6천 킬로미터에서 160만 킬로미터까지이고, 꼬리는 1억 6천만 킬로미터에 이릅니다. 초당 560킬로미터의 속도로 움직입니다. 여러분의 심장은 주먹만 한 크기이고 무게는 200그램도 안 되지만 하루에 6천 8백리터 이상의 피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12시간 동안 59톤을 들어 올릴 만한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태양은 매초마다 4백만 톤의 물질을 태워 없앱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제 아주 작은 원자를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알지만 오늘날에도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원자는 너무 작아서 세 개의 원자가 모여야만 물 분자 하나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만일 물 한 방울 속에 있는 모든 물 분자를 꺼내서 각각을 모래 알갱이 크기로 불려 본다고 한번 생각해 봅시다. 물 한 방울 속의 모든 분자를 모래 알갱이 크기로 불리면, 그 모래 두께가 30센티미터, 너비 800미터의 도로를 깔 수 있다고 합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까지 가는 거리입니다. 물 한 방울 속에 이렇게 많은 수의 분자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분자에는 세 개의 원자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원자의 대부분은 빈 공간입니다. 원자 속의 실제 물질은 전체 부피의 1조분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원자는 바깥쪽 전자 궤도에서만 결합합니다. 물질이 단단하게 느껴지는 것은 원자 내부의 운동 에너지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사실 꽉 차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의 대부분이 빈 공간입니다. 만약에 사람의 빈 공간을 모두 짜내버리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아십니까? 평균적인 사람의 모든 빈 공간을 다 짜내면 부피가 얼마나 되는지 아시나요? 바늘 위에서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고작 1억분의 1 입방인치, 그러니까 1.64 곱하기 10의 마이너스 13승 세제곱미터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누군가 와서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한다면,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여러분이 벌써 다이어트를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거 어떻게 잘 활용해 볼 수 없을까?’하고 말이죠.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단 1입방인치 분량의 물질, 약 16.4밀리리터 분량의 실제 물질만 모아도 무려 4억 5천만 톤이나 된다는 사실입니다. 또 물 한 숟가락 안에는 원자가 백만억조 개 있습니다. 그러니까 10의 24승 개 들어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놀랍지 않습니까?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생겨났다고요? 말도 안 됩니다.

이제 ‘생명의 바퀴’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오전 예배 때 제가 “누가 바퀴를 발명했는지 혹시 아십니까?”라고 물어보니까, 한 분이 “마야인들이요.”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마야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바퀴’를 만드셨습니다. 여러분 안에도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생명의 바퀴’는 과학자들이 ATP 합성효소라고 부르는 효소 속에 있습니다. 이 구조는 얼마 전인 1997년에 밝혀졌는데, 이 발견으로 미국의 폴 보이어(Paul Boyer)와 영국의 존 워커(John Walker)라는 두 과학자가 공동으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이 효소 안에 있는 바퀴는 초당 약 100번 회전합니다. 바늘 머리보다 20만 배나 작은 이 초소형 모터는 초당 100번을 회전합니다. 여러분 몸의 모든 세포, 그리고 모든 생명체의 모든 세포 안에는 이런 모터들이 수천 개씩 들어 있습니다. 누군가는 인간의 몸 안에 약 1경 개의 작은 모터가 있다고 추정합니다. 그렇다면 이 작은 모터가 무슨 일을 하는 걸까요?

ATP 모터의 역할은 아데노신 이인산, ADP와 인산으로부터 아데노신 삼인산, ATP를 합성하는 것인데 이 합성에는 에너지 투입이 필요합니다. ATP는 다시 ADP로 분해되면서 다른 세포 안의 화학적 과정에 결합을 하면서 반응에 필요한 에너지를 방출합니다. 그러니까 에너지는 방향을 가지고 전달됩니다. 산물은 끊임없이, 끊임없이, 그 작은 모터 안에서 재활용됩니다. 여러분은 이런 작은 모터가 10경 개나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워커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자기 몸무게에 해당하는 ATP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 작은 모터들은 매일 여러분의 몸무게에 해당하는 ATP를 재생산해야 합니다. 우리는 생각하든 걷든 무엇을 하든지 그만큼의 ATP를 돌려 쓰면서 에너지를 순환시키고 있습니다. 게으른 하루를 보내면 자기 몸무게의 절반 정도만 쓰고, 힘들게 일하는 날에는 하루에 1톤에 달하는 ATP가 재활용됩니다. 보이어 교수가 1993년에 간접적인 방법으로 ATP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추론했지만, 1994년에 워커 박사가 처음으로 그 모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제시했습니다. X선과 전자현미경을 사용해서 원자 수준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1997년에 한 일본 학자가 전자현미경에 작은 형광 필라멘트를 붙여서 그 모터가 현미경 아래에서 실제로 회전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이 극도로 정교한 아주 작은 회전 모터들은 정말 놀랍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각 모터는 31개의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바늘 머리보다 20만 배나 더 작은 크기 안에 들어 있습니다. 이 31개의 단백질은 수천 개의 아미노산이 정교하게 배열되어서 만들어진 겁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더 놀라운 사실이 계속 이어집니다. 이 작은 기계들은 초당 약 100회 회전하면서 바퀴가 돌 때마다 여러분이 살아서 기능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순환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정말 놀랍다”라고 워커 박사는 말했습니다. “이 생명의 모터들이 우리 몸의 모든 세포 안에서,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세포 안에서 계속 돌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경이롭다.” 워커 박사의 말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 작은 바퀴 모터를 설계했습니까? 누가 에너지를 주었습니까?

시편 139편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제 친구 중의 한 명인 R.C. 스프로울(R.C. Sproul)은 신학자이면서 철학자입니다. 저는 스프로울의 신학도 높이 평가하지만 철학을 더 높이 평가합니다. 사실 꽤 재미있는 철학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너무 어리석게 보이게 만들어서 웃음을 참기 어려울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스프로울은 우주의 기원에 대해 오직 네 가지 선택지만 있다고 말했습니다. 네 가지입니다. 첫번째, 우주는 환상이다.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첫번째 선택지입니다. 두번째, 우주가 스스로를 창조했다. 세번째, 우주는 스스로 존재하며 영원하다. 네번째, 스스로 존재하는 누군가가 창조했다. 스프롤은 이 네 가지 이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말합니다. 존재하지 않거나, 스스로를 창조했거나, 항상 존재했거나, 누군가가 창조했거나, 이 네 가지뿐이라고 말이죠. 스프로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수십 년 동안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며 철학자, 신학자, 과학자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러나 이 네 가지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이론적 선택지를 찾을 수 없었다. 우리가 가진 건 이것들 뿐이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첫번째 선택지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반드시 배제해야 한다.” 첫번째 선택지는 ‘우주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라는 선택지였죠.

"첫째, 만일 우주가 존재하지 않는 거짓된 환상이라면 더 이상 환상이 아니다. 그러나 참된 환상이라면, 그 환상을 경험하는 어떤 존재나 무엇인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환상을 경험하는 것은 스스로를 만든 것이든,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든, 궁극적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든 셋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것이 환상일 수는 없다. 환상 이론을 제거할 수 있는 두번째 이유는, 만일 환상이 절대적이라고 가정한다면, 즉 환상을 경험하는 것을 포함하여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기원의 문제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면, 그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스스로를 만들었거나, 스스로 존재하거나, 스스로 존재하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자, 이제 두번째 선택지, 즉 우주가 스스로를 창조했다는 주장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이 주장은 모든 논리로 볼 때 명백히 거짓입니다. 모순되고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주장입니다. 스프로울의 말입니다. “본질적으로 자기 창조는 존재하기 전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해가 되십니까? 스스로를 창조하려면 먼저 존재해야만 스스로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계속 읽겠습니다. “자기 창조는 논리적, 이성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떤 것이 자기 자신을 창조하려면 이미 존재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일이죠. 고체, 액체, 기체도 불가능하고 원자나 아원자 입자도 불가능합니다. 빛도, 열도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하나님도 불가능합니다. 그 무엇도 스스로를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를 창조하려면 먼저 존재하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죠. 스프로울은 어떤 존재가 ‘자존적(self-existent)’일 수는 있지만 ‘자기 창조적(self-created)’일 수는 없다고 지적합니다. 과학자들이 “150억~200억 년 전에 우주가 스스로를 창조했다”고 말했을 때에 결국 뭐라고 말한 겁니까? 바로 ‘아무것도 없던 것이 폭발해서 어떤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자기 창조 이론을 유지하는 것은 철저하게 비이성적이고 모든 논리를 거부하는 일입니다. 그런 이론을 믿을 수는 있지만, 합리적인 이론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다음으로 세번째 선택지입니다. 우주가 지금 존재하는 그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 영원히 존재해 왔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저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라는 존재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주가 영원히 존재해 왔다면 어떻게 시간 속에서, 즉 그동안 한번도 없었던 생명 창조가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우주가 항상 존재해 왔다면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도 항상 존재해 왔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안의 모든 것이 항상 존재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저도 항상 존재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죠. 우리의 부모님들이 증명해 줄 수 있습니다. 태어난 때가 있으면서도 이전부터 항상 존재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동차, 시계, 의자 같은 것들도 특정한 시점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모두 불가능합니다. 우리에게는 단 하나의 가능성만이 남아 있습니다. 우주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어떤 분, 그러니까 항상 존재하신 지혜로우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물질은 스스로 자신을 만들 수 없습니다. 오직 영원부터 계셨던 하나님만이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주에 큰 격려를 받았습니다. CNN 보도에 따르면 미국인들 가운데 단 9퍼센트만이 생명이 순전히 우연으로 생겨났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참 좋은 소식 아닙니까? 그러나 이 수치를 뒤집어 보겠습니다. 미국인들 가운데 90퍼센트 이상이 하나님께서 창조에 관여하셨다고 믿지만, 하나님께서 창조의 방법으로 진화를 사용하셨다고 믿습니다. 제가 계속 말씀드리려는 것은 하나님께서 진화를 사용하시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진화는 어떻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절대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증거가 없는 겁니다.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죠. 진화론자들의 죄가 로마서 1장에 이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18절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진리는 분명합니다. 절대적으로 분명하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입니다. 그런데 진화론자들은 이 진리를 억누릅니다. 19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성을 통해, 논리를 통해, 인과관계를 통해 분명하게 보이셨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우리는 다른 그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습니다. 영원부터 스스로 존재하신 창조주가 계셨다는 것, 이것만이 유일하게 합리적인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이 결론을 거부하고 그 진리를 억누르는 사람들은 로마서 1장 20절이 말하듯이 “핑계할 수 없는 자”입니다. 핑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박사 학위며 온갖 논문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습니다. 피조물을 조물주,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깁니다. 피조물을 창조주로 만들었습니다. 생명이 스스로를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로마서 1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창조 자체를 숭배합니다. 창조를 생명의 힘,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내는 힘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것을 앞서 살펴보았습니다. 우주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습니까? 창세기 1장으로 다시 돌아가 보십시오. 우주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습니까? 창세기 1장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성경의 첫 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우주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참되고 무오하며 무류합니다. 창조의 진리는 분명합니다. 6일, 그러니까 24시간을 하루로 하는 저녁과 아침이라는 어둠과 빛의 기간으로 정의된 6일 동안 하나님께서 지금의 우주 전체를 창조하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창조가 약 6천 년에서 7천 년 전의 일이라는 것을 보여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지층은 어떻게 설명하느냐,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흔적들은 어떻게 설명하느냐고 저에게 묻습니다. 그에 대한 답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미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모습으로, 성숙한 상태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창조 후에 일어난 대홍수가 지구의 표면과 구조를 바꾸었습니다. 지형, 퇴적암, 화석, 이런 것들과 관련된 많은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제공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6일 동안 창조하셨다고 말입니다. 첫째 날에는 물질과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둘째 날에는 바다와 궁창을 창조하셨습니다. 셋째 날에는 땅과 식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넷째 날에는 광명체, 즉 달과 별과 해를 창조하셨습니다. 이제 다섯째 날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이미 읽어드린 대로, 이 날 하나님께서 바다와 하늘을 채울 모든 생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날에 하나님은 사람을 위한 보금자리를 완성하시고 최초의 생물을 만드셨습니다. 최초의 생물입니다. 20절에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처음으로 이 ‘생물’이라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식물에는 그런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식물은 어떤 의미에서는 생명체이기는 하지만, 의식이 있는 생명체는 아닙니다. 최초의 생물은 다섯째 날에 창조되었습니다. 자, 순서를 다시 기억해보면, 넷째 날이 첫째 날과 연결된 것처럼 다섯째 날은 둘째 날과 연결됩니다. 첫째 날에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셨고, 넷째 날에는 빛을 비추는 광명체들을 만드셨습니다. 둘째 날에는 바다와 하늘을 창조하셨고, 다섯째 날에는 그 바다와 하늘을 생물들로 채우셨습니다.

셋째 날에는 하나님이 땅과 그 땅의 식물을 창조하셨고, 여섯째 날에는 땅에 거하며 땅의 식물을 먹는 동물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이처럼 창조의 평행 구조가 일관되게 이어집니다. 둘째 날에는 바다와 하늘을 창조하셨고, 다섯째 날에는 바다와 하늘을 채울 존재들을 창조하셨습니다. 물론 바다는 셋째 날에 그 최종 형태를 갖추었지만, 둘째 날에 이미 창조되었습니다. 이제 본문을 살펴보면, 다섯째 날의 창조에는 두 개의 단계가 있습니다. 첫번째 단계는 의식이 있는 생물의 창조이고, 두번째는 번식하는 생물의 창조입니다. 본문에는 두 가지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의식이 있는 생명, 곧 환경에 반응하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생물입니다. 식물은 그렇지 않죠. 그리고 두번째는 번식하는 생물입니다. 20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여기서 잠시 멈추죠. 창조의 방식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말씀으로 존재하게 하십니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말씀으로 존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그러니까 하나님은 먼저 물들을 채우셨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파로노마시아(paronomasia)’라는 문학적 장치가 하나 사용되었습니다.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를 히브리어로 보면 “물이 번성하여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입니다. 11절에도 같은 구조가 나오는데,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라는 말씀은, 실제로는 “땅이 식물을 내서 식물로 가득하게 하라”라는 식으로 쓰여 있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라는 것은 “물이 번성하여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라는 구조가 반복됩니다. ‘번성하다’라는 동사가 선택된 이유는 바로 움직임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생물의 특징은 움직임입니다. 식물은 이동하지 않기 때문에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생물은 움직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바다를 가득 채우시는 모습이 동사 ‘번성하다’로 표현된 것입니다. 수많은 생물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서로 부딪히고 교차하는 모습을 묘사한 겁니다. 유대인 주석가 카수토(Cassuto)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히브리어 ‘셰레츠(sherets)’라는 어근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움직임인데, 특별히 수많은 생물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서로 부딪히고 사방으로 교차하는 움직임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황량하고 생명 없는 물 가운데, 바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움직이는 생명체가 가득 차게 하셨다. 물 가운데 끊임없이 번성하며 쉬지 않고 움직이는 생명체들이 태어나게 하셨다.”

바다는 이리저리 헤엄치는 온갖 생물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바다는 민물까지를 포함합니다. 지구상의 모든 물을 가리킵니다. ‘살아 있는’ 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네페쉬(nephesh)’라는 아주 익숙한 단어인데, 영혼이나 존재 혹은 생명을 뜻합니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생물은 스스로 움직이는 최초의 살아 있는 피조물입니다. 식물은 그런 의미에서 생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식물은 움직이지 못하고 의식도 없기 때문입니다. 생물은 의식이 있습니다. 다만 동물은 자의식이 없습니다. 의식은 있지만 스스로 자기를 인식하지는 못합니다. 자의식은 없는 의식적 존재입니다. 환경에 반응하지만 자기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단지 본능이라고 부르는 기제로 반응할 뿐입니다. 자의식이 없으므로 자신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인식하지 못합니다. 서로를 인식하지도 못합니다. 인격적이고 자의식이 있는 존재가 소통하는 방식으로 소통하지 않습니다. 단지 DNA 암호에 의해 완전히 통제받아서 종의 보존과 기능을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나님께서 설계하셨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동물은 ‘네페쉬(nephesh)’라는 단어로 식물과 구별됩니다. 네페쉬는 문자 그대로 ‘숨 쉬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숨 쉬는 것입니다.

이 존재들은 ‘와이바라(wayibārā)’입니다. 다시 말해 창조된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가 바로 ‘바라(bārā)’입니다. ‘창조하다’라는 뜻이죠. 특별하고 결정적인 사건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동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지금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의식 있는 생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 바다 속에서 무리를 이루면서 움직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수로 창조되었습니다. 여기서 잠시 멈추고 강조하고 싶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고기와 모든 해양 포유류와 바다에 사는 모든 동물들, 그러니까 물고기든 고래든, 바다 공룡이든, 장어든, 플랑크톤이든, 먹이사슬 어디에 속해 있든 간에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실 때에, 그 어떤 진화 과정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생물을 단 한 순간에 말씀으로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 순간, 같은 날에 모든 생물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종이 다른 종으로 변하고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진화하는 과정으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바다 생물은 바다를 가득 메우는 거대한 무리로 움직이도록 단번에 창조되었습니다. 20절 하반절에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그런데 새에게는 번성하여 날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번성이라고 할 만큼 많은 수가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오늘날에도 동일합니다. 오염이 심하지 않은 깊은 바다 속을 보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끝이 없을 정도로 생물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늘을 보면 새들은 훨씬 적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번성하여’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은 겁니다.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새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도록 허락하신 겁니다. 히브리어로는 문자 그대로 ‘하늘의 얼굴 위에’ 나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광경입니다. 왜냐하면 새들이 하늘 앞에서 날아다니는 것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마치 하늘이 끝없이 뻗어 있는 것처럼, 하늘이 하나님의 창조하신 영원의 무한한 공간까지 펼쳐져 있는 것처럼, 그 위대한 하늘의 광대한 공간이 배경인 겁니다. 그런데 지구를 나는 새들은 멀리 가지 않습니다. 우리 눈에는 그저 거대한 하늘의 표면을 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늘의 얼굴 앞에서, 그 뒤에 펼쳐진 위대한 하늘을 배경 삼아서 나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21절입니다.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영어 성경으로 보면 “큰 바다 괴물들”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왜 바다 짐승들, 괴물들을 하나님이 언급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채소와 나무를 창조하실 때는 사과나무나 참나무처럼 특정한 나무 이름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특정한 종류의 식물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왜 큰 바다 괴물들을 언급하셨을까요?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 날개 있는 모든 새라고만 말씀하셨는데, 왜 특별히 큰 바다 괴물을 언급하셨을까요? 바다에는 다른 것들도 많을 텐데, 왜 바다 괴물일까요? 저는 이 점이 참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히브리어로 ‘탄닌(tannin)’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유가 있습니다. 구약을 공부하다 보면 바다 생물에 관한 구절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리워야단(Leviathan)이 그 중의 하나입니다. 리워야단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거대하고 강력한 바다 괴물입니다. 욥기 41장에서 하나님이 욥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서 욥에게 “네가 어디 있었느냐? 내가 모든 것을 창조할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라고 물으신 후에, 41장에 와서는 이 리워야단을 언급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거대한 짐승을 악어의 한 종류라고 설명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런 종류가 아닙니다. 이 리워야단이 바다에 사는 어떤 공룡 같은 거대한 괴물을 가리킨다는 설명이 가장 유력합니다.

구약에는 도망하는 뱀, 꼬불꼬불한 뱀, 바다 뱀이 나옵니다. 욥기 7장 12절의 “바다 괴물”이 바로 바다 뱀입니다. 또 ‘라합’도 나오는데, 거대한 바다 짐승을 가리킵니다. 아마도 공룡 같은 거대한 바다 짐승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 큰 바다 짐승, 바다 괴물을 언급하셨을까요? 왜 굳이 말씀하셨을까요? 제가 그 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대 신화들, 예를 들어서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이스라엘 동쪽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과 가나안 땅에서도 마찬가지로, 항상 바다 괴물에 관한 기괴하고 복잡하게 꾸며낸 전설들이 있습니다. 고대의 이방인들은 신들을 바다 괴물로 여겼습니다. 심지어 블레셋 사람들도 다곤이라는 신을 섬겼는데 반은 사람이고 반은 물고기입니다. 옛사람들은 이런 거대하고 두려운 바다 괴물들을 신으로 여겼습니다. 신으로 숭배하면서 서사시를 써 내려갔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가릿(Ugaritic) 문학을 보면 바알의 적대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그 적대자들 중에 ‘모트’라는 ‘바다의 주’라고 불린 신이 있습니다. 거대한 바다 괴물로 묘사되었습니다. 이런 신화적 사고가 고대 세계 전반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바다 괴물을 신으로 여기면서 선한 신들과 대적하는 악한 신들로 묘사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바다 괴물을 참 하나님께 반역하는 거짓 신으로 여겼습니다.

이사야 27장 1절에는 가나안 문화 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바다의 신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바다 괴물의 형태를 취한 신들에 대한 가나안의 시와 전설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다 괴물은 곧 악의 원리,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바다의 큰 용, 바다의 큰 공룡 같은 괴물로 의인화되었습니다. 여러 구절들이 언급하듯이, 리워야단은 언제나 하나님의 큰 원수로 묘사되는 거대한 바다 괴물입니다. 마치 창조주를 대적해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신이나 초자연적인 힘으로 암시되곤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고대 서사시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하던 당시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던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분명히 이러한 우스꽝스럽고도 어리석은 이방 신화들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성령님께서 모세에게 감동을 주셔서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의 영감된 기록을 남기실 때에, “하나님이 큰 바다 괴물을 창조하셨다”라고 기록하게 된 겁니다.

바다 괴물은 거짓 신도 아니고, 거짓 신적 존재도 아니고, 악을 상징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땠습니까? 좋았습니다. 그 속에는 바다 괴물들도 포함됩니다. 그러니 더 이상 신화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구약은 그러한 어리석은 신화들에 대항하여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반박합니다. 하나님께서 큰 바다 괴물들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마치 토라, 모세오경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결코 바다 괴물들이 신화적인 악의 세력이나 살아계신 참 하나님께 대항하는 신적 존재나 반신반인의 신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다른 모든 것과 똑같은 피조물입니다. 창조주의 말씀에 의해 정해진 때와 정해진 자리에 창조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바다 괴물을 만드셨고, 보시면서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편 기자는 모든 피조물, 모든 생명에게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시편 148편 7절 말씀입니다. 이 한 구절이 바로 모든 기이한 신화를 사라지게 합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1장 21절에서 큰 바다 짐승과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또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지으셨습니다. 주목할 점은 ‘그 종류대로’라는 표현이 두 번 반복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물속의 모든 생물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다 지으셨습니다. 공중을 나는 모든 새들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지으셨습니다. 종이 다른 종으로 진화하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종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물론 한 종 안에서 다양성은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이 각 종에 넣으신 DNA, 그러니까 유전 정보의 범위를 벗어나서 다른 종으로 바뀌는 일은 없습니다.

헨리 모리스(Henry Morri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물의 첫 시작은 진화론자들이 믿듯이 태고의 바다 위에서 전기 방전에 반응하여 우연히 모여든 연약한 원형질 덩어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바다에 사는 모든 것, 하늘에 사는 모든 것, 하나님은 각자 그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그 어떤 진보도, 그 어떤 돌연변이도, 그 어떤 자연선택도 일어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모든 것이 좋았고, 우주 안에 죽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죽음은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죽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점에서 동물들이 서로를 잡아먹지 않았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 문제에 대해서 명확히 말하고 있지 않지만, 합리적인 추정입니다. 그래서 신학자 폰 라드(von Rad)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밖에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 유대인들이 꼭 들어야 할 말이었습니다. 바다 괴물이라는 상상의 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폰 라드는 이렇게 심오한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 밖에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 두려워할 대상은 오직 한 분 뿐입니다. 누굽니까? 신약이 말하듯이, 몸과 영혼을 함께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악은 창조 이후에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바다 괴물, 거대하고 엄청난 해양 생물들이 창조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온 피조 세계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고 원래는 좋았습니다. 그러니까 다섯째 날에는 먼저 의식 있는 생명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번식하는 생명이 창조되었습니다. 번식하는 생명 말입니다. 이 부분을 더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인간의 번식만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런 일을 이루셨는지 상상조차 어려운데, 모든 피조물로 확장해 보십시오. 가장 작고 미세한 생물로부터 가장 큰 육상 포유류, 해양 포유류, 공룡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에 번식하는 과정이 들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DNA 안에 암호화되어 있고, 모든 세포 안에 그 정보가 들어 있어서 각 생물이 각기 자기 종류대로 번식하게 된 겁니다. 바로 이것이 22절에서 말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이 바로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물론 새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지는 않지만 번식은 합니다. 반면 물고기들은 바다를 가득 채웁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구약에서 번식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바로 생식하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남자와 여자에게 주신 생육의 명령입니다. 창세기 9장에서 “하나님이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노아와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에게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세기 17장 16절에서 하나님은 사라를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20절에서는 이스마엘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라고 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곧 자손을 낳고 번식하라는 뜻입니다. 이 표현은 창세기 28장 3절, 35장 9절부터 11절, 48장 3절부터 4절에도 반복됩니다. 결국에 번식, 생식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하늘과 바다에 있는 이 피조물들에게 생육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복잡한 기계입니다. 제가 이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이런 복잡성을 발견한 과학자의 이름을 따서 불립니다. 그 과학자의 이름이 폰 노이만(von Neumann)이라서 ‘폰 노이만 기계’라고 부릅니다. 와일더 스미스는 이 ‘폰 노이만 기계’에 대해서 책을 한 권 썼습니다. 모든 살아 있는 유기체는 세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 자기 유지 기능입니다. 곧 자기 생명을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돌아가는 아주 작은 바퀴들 같은 것 말입니다. 자기 유지 기능입니다. 둘째, 자기 복구 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를 고쳐나가는 능력입니다. 세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복제 기능입니다. 자기 자신을 재생산하는 능력입니다. 폰 노이만 기계는 자기 유지, 자기 복구, 자기 복제의 기능을 가진 기계입니다. 그러나 인류는 지금까지도 과학으로 이러한 것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스스로 에너지를 유지하고 자기 생명을 유지하고, 스스로 고치고, 또 작은 컴퓨터를 만들어내는 컴퓨터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런 기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기능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한 무언가를 만든다고 해도, 그 기계는 계속해서 고장날 겁니다. 자기 복구 기능으로 복구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폰 노이만 기계를 만들 수 없지만, 존재하는 모든 세포는 바로 이 폰 노이만 기계처럼 작동합니다. 모든 세포 안의 작은 DNA 조각마다 이런 놀라운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생화학적 번식 체계가 심겨 있어서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속성에 대한 보증입니다. 번성에 대한 보증입니다. 진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각 종류는 번성할 것입니다. 각 종류는 자기 종류를 그대로 번식할 것입니다. 물론 종류 안에서 약간의 변이는 있겠지만 말이죠. 그리고 하나님은 새들에게 땅에 번성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땅에서’라고 하나요? 새는 날지 않습니까?” 물론 새는 날지만 공중에서 번식하지는 않습니다. 반드시 둥지로 가야 합니다. 거기서 짝짓기를 하고 알을 품고 새끼를 부화시키죠. 하나님이 이렇게 창조하셨습니다. 진화가 아닙니다. 바다의 생물과 공중의 새들은 모두 하루 만에 창조되었습니다.

모든 종, 가장 크고 전설적인 사나운 바다 괴물부터 가장 작은 해양 유기체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루 만에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모든 생물도 같은 날 그 종류대로 지어졌습니다.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공기를 가르고 바다를 헤엄치며 움직입니다. 그리고 의식이 있습니다. 자의식은 아니지만 의식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차를 몰고 길을 달릴 때 새들이 피하는 것을 보면 놀랍지 않습니까? 새들도 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의식은 아닙니다. 이제 인간이 살아갈 환경이 마련되었습니다. 이제 인간이 거할 준비가 된 것입니다. 여섯째 날에 창조의 절정이 등장합니다. 창조의 절정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오늘은 여기서 멈추겠지만, 정말 안타까운 것은 창조된 사람이 하나님 보기를 거부한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창조된 사람이 하나님 보기를 거부합니다. 양심이 알려주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거부하고, 진리를 억누르면서 더 깊은 어둠과 절망 속으로 빠져갑니다. 제가 가장 마음 아파하는 것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진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다시 말씀드립니다. 몇 주 전에도 말했지만, 창세기 1장에서 진화론은 찾을 수 없습니다. 진화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창세기 1장을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진화를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오직 진리를 억누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겠습니까? 왜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면서까지 하나님 없는 진화론을 높이고, 과학적인 신뢰를 얻기 위해 그렇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저는 창세기 1장부터 모두 믿습니다. 굳이 3장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도널드 반하우스(Donald Barnhouse)는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철을 제련해 망치 머리를 만들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다. 하나님은 나무를 자라게 하시고 사람이 그것을 베어내어 나무로 망치 손잡이를 만들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셨다. 그리고 사람이 망치와 못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은 손을 내밀어 그 못을 자신의 손에 박게 하시고, 십자가에 달리게 하셔서 사람들이 핑계할 수 없다는 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셨다.” 사람들은 창조주를 거부했습니다. 육신을 입고 오셨을 때 죽였습니다. 창조주를 죽였습니다. 창세기의 말씀 그대로를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믿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아닙니까? 창세기의 창조 기록을 믿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창세기를 믿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무엇을 하셨는지를 올바르게 드러내는 것 아닙니까? 창세기를 믿는 것이야말로 예배의 근원이 아닙니까? 그보다 못한 것은 모두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입니다. 물질이 스스로를 창조했다고 하거나, 이 복잡하고 다양한 우주가 단순히 우연의 산물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보다 우연에게 더 많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연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일 뿐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1장부터 하나님을 창조주로 예배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녁 이렇게 창조 다섯째 날을 살펴보게 하시고 이제 마지막 창조의 날, 하나님께서 모든 동물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 곧 창조의 왕관을 만드신 그날을 바라보며 기대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높여드립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아인슈타인은 틀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알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 가운데 하나님을 드러내셨을 뿐 아니라 양심 속에 새겨진 율법으로도 알게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성경의 계시를 통해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셨고, 하나님은 단지 광대하시고 불변하시며, 전지하시고, 편재하시고, 전능하시며, 무한한 능력과 지식을 가지신 분일 뿐 아니라, 한없는 복잡성과 한없는 아름다움과 질서를 가지신 분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끝이 없는 무한한 우주를 채우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죄인을 돌보시고 사랑하시며, 죄인을 대신하여 이 땅에 오셔서, 베들레헴이라는 이름 없는 작은 마을의 초라한 구유에 뉘이시고, 낮아지실 대로 낮아지셔서 죄인을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아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살아계신 참 하나님,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친구요 구속주이신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쁜지요.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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