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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사야 53장을 마지막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이 열 번째이자 마지막 시간인데요, 참 아쉽기만 합니다. 이사야 53장은 제 영혼에, 제 영적 DNA 안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물론 성경의 모든 구절이 다 그렇긴 하지만 말이죠. 그럼에도 이사야 53장은 여러 면에서 가장 중요한 장입니다. 지난 9주 동안 여러분에게 바로 이 점을 전해드리려 노력했습니다

세 달쯤 전에 이사야 53장 설교를 시작하면서 저는 이 장에 담긴 진리가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이고 중대하고 핵심적인 질문에 답을 제시해 줄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즉 이 53장이 가장 무게있고 진지하고 의미있는 질문에 답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 장이 답하는 질문은 다른 어떤 질문들보다도 중요합니다. 다른 모든 질문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다른 모든 질문들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이 장이 답하는 질문은 건강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부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성공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학벌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사회적 지위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종교나 정치, 도덕, 철학과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사야 53장이 답하는 질문은 그런 질문들을 모두 초월합니다. 사실 이 장이 답해주는 질문은 성경이 기록된 이유에 대한 질문입니다.

성경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53장은 이 질문에 가장 적절한 답을 제시합니다. 그렇다면 그 질문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죄인이 온전히 용서를 받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영원한 지옥에서 벗어나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지옥에서든 천국에서든 영원히 살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해답이 가장 절실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죄인이 온전히 용서를 받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영원한 지옥에서 벗어나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것은 가장 도덕적인 질문입니다. 가장 영적인 질문입니다. 가장 종교적인 질문입니다. 그 어떤 도덕 체계나 신비한 영성을 가진 단체, 심지어 종교계에서도 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오직 기독교만이 답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과 답을 성경 밖에서 찾으려 한다면, 성경을 다른 책들과 비슷한 책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그 질문에 답해 주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사야 53장에 가장 명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사야 53장이 구약의 정점인 것입니다. 구약의 에베레스트 산이라고도 할 수 있죠. 이사야 53장은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에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하며 이사야 53장이 ‘제5복음서’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사실 저는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이사야 53장을 첫 번째 복음서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마태복음이 두 번째 복음서이고, 마가복음이 세 번째 복음서이고, 누가복음이 네 번째, 요한복음이 다섯 번째 복음서라고 생각합니다.

이사야 53장은 첫 번째 복음서입니다. 이 땅에 오신 성육신하신 하나님, 즉 예수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죽으시기 위해서, 부활하여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받들어 높이 들리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또한 이사야 53장은 첫 번째 복음서 그 이상입니다. 감히 말씀드리건대 첫 번째 서신서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과 로마서 사이에 배치해도 될 정도입니다. 사복음서의 내용, 즉 복음을 요약할 뿐만 아니라 바울과 베드로와 요한의 서신에서 발견되는 복음에 대한 명확하고 온전한 해석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사야 53장은 하나님이 성경의 저자이심을 구약에서 가장 잘 보여주는 장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700년 전에 그리스도의 삶과 십자가 죽음, 찔리심, 장사되심에 관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신약성경의 해석과 동일한 해석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영광스러운 이사야 53장은 과거시제입니다. 이사야 53장이 미래에 관한 예언이긴 하지만, 그리스도의 삶에 발생할 사건들을 예언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사야 53장의 주된 목적은 미래에 있을 이스라엘의 최종적 회심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기록했듯이,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찌른 바 그를 바라보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해 애통하듯 할 것입니다.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이 부어질 것이고, 정결하게 하는 샘이 열릴 것이며,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스가랴 12장부터 13장에 나오는 일로서 미래에 일어날 일입니다.

에스겔 36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은 미래에 있을 이스라엘의 구원입니다. 그 약속은 예레미야 31장에서 반복되고, 스가랴 12장, 13장, 14장에서 확증됩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로마서 11장에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기록한 이유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미래에 있을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인류 역사의 끝에,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기 직전에,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찔렀던 분을 돌아보며 예수님이 정말로 누구인지를 알고 주님이자 구세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죄에서 정결하게 되어 구원받을 것이며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은 이스라엘의 고백입니다. 이사야 53장의 동사들이 모두 과거형이고 대명사가 복수형인 이유는 미래에 이스라엘이 이사야 53장의 내용을 고백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으로 이스라엘은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이 고백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후부터 모든 유대인과 이방인이 구원받기 위해 해야 할 고백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이스라엘은 이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 허물 때문에 찔리셨고, 우리 죄악 때문에 상하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기를 기뻐하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속건제물이었기에 여호와께서 그를 상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이해하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대리적이고 대속적인 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형벌을 받을 하나님의 백성의 허물 때문에 그리스도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졌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써 구원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고백이 구원 신학, 즉 구원론의 핵심입니다. 여기에 칭의 교리가 있고 죄의 전가 교리가 있습니다. 우리 죄가 대속물이 된 여호와의 종, 곧 의로우신 분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이 종은 우리를 대신해 죽으시며, 우리 죄와 그를 믿는 모든 이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형벌을 대신 받으십니다. 언젠가 유대인들은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고백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입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습니다.” 또 언젠가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또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입니다.” 언젠가 유대인들은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렇게 고백하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일부 설교자, 목회자들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물론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지금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이미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 없이는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국가가 언젠가 이 고백을 하게 될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사역을 통해서 은혜의 성령이 임하면 이스라엘은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과거를 돌아보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2천년 전에 했던 결정을 뒤집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 장은 이스라엘의 고백입니다. 또한 제 고백이자 여러분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이 고백은 십자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10절부터 11절입니다.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이 고백에는 그리스도의 부활도 담겨 있습니다. 그가 계속 죽어 있다면 어떻게 자손을 보겠습니까? 어떻게 그의 날을 길게 하겠습니까? 어떻게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고 만족시키시겠습니까?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부활하셔야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셨다는 사실도 고백합니다. 로마서 10장 9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바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해하는 바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이 깨닫게 될 내용입니다.

하지만 고백의 내용은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그렇죠?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칭의 교리, 대리적이고 대속적인 속죄 교리에 대한 이해는 신약시대 이후로 늘 공격의 대상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속죄를 부정하는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개인의 죄에 대한 대리속죄를 부정합니다. 이 교리는 언제나 전쟁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사실 천 년 동안 그 전쟁에서 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죠. 종교개혁으로 대리속죄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말이죠. 우리가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요?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미래에 유대인들이 하게 될 고백은 십자가를 제대로 이해한 고백일까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고백일까요? 죽음과 부활뿐 아니라 높아짐은 어떻습니까? 이사야 52장 13절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될 것이고, 여러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이 세상 왕들의 입을 봉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높아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죽으시기 위해 오시는 초림 뿐만 아니라 다스리시기 위해 두 번째로 오실 재림을 뜻합니다.

유대인들이 제대로 이해한 걸까요?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가 맞을까요?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방식과 일치할까요? 하나님은 십자가를 어떻게 바라보실까요? 이사야 53장이 실질적으로 시작되는 52장 13절부터 15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의 화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보라 내 종이.” 내 종, 에베드, 여호와의 종은 메시아를 부르는 호칭입니다. 이사야 42장에 나오죠. 다시 52장 13절부터 15절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자신의 종인 메시아의 생애를 묘사하십니다. 메시아는 형통할 것이며,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될 것입니다.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의 입을 봉할 것입니다. 메시아의 높아지심과 다스리심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반면 13절과 15절 사이의 14절에서는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음으로”라고 말씀하십니다. 메시아가 참혹한 고난을 당하고 그 결과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몸이 상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종의 삶에 영광과 고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수수께끼와도 같았습니다.

저는 어젯밤에 시애틀에서 이곳 LA까지 오는 비행기 안에서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그 책은 이사야 53장 대해서 랍비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또 그동안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설명하는 책이었습니다. 랍비들은 이 수수께끼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떻게 메시아가 높아지고 영광스럽게 되면서, 동시에 다른 어떤 사람보다 상하게 될 수 있을까? 이 딜레마를 해결하려고 유대인들은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간계를 부렸습니다. 과거 그리스도의 시대부터 오늘날 현대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해결하시겠습니까?

이사야 53장은 이 문제에 대해 간결하게 답해줍니다. 메시아가 높아지시기 전에 먼저 낮아지고 고난받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초림의 목적은 모습이 상하시고 처형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목적은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하나님이 이해하시는 방식이 같을까요? 결국 문제는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구원이라는 문제, 용서라는 문제, 화해라는 문제, 영원한 생명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관점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관점에 최고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점에 최고 권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그 내용이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이사야 53장의 마지막 두 절에 담겨 있습니다.

53장 11절 하반절부터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대명사가 전부 바뀝니다. 복수에서 단수로 바뀝니다. 동사의 경우 과거 시제에서 미래 시제로 바뀝니다. 십자가를 돌아보는 이스라엘에서 십자가 너머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으로 화자가 바뀝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무엇입니까? 11절 하반절부터 12절입니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십니다. 52장 13절부터 15절에 있는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주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명사가 ‘나의’, ‘내가’로 바뀌었습니다. 동사는 미래 시제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유대인들이 고백하게 될 내용을 매우 실제적으로 예언하고 계신 겁니다. 의로운 종의 죽음에 대해서도 예언하십니다. 의로운 종이 스스로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 것임을 예언하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종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고, 그가 많은 사람들의 죄를 질 것이며, 그가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형벌적 대속론입니다. 전가를 통한 칭의입니다. 미래 세대의 유대인들과 우리 모두가 고백하는 가장 위대한 교리입니다. 하나님이 이 교리를 확증해 주신 겁니다.

하나님은 11절에서 종을 의로운 종이라 칭하시며 종의 신성을 확증하십니다. 이 의로운 종이라는 표현에 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종이 자신을 버려 죽음에 이를 것이고, 범죄자 중 하나로 취급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시며 종의 인성을 확증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종의 대리적이고 만족적이며 희생적인 속죄를 언급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11절에서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라고 하신 말씀과, 12절에서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라는 말씀에 잘 드러납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종의 부활도 확증하십니다.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하나님은 마지막 절에서 그가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종의 중보 사역을 확증하십니다. 야훼, 곧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이죠. 인생의 궁극적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합니다. 죄인이 어떻게 온전히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수 있을까요? 죄인이 어떻게 영원한 지옥에서 건짐을 받아 영원한 천국에 이르게 될까요? 하나님은 의로운 종의 죽음을 통해 그 답을 주십니다. 죄인을 대신해 죽는 의로운 종이 죄의 대가를 온전히 지불하신답니다. 하나님의 확증입니다.

11절 하반절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여기에서 화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야훼, 하나님 아버지가 화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종을 다시 소개하시는데, “나의 의로운 종”이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이사야 52장 13절에서 종을 소개하실 때에도 “내 종”이라고 하셨고, 이 종은 메시아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죠. 지금은 “의로운 종”이라는 표현에 좀 더 집중하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서 ‘의로운 종’으로 불릴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뿐입니다. 이 세상에 오직 한 분, 단 한 분 만이 의로운 종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의로운 종은 구약에서 메시아를 칭하는 놀라운 호칭입니다. 구약을 알고 있는 신약 시대의 신자들에게는 익숙한 호칭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가 사도행전 3장에서 위대한 설교를 하면서 이 호칭을 사용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예수님을 “의로운 이”라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의로운 종”이 되실 수 있습니다.

스데반도 돌에 맞아 순교하기 전에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의인’, 즉 메시아를 뜻합니다. 바울도 사도행전 22장에서 다메섹 도상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간증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다시 이사야 53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을 의로운 종이라고 부르시며 이 호칭을 확실히 하십니다. 이 의로운 종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시며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으신 이”시며 “죄가 없으신 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신 그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자신의 종, 의로운 종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여기서 많은 사람은 믿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의로운 종은 바로 이 많은 사람의 죄를 위해 죽으셨고, 구속을 이루셨으며, 그들을 의롭다 하실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의로운 종의 의가 많은 사람에게 전가될 것입니다. 의로운 종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자신의 의를 사람들에게 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칭의 교리, 즉 의로우신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하기 위해서 죽으셨다는 교리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또 살펴볼 문구는 “자기 지식으로”입니다. 누구의 지식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히브리어로 살펴보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먼저는 의로운 종이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하는 지식일 수 있습니다. 또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종의 지식과 이해, 즉 종이 소유하는 완전한 지혜일 수도 있습니다.

한편 이사야는 이사야 1장과 5장에서 이스라엘에게 지식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44장에서도 이스라엘에게 지식이 없다는 점을 강력히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여기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의로운 종에게 있는 지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생기는 문제는, 의로운 종이 자기의 지식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우리를 의롭게 했습니까? 바로 자신의 죽음이었습니다. 따라서 히브리어 원문은 이렇게 번역되어야 합니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신에 대한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할 것이다.” 칭의는 예수님을 아는 이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좋은 번역은 의로운 종을 아는 우리의 지식, 즉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우리의 지식,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주어지는 것에 관한 우리의 지식, 즉 복음에 관한 우리의 지식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지상대명령의 존재 이유를 확인해 주고 계신 겁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종이 그를 아는 지식을 가진 이들을 의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어떤 이름에도 구원은 없습니다. 오직 의로운 종을 통해서만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로마서 10장을 보면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할 때 이사야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또 이사야의 한 부분을 직접 언급하기도 합니다. 10장 13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리고 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그리고 놀라운 진술이 이어집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오직 의로운 종을 아는 사람들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여”라는 말씀은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들고 땅끝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피조물에게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구원받을 다른 길은 없습니다. 미래에 이스라엘이 구원받는 이유는 유대인이기 때문이거나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찌른 분을 바라보고 그분을 위해 애통하며 그분을 주님으로 고백하기 전까지는, 지금의 교회 시대에도 미래의 마지막 때에도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로마서 10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하루라도 빨리 땅끝까지 선포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증언입니다. 많은 사람들, 즉 예수님의 죽음으로 의롭게 될 사람들도 이 말씀을 들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장에 따르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주신 임무입니다. 그렇다면 이 장에는 지상대명령과 믿음으로의 부르심, 즉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기초한 믿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구원에 이르는 방식으로 의로운 종을 아는 것, 회개하는 믿음으로 의로운 종을 아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그를 아는 것이 어떻게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할 수 있을까요? 의로운 종이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칭의 교리를 믿으십니다. 하나님은 전가 교리를 믿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교리들을 제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53장 12절 하반절입니다. 이 부분은 자신의 종, 곧 의로운 종에 대해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자발적으로, 기꺼이 그렇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앞서 살펴보았던 7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우리는 이 모든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의로운 종의 자발적인 의지는 이사야 53장 전체에 가득합니다.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자신의 영혼을 죽음에 내어주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가 읽은 유대인들의 고백을 그대로 반복하고 계신 겁니다. 의로운 종은 자신을 죽음에 내어주었습니다. 또한 주의 종은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습니다. 이 구절의 문자적 의미는 예수님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범죄자 중 하나가 되도록 하셨다는 뜻입니다. 누가복음 22장 37절을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이 구절을 인용하십니다.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이는 육신을 입음으로써, 즉 성육신하셔서 범죄자들과 같이 되시려고 한 예수님의 자발적 태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범죄자들 틈에서 사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죄인들 사이에서 사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세기에 걸쳐 그려진 예수님의 초상화에서 보이는 후광 같은 것은 결코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공중에 떠 계시지도 않았습니다. 위풍당당한 모습이나 위엄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매력적인 외모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보통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사람들처럼 걸어 다니셨습니다. 여느 사람과 똑같은 음성으로 말씀하셨고, 여느 사람과 똑같이 드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처럼 행동하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예수님은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셨을 때 문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평범한 외모와 비범한 능력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탄의 능력을 힘입은 것이 틀림없다고 결론내렸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12절에서 예수님의 성육신에 대해, 즉 의로운 종이 이 땅에 내려와 타락한 인간 세상에 스스로 속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빌립보서 2장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다”는 말은 의로운 종이 범죄자들처럼 죽을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의로운 종이 죄인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기에 비록 범죄자 중 하나로 여겨졌지만, 그 어떤 인간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내셨습니다. 의로운 종은 이 세상에서 죄인들과 섞여 살았지만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인간의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의로운 종으로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 곧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기셨지만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레위기 16장에 나오는 대속죄일의 아사셀 염소와 같이 사람들의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앞서 여러 차례 말씀드린 것처럼 말입니다.

의로운 종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은 이것입니다.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NASB를 번역한 사람들이 “중보했다”라고 번역했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이 단어는 중보를 의미합니다. 중보란 두 사람 또는 두 집단 사이를 이어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의로운 종은 우리를 위해 중보자가 되셔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 변호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천국으로 나아가는 다리가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중보 사역은 신약의 요한복음 17장에서 시작됩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중보하셨고,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시던 밤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 놀라운 기도 속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자신이 대신하여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에 주목할 만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동사는 미완료 시제로서 계속 진행되는 동작을 의미합니다. 앞에 나온 모든 동사들은 완료 시제로서 동작이 이미 완료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앞의 세 동사를 보십시오.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는 완료형입니다.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의미하고, 역시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일로서 결코 반복되지 않을 일입니다. 이 일들은 완성되었고 완료된 일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기도는 계속되고 있고, 그렇기에 미완료 시제를 사용한 것입니다.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예수님은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마침내 우리가 천국에 갈 때까지 예수님은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과 로마서 8장 34절은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사역을 찬양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대리적이고 대속적인 희생을 유일한 제사로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만족시키고, 죄인들에게 구원과 칭의를 가져다주는 유일한 제사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직접 죄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오직 그리스도를 아는 자만을 의롭다고 칭하십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바로 칭의가 일어나는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아는 지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가 됩니다. 이것은 언젠가 유대인들이 하게 될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미 고백한 바이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 스스로 인정하시는 고백입니다.

이제 드디어 12절의 마지막 말씀을 살펴볼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놀라운 종과 멸시당한 종, 대속물이 된 종, 잠잠한 종, 도살당한 종을 살펴보았고, 오늘은 다스리는 종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12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제 종에게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은 종이 부활했다는 뜻입니다. 고난 이후에 만족이 있습니다. 슬픔 이후에 구원이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 구속이 있습니다. 고초 이후에 영광이 있습니다. 고통 이후에 기쁨이 있습니다. 가시면류관 이후에 보좌가 있습니다. 십자가 이후에 면류관이 있습니다. 초림은 낮아짐을 위한 것이고 재림은 높아짐을 위한 것입니다.

52장 13절부터 시작된 내용이 53장 12절에서 재림으로 끝납니다. 그리스도는 형통할 것이고, 받들어 높이 들려 지극히 존귀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고, 왕들의 입을 다물게 할 것입니다. 정복과 승리의 행진으로 끝을 맺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종을 보좌에 앉히시고 승리의 전리품으로 보상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존귀하게 되시고, 영광스럽게 되시며, 보좌에 앉으십니다. 이는 요한계시록 11장의 내용입니다. 이 세상의 왕국이 우리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왕국이 될 것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19장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성도들과 함께 흰 말을 타고 오셔서 불신자들을 심판하시고 전쟁을 벌이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영광스러운 천년왕국을 세우실 것입니다. 그 뒤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다스리시며 찬송을 받으실 것입니다. 강력한 왕의 이미지입니다. 승리의 전리품을 모두 챙겨 귀환하는 정복자 영웅의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적대 세력을 제압하고 왕들을 당혹케 한 다음 승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께 두 가지를 주실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실로 놀라운 진술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내가 그에게 모든 것을 주겠다”라고 선언하실 것 같은데 말이죠. 물론 그것도 맞습니다. “내가 그를 지극히 높이겠다”라고 하셨으니 말이죠.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그런데 여기에서 무릎을 꿇게 하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서, 바로 ‘주’라는 이름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에게 모든 것을 주겠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잘 이해됐을 겁니다. 물론 하나님은 예수님께 모든 것을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강조점은 다른 데 있습니다. 바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여기에서 존귀한 자와 강한 자는 누구일까요?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같이 보잘것 없고 연약한 자들이 어떻게 존귀하고 강한 자가 될 수 있을까요? “존귀하다”에 해당하는 단어는 ‘하라빔’(harabim)입니다. 문자적으로 예수님이 의롭게 만드신 많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12절 하반절을 보면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여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십니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12절 상반절은 “그에게 많은 사람과 함께 몫을 받게 하겠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을 ‘존귀한 자’로 번역했을까요? 왜냐하면 이 ‘많은 사람’이 존귀한 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존귀한 자가 될까요? 네 그렇습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상속자가 됩니다. 그리스도가 소유한 모든 것을 우리도 소유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너그러운 은혜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가난한 상태로 남아 그리스도가 모든 보상을 누리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소유하는 모든 것을 함께 나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강한 자들일까요? 바로 강하게 된 약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존귀하게 된 ‘많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강하게 된 약한 자들입니다. 우리가 바로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리의 마차를 함께 타고 행진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장 14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모든 것, 즉 모든 세대의 구속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영원한 교제의 일부분이 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리스도가 소유하시는 영원한 영광 또한 우리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을 것입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 속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다스릴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사야 53장에 주어진 약속은 이스라엘의 미래 세대가 마지막에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고, 이 장이 이스라엘의 고백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올바르게 이해한 것이라고 하나님이 직접 확인해 주셨습니다. 또한 이 고백은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알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속물이 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부활하신 주님으로 고백함으로써 구원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고, 영원한 지옥을 벗어나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함께 머리 숙여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매우 강력하고 통찰력 있는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 심령 가운데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살면서 지은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모든 것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바로 지금 이 시간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의 마음을 일깨워 주옵소서. 구원자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소망으로 붙들게 하옵소서. 오늘 이 시간이 찬양과 경배의 시간이자 구원을 확신하고 회개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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